고요하게 눈부신 마법의 순간, 모두 귀기울이는 폭죽처럼.
*<마이디어>는 무비블록 가입을 통해 감상하실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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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출은 각본에 맞는 가장 효율적인 촬영, 미술, 편집 등을 선택하는 것이다. 그리고 연출자의 의도를 덧붙여 작품의 시각을 확장시키는 것 또한 연출이다. 이때 전자 위주의 연출은 직관적이고 보편적인 재미를 보여주지만, 더 많은 자본이 필요하고 특색은 줄어든다. 반면 후자 위주의 방식은 독특하고 고유한 매력을 드러내지만, 다소 의문스럽고 지루할 수 있다. 결국 두 방식이 각본과 상황에 맞춰 조화를 이루는 것이 연출의 핵심이 될 것이다. 그리고 2024년부터 유수의 영화제에서 주목을 받아온 <마이디어>는 겉으로는 장르적인 효용을 드러내면서도 작품만의 시각을 깊이 있게 담아낸다.
<마이디어>에는 마법 같은 순간들이 있다. 이 글은 그 순간들을 이해해보려는 시도이다.
장르의 순간
<마이디어>는 기본적으로 보편적인 장점을 잘 드러내는 작품인데, 우선 배우의 연기와 각본이 그렇다. 가을을 연기한 연출자이자 배우인 ‘전도희’는 그간 모든 작품에서 인물을 명확히 연기하면서도 자신만의 감각을 녹여내며 배우로서의 존재감을 드러내왔다. 그녀는 <마이디어>에서 역시 청각장애를 가진 ‘가을’을 과하거나 모자람 없이 연기해내며 관객을 설득한다. 또한 이 각본은 장애라는 설정을 활용하면서도 소재의 특수성에 의지하지 않고, 감정에 과하게 호소하지 않는다. <마이디어>는 청각장애라는 설정을 인물의 한계이자 동력으로 접근한다. 그렇게 가을의 소극성과 ‘마이디어’에 대한 관심은 자연스럽고, 이후 점차 변화하는 인물의 모습은 짧은 시간 동안에도 충분이 설득된다.
이에 더해 제한된 공간에서 카메라가 인물의 감정을 담는 방식이 흥미롭다. 가을과 주변 인물들 사이에 갈등은 없지만 어딘가 거리가 느껴진다. 그녀는 친구들의 말을 자주 놓치고, 대화 중 상대방의 입을 위주로 보아야 한다. 그리고 <마이디어>는 카메라의 위치와 렌즈 등을 통해 이를 강조한다. 많은 단편들이 자본의 한계로 좁은 공간을 선택하게 되고, 카메라의 심도는 높아지며 결국 촬영과 미술 등이 통제를 벗어나 버린다. <마이디어>에도 역시 상대적으로 좁은 몇몇 공간들이 있다. 가을의 방, 교수의 방 그리고 동아리방이 그렇다. 하지만 <마이디어>는 그 공간 안에서 인물들의 위치를 카메라와 같은 거리에 두지 않고 최대한 심도를 낮춰 이야기의 몰입을 유지해나간다. 덕분에 가을과 주변 인물들과의 거리가 강조되어 소통이 원활하지 않은 상황과 그 감정이 더 잘 드러난다.
가을과 인물들 사이의 거리는 특히 가을의 방에서 더 흥미롭게 표현된다. 주변 인물들과의 거리도 그렇지만, AI인 마이디어의 ‘남자(김민철)’는 가을의 핸드폰 속에 있는 존재이기에 일정한 거리가 유지돼야 한다. 그리고 이는 시점샷이나 핸드폰 화면을 거울처럼 사용하는 등의 다양한 방식을 통해서 표현된다. 그런데 가을이 침대로 다가가 남자에게 말을 걸고 수화를 알려주는 순간, 그간 유지되었던 간극이 사라지며 인물의 감정은 확장된다. 덕분에 이어지는 가을의 절망은 더 효과적으로 표현된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서로 다른 감정임에도 <마이디어>는 같은 색감을 유지한다는 점이다. 이는 단순히 작품에 일정한 분위기를 형성하려는 선택처럼 보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 <마이디어>가 갖는 감각적이고 치밀한 연출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일상의 순간
<마이디어>를 떠올렸을 때 언급할 수 있는 여러 요소 중 하나는 분명 색감이다. 조명, 자연광 그리고 폭죽 등으로 표현된 붉은 색의 분위기가 바로 그것이다. 이는 단순히 작품 전반에 사용되는 것을 넘어 각 순간에 맞춰 그 밀도나 방식을 달리하여 의도한 바를 충분히 전달한다. 이때 흥미로운 것은 이렇게 적극적으로 색감을 표현하면서도 붉은색 하나만을 중심에 둔다는 사실이다. 연출자 중 한 사람인 전도희의 전작 <엄마가 결혼한대>의 후반 색감을 떠올렸을 때, 이러한 선택 자체가 의아하지는 않다. 하지만 <마이디어>의 서사와 이를 다루는 섬세한 태도는 의문을 남긴다. ‘남자’의 목소리가 들리지 않는 순간에도 <마이디어>는 그 색감을 파란색 등으로 바꾸지 않고 오히려 더 밀도를 높인다. 그리고 이는 연출자의 의도처럼 느껴진다. 어쩌면 이는 <마이디어>가 가을의 일상을 표현하는 방식이 아닐까.
가을의 일상은 절망 앞에서 무기력해 보이지 않는다. 그녀는 주변인들로부터 배려를 받고 함께 소통하며 본인의 목표를 위해 나아간다. 때문에 <마이디어>의 중심 갈등은 단지 ‘마이디어’의 자막이 사라지는 것 하나만으로 보인다. 적어도 표면적으로 그렇다. 하지만 장애라는 근본적인 불편함, 다시 들을 수 없는 대화 그리고 오히려 한계가 돼버리는 타인의 과도한 배려는 가을의 일상 속에서 기저 갈등으로 자리 잡고 있다. 그렇기에 매일 같이 득과 실을 겪는 가을의 삶에서 ‘마이디어’는 유일한 갈등 요소처럼 보일지 몰라도, 결국 이 역시 희망인 동시에 절망이고 일상의 일부이다.
교수의 배려는 한계가 되었고, ‘마이디어’의 업데이트로 남자의 목소리는 볼 수 없게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날씨는 맑고, 강의실의 색은 평온한 가을의 방과 같으며, 화면 속 남자는 오늘도 같은 자리에 서 있다. 일상이 된 상실 앞에서 가을은 또 한 번 당황하지만, 강의실의 문을 열고 들어오는 이들에게 그녀의 공간은 그저 저녁노을로 물든 일상의 공간으로 보일 뿐이다. 그렇게 따뜻하지만 눈이 멀 듯한 노을 앞에서 가을은 고개를 떨구고 만다.
마법의 순간
<마이디어>의 가장 인상적인 순간은 분명 폭죽이 터지는 마지막 장면일 것이다. ‘마이디어’를 다시 켜 남자를 마주하자 폭죽이 터지고 이내 자막이 다시 돌아온다. 그리고 마침내 가을은 처음으로 누군가와 한 프레임 안에 나란히 담긴다. <마이디어>에서 노고가 가장 잘 드러나는 이 장면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이 대단해 가장 인상적이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한편으로 가을이 얻게 된 것은 그저 ‘마이디어’의 남자와 다시 소통할 수 있게 되었다는 사실 하나뿐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폭죽이라는 요소가 과연 필수적이었는지 묻게 된다. 하지만 <마이디어>가 인물을 창작하고 이해하는 방식의 연장선에서 폭죽을 활용한 마지막 장면은 연출자만의 의도를 흥미롭게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언급한 것처럼 가을이 겪는 갈등은 ‘마이디어’뿐 아니라, 일상 속에서 마주하는 배려와 소통에서 비롯된다. 때문에 가을은 타인의 도움 없이도 쉽게 소통할 수 있는 ‘마이디어’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소통 과정에서 남자에게 자신의 언어를 알려주기도 한다. 이후 다시 ‘마이디어’를 켰을 때 여전히 자막은 보이지 않지만, 남자는 가을에게 배운 수화로 말한다.
“진짜”
폭죽이 터지자 다른 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그리고 가을의 시선으로 두 친구의 모습이 보인다. 폭죽 소리 때문에 이들 역시 서로를 듣기 위해 더 가까이 귀를 기울인다. 가을이라는 인물의 삶을 고민하고 이해한 <마이디어>는 그렇게 모두가 똑같이 귀를 기울여야 하는 순간을 만들고, 서로 알려준 언어를 사용해 가장 완전하게 소통할 수 있는 기쁨을 가을에게 선물한다. 고요하게 눈부신 이 마법 같은 순간 속에서 관객 역시 폭죽을 바라보며 그들의 소통을 응시하고, <마이디어>는 그것이 바로 영화라고 말한다.
모든 영역은 각자의 언어가 있고 우리는 그 속의 문법을 통해 의도를 전달한다. 그리고 영화의 언어 역시 마찬가지이며, 그 원리를 익히기 위해 영화를 보고 영화를 만든다. 연출과 연기를 이어온 전도희와 공동으로 연출한 김소희의 <마이디어>는 그간의 영화 문법으로부터 확장된 자신들만의 영화 언어를 짧은 순간을 통해 보여준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