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배우러 나가보자 무언가 새로운 길이 이어질테니
퇴사자들의 시간은 누구보다 더디다. 출퇴근 시간도 없고, 누군가를 만나지 않아 대충 모자 눌러쓰고 카페에 가면되니 그만큼 시간이 많아지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만큼 더 생긴 시간을 결코 효율적으로 쓰진 않는다는 것이다. 오히려 돌이켜보면 직장인 시절에 없는 시간을 쪼개어 이런저런 부업도 시작하고 더 갓생을 살았던 것 같다.
아침에 느지막히 일어나 그래도 뭔가를 찔끔찔끔 한 거 같은데도 아직도 내게 주어진 하루가 여전히 많이 남아 있다는 것을 체감할 때 답답함이 커진다. 그런 답답함을 없애려고 명상을 하거나 일기를 써도 마음이 안정되는 건 그 때 한 순간일 뿐이다. 그 답답함은 돈이 떨어져 가는 불안함과 몇 달째 혼자만 제자리 걸음인 듯한 느낌 등 여러 감정이 뒤섞이며 생긴 것이기 때문이다.
아르바이트를 구하기 위해 몇 번 시도를 해봤지만 쉽지 않았고, 그렇다고 매일 집과 카페만 오가는 삶을 몇 달 동안 지속할 수는 없었다. 강제적으로 나를 출퇴근 시켜야할 곳을 만들어야 한다고 느꼈고, 내가 선택한 곳은 컴퓨터 학원이었다.
예전부터 배우고 싶던 영상 편집을 배우기로 했다. 2020년 한국에 돌아와 취준을 본격적으로 시작하기 직전 내일배움카드 덕분에 바리스타 수업, 한식조리사 수업 등 다양한 수업을 들으며 시간을 알차게 보낼 수 있었는데, 그때의 기억이 아주 좋게 남아 있어서 이번에도 한치의 고민 없이 배움을 선택하기로 했다.
더군다나 국가에서 100% 지원해주는 무료 강의인데, 이렇게 시간도 많고 여유로울 때 안 들을 필요가 있을까 싶었다. 한 달 동안 프리미어 프로와 에프터이펙트를 배우며 다양한 영상 편집 기법들을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이 전까지는 프리미어 프로 시퀀스 여는 방법도 몰랐는데 이젠 에프터이펙트까지 활용해 어느 정도 모션이 있는 영상까지 만들게 된 것이다.
영상 편집을 배우게 된 건 1차적인 효과이고, 그 외에 꼭 공유해주고 싶은 배움의 부수적인 효과들이 있다.
첫 번째,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게 된다. 월요일에서 금요일 오후 4시간 수업 시간이 정해져 있으니 그 앞뒤 시간을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할 방법을 모색하게 된다. 가령 수업 가기 전에는 수영을 가고, 수업 다녀온 이후에는 저녁을 먹고 잠시 쉬다가 책을 읽거나 유튜브 제작하는 등. 정해진 수업 시간에 맞춰 일정한 루틴을 만들게 된다.
두 번째, 배우면서 느끼는 기쁨이 너무나도 크다. 돈이 떨어져가는 불안함도 컸지만, 내가 정체되어 있다는 느낌을 받는게 더 괴로웠다. 사람은 성장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때 큰 행복을 느낄 수 있는데 나에게는 특히 더 그랬다. 한 달 동안 수업을 들으며 하루 하루 출석을 채우다 보니 성취감도 생기고, 잠시나마 꺾여 있던 스스로에 대한 믿음도 다시 되찾을 수 있었다.
세 번째, 매일 어딘가 갈 곳이 생겼다는게 정말 행복하게 느껴진다.
매일 출퇴근하기가 싫어 회사를 그만뒀으면서도 퇴사하곤 막상 갈 곳이 카페 빼고 아무 곳도 없다는 현실이 꽤 슬프게 느껴지곤 했다. 학원 다니며 나름의 소속감도 생기고 매일 집밖을 나와 어딘가 갈 곳이 있다는 것. 내가 무언가 의미 있는 행동을 하고 있는 느낌이 들어서 불안감이 줄어들었다. 또한 자전거를 타고 학원에 다녔는데, 바깥 공기를 마시며 매일 계절의 작은 변화들을 체감하는게 참 행복하고 좋았다.
퇴사하고 지금 당장은 돈이 안 벌리는데, 그렇다고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을 때. 그 무엇이든 배우러 나가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물론 클래스 101 같은 인강도 좋지만, 사람을 직접 마주하는 데서 얻는 에너지가 생각보다 엄청나다. 그래서 가능하다면 꼭 오프라인 수업을 추천한다.
그게 돈으로 이어지는 수업일 필요는 없다. 바리스타도 좋고, 꽃꽂이나 요리 같은 단순한 취미 수업이어도 좋다.
어떤 수업이든 집 밖을 벗어나 새로운 목적지를 향해 가는 행위만으로도 잃어버렸던 설렘을 다시 되찾을 수 있고, 또 나아갈 방향이 새롭게 만들어지기도 한다. 무너졌던 자존감을 되찾기에 배움 만한게 없다고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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