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윌리엄스, 스토너 Stoner(1965)
나는 과연 내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삶의 끄트머리에 서서 생의 출구에 달린 차가운 손잡이를 잡아당기며 ‘스토너’는 혼자 속으로 중얼거린다. 마치 평생 작은 케이지 안에서 알을 빼앗기며 산 암탉이 마지막으로 낳은 알을 지키기 위해 깔아뭉개버리는 것처럼 몇 번을 되뇌인다. 넌 인생에서 무엇을 기대했나.
스스로의 삶에 던지는 질문일까, 아니면 확신일까.
윌리엄 스토너는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났다.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하는 대신 미주리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영문과 조교수로 살다가 암에 걸려 사망한다. 그를 선명하게 기억하는 사람도 그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도 없다. 그의 일생은 한 페이지 남짓한 분량으로 요약할 수 있는, 한마디로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
영문학 교양 수업에서 스토너는 아처 슬론에게 셰익스피어의 소네트 수업을 듣고 그 이후 농업에서 영문학으로 전공을 바꾼다. 한순간 사랑이라고 믿었으나 결코 사랑받지 못한 결혼생활. 어둠 속에서 희미한 행복을 발견했지만 사회적 편견에 결국 놓아버린 캐서린. 사랑했으나 지키지 못한 딸 그레이스, 교직에 소명과 기쁨을 느꼈으나 결실은 내지 못했으며 뜻밖의 빌런이 등장해 망쳐버리다시피 한 커리어.
그의 삶은 모두가 포기와 순종이다. 다만 한 순간이라도, 한 가지만이라도 저항하고 벗어던질 순 없나,하는 답답함이 내내 밀려왔다. 어떻게 하면 저토록 돌처럼 꽉 막힌 채 살아갈 수 있는지 이해되지 않는다.
대부분 주인공이라면 마땅한 투쟁도 모험도 없이, 저항하지도 변화를 시도하지도 않고 오로지 온몸으로 받아들이며 순응한 채 가난하고 실패한 삶을 살았다. 주인공답지 못하다.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덮을 때, 그의 고독한 독백에 먹먹해져서는 눈앞이 흐릿해졌다. 그러다가 문득 그의 손에서 책이 떨어지는 마지막 순간 그의 물음에 숨어있는 느낌표를 발견했다.
나는 인생에 무엇을 기대했나
그의 마지막 독백은 질문이 아니라 '답'이었다.
완벽하리라 꿈꾸던 결혼 생활은 늘 삐걱대고 자식은 내맘같지 않다. 직장에서도 최선을 다하려하지만 늘 난관에 봉착하고 목구멍이 포도청이라는 심정으로 다닌다. 가끔은 잘 맞는 사람이나 물건에게 혹하기도 하지만 궤도를 이탈하지는 않는다. 특별히 의미있지도 않는 삶의 내일을 걱정하며 잠에 든다. 거의 매일 월계관을 쓴 타인의 뒷통수만 보고 있다. 그렇다고 '이생망'이라거고 포기하거나 희망을 버리지는 않는다. 그저 점철된 실패 속에서 한걸음 한걸음 내딛으며 오늘을 살아내려고 최선을 다한다.
그 결과는 기대와 다를 때가 많다. 늘 최선을 다하지만 최상의 결과는 아니었으며 완벽한 승리는 꿈에서도 보지 못했다. 그럼에도 불행하다거나 끝장이라고 생각하지는 않았고 그저 묵묵히, 주어진 것에 만족하려고 애쓰며 살아왔다. 고요한 좌절 속에서 담담한 평상심을 유지하며 지난한 삶을 온몸으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
돌처럼 무미건조한 것이 아니라 돌같은 단단함으로 흔들림없이 삶을 걸어나가는 사람.
바로 '스토너'이고 바로 '나'다.
내가 그의 고독에 눈앞이 흐릿해진 진짜 이유는, 벅차오르는 스스로에 대한 연민 때문이었던 것이다.
....내 인생이지만 주인공은 늘 내가 아니었으므로.
그러나 '스토너'는 알았다. 나 또한 알게 되었다.
인생의 황혼 뒤에 찾아오는 어둠이 모든 것을 앗아가면 빛나던 그 모든 것들도 차가운 재가 되고 말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그저 더욱 사랑하는 것뿐. 그저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돌처럼 단단한 고독 속에서도 삶을 놓지 않고 마지막까지 걸어가야한다는 것을 말이다.
그러니 슬퍼하거나 노여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말이다.
...
머지않아 암흑의 밤이 가져갈 황혼
모든 것을 안식에 봉인하는 죽음의 두 번째 자아
그 암흑의 밤이 닥쳐올 황혼을,
내게서 그대 그렇게 타는 불꽃의 빛을 보리.
양분이 되었던 것과 함께 소진되어
반드시 목숨을 다해야 할 죽음의 침상처럼
젊음이 타고 남은 재 위에 놓인 불꽃
그대 이것을 알아차리면 그대의 사랑이 더욱 강해져
머지않아 떠나야 하는 것을 잘 사랑하리.
-세익스피어, 소네트, 스토너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