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쓸모 Jun 11. 2023

단상지교(端想智交)

지금 이 순간 당신의 눈동자에 건배

 점원이 추천한 ‘오늘의 술’이 작은 와인잔에 찰랑찰랑 담겨 친구와 나의 앞에 한 잔씩 놓였다. 투명한 호박 빛깔의 술은 지구를 한 바퀴 어르고 온 듯, 계절의 기운이 스며들어 되직하다. 가볍게 잔을 부딪치고 한 모금 입안에 머금었다 넘기는 순간, 친구와 동시에 콧소리 섞인 감탄을 뱉었다. 으음~,맛있어!


 우리가 마신 술은 찹쌀이 주원료이어서인지 부드러우면서도 푸딩 같은 바디감이 느껴졌다.  입안을 감미롭게 감싸는 누룩의 향 위에 약한 산미와 단맛이 살짝 감돌더니 끝맛은 부드럽게 넘어간다. 청주처럼 산뜻하고 위스키같이 진한 매력을 담은 술이었다. 별로 달지 않고 씁쓰레한 잡맛이 없어 풍부하고 고급스러운 느낌을 주었다. 도수도 우리에게 적절했다. 바질페스토 파스타와 볶은 어향 가지에 맛있는 술 한 잔을 곁들어 먹으니 종일 꽁꽁 닫혀있던 마음의 빗장도 스르르 풀어지는 기분이었다. 



 

같이 일하는 동료 때문에 마음이 힘들었던 하루였다.

 뒤늦게 합류한 친구와 같이 신내림을 받은 듯 신나게 오늘의 스트레스를 돌려 까서 술잔에 담아 마셨다. 스트레스를 푸는 방법은 저마다 여러 가지가 있겠지만 맛난 음식을 괜찮은 술과 함께 먹으면서 친구와 수다를 떠는 것만한 게 있을까? 술병이 비워지고 밤이 깊어지면 슬픔과 노여움은 온난화에 킬리만자로 눈 녹듯이 사라진다. 


혼자 사는 세상이 아니기에 특히나 돈 벌러 가는 직장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더더욱 생판 남이기에 내 맘같지 않으리라는 건 이미 잘안다. 그렇게 일로 만나는 사람 중에서도 우연히 잘 맞는 이들도 있고 이상하게 싫은 사람도 있지만 그것이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라기보다 그저 궁합이 안 맞는 것이라는 것도 안다. 지금은 안 맞다가도 다음번엔 맞을 수도 그 반대일 수도 있다는 것도 안다. 누군가가 나를 멀리하는 것이 나를 싫어해서가 아니라는 것도 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동료 때문에 오늘은 참 마음이 좋지 않았다.      

 

가끔 그런 사람 있지 않나?

성별을 불문하고 취향이 비슷해서 대화가 잘 통하고 같이 있으면 재미있어서 친해지고 싶은 사람 말이다. 그 동료가 딱 그랬다. 게다가 어딘가 어른스럽고 노련해서 배울 점도 많았다.  

 그 동료와 좋은 친구가 되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그 동료와 나의 거리는 일정했다. 멀어지지도 가까워지지도 않았다. 그러다가 문득 내 옆자리의 A와 아주 친하다는 걸 알았다. 그 동료는 매일 A와 점심시간을 기다려 같이 먹고 산책을 나갔고 커피를 마셨고 여러 사람 중에서도 A와 주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오늘도 우연히 옆에서 둘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는데, 내가 잘 아는 이야기여서 말을 보탰다가 그녀에게서 끼어들지 말라는 핀잔을 들었다. 그녀는 단 한 사람과만 친하게 지내는 타입이었던 거다. 

 고등학교 때 배운 ‘점근선’이 생각났다. 무한히 가까워지지만 절대로 만나지는 않는 선 말이다. 나와 그 동료는 그런 사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던히 가까워지려고 애쓰고 바랐다.  

   

 사람의 마음이란 것은 참으로 요상한 것이다. 

나는 일이 있어서 같이 가지 않을 것이지만 자기들끼리만 커피를 마시러 가면서 내게 묻지 않으면 몹시 섭섭하다. 그저 자기들이 좋아서 자기들끼리 눈빛을 교환하며 팔짱을 끼고가는 것만으로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나는 그 무리에 낄 생각도, 끼고 싶은 마음도 없는데 말이다. 나이 수십 살을 처먹고도 괜히 눈물이 난달까.      





  ‘오늘의 술’의 이름은 ‘端想智交(단상지교)’였다. ‘생각이 단정하고 바르며 배운 지혜를 정겹게 나누다’라는 뜻이라고 했다. 좋은 벗과 함께 좋은 이야기를 나누며 마시라고 지은 이름일 것이다. ‘交’라는 한자는 두 다리를 교차시킨 모양에서 온 글자로 ‘오고가다’라는 의미가 있다. 뭐니뭐니해도 술이란 좋아하는 벗과 잔이 오갈 때라야 진정한 맛과 향이 나는 법이다. 


아, 역시 진정한 사귐 또한 이렇게 무언가가 오고 가야하는 것이다. 

음식, 돈, 술 같은 물질만이 아니다. 마음이 서로 오고 가야하는 것이다. 나는 친구들과 그녀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면서 나는 그녀와 잘 맞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서로 오고 갈 것이 없는 관계였던 거다. 그 동료는 앞으로도 나와 절대로 친구가 되지 않을 것이다.  직장은 돈을 버는 곳이지 사교 활동을 하는 곳이 아니라고 늘 다짐한다. 하지만 하루 중 가장 긴 시간을 보내는 곳에서 의미있는 관계를 맺고 싶다.     


 ‘단상지교’가 내게 묻는다.

 지금 이 친구들과 내년에도 같이 마실 수 있을까? 

 시시한 뒷담이 아니라 인생의 지혜를 나누며 정겹게 웃으며 마실 친구가 앞으로 몇이나 남게 될까?

관중처럼 ‘생아자부모, 지아자포숙아야(나를 낳아준 것은 부모지만, 나를 알아준 것은 포숙아이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  지금 이 자리에서 술잔을 나누는 이 친구들에게 ‘포숙’이 되어 줄 수 있을까?

이들과 진정 마음을 주고받는 관계인가? 진정으로 이들과 함께 하는 걸 좋아하나? 

아니, 인간은 인간으로부터 완전한 위안을 얻을 수 있는가?

어렵다. 술에 페어링하는 안주를 고르기보다 어렵다. 그냥 혼술을 마실까?

 이 술이 내게 하는 질문에 확실하게 답을 할 수가 없다.     

 

다만 나는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이들과 온 마음을 다해 건배할 뿐이다. 

아마도 나는  지금까지처럼 메아리 없는  마음을 주고  때론 실망하고 떠나보내고 슬퍼하기를 반복할 것이다. 결국 내 곁에 아무도, 아무것도 남지 않아도 이것을 무수히 앞으로도 반복할 것이다.

 산수가 안 되는 나라서 어쩔 수가 없다. 

작가의 이전글 심야 맥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