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이라는 단어

by 햇쌀

날씨가 많이 푸근하다. 더운 기운이 밀려옴을 느낀다. 뜨거워야 생기를 더 얻을 수 있는 검푸른 생명력이 본격적인 기세를 떨치려는가 보다. 누가 말했던가. 계절마다 '첫'이러는 글자가 넘쳐나는 기운을 감지한다는 것은 활어처럼 살아 있다는 증거라고. 그렇다. 살아 있다. 생명뿐인가. 육체뿐인가.

인간이 창조한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느꼈던 감동도 여전히 생생하게 남아있다. 월드컵 축구 4강의 짜릿한 청량제가 엊그제 같다. 김연아 선수의 연기에서 환희를 느끼고 눈시울이 시큰했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雪)의 결정체를 처음 보았을 때의 감동도 잊을 수 없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모르지만 과학시간이었으리라.(안타깝게도 생生의 첫눈을 보았던 때의 기억은 없다. 가을에 태어났으니 그해 겨울에 보았으리라)

눈의 육각형 결정체는 아름다웠다. 현미경이 참 신기했고 처음으로 사람의 능력이 엄청 뛰어나다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내가 모르는 신비한 어떤 세계가 꼭 존재할 것 만 같았다. 엘리스의 이상한 나라처럼. 해저 도시처럼. 우주 꼭 어딘가에 훌륭한 세계가 있을 것 만 같은 굳은 믿음이 생겼다.

6년 전 눈의 나라에 간 적이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주 토론토는 정말 하얫다. 그때가 12월이었으니 가장 많이 눈이 내리는 시기였다. 신발이 푹푹 빠질 정도로 매일 눈이 내렸다. 그 나라 사람들은 주로 지하도를 이용했는데, 지하에는 백화점처럼 인간이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풍족했다. 나이키도 있고 베스킨라벤스와 초밥집도 있었다. 지하 세계는 춥지도 않고 눈도 없고 오로지 밝은 전기불 세상이었다. 기온이 너무 떨어지는 날은 두더지처럼 요리조리 구부러지는 지하 길을 잘 알고 있으면 살기 편했다. 지하도가 갈리는 곳에는 지하세계 지도가 벽에 붙어 있었다. 그렇게 지하로 다니다가 연결이 끊기는 지점에서 밖으로 나오면 딴 세상이 펼쳐졌다.


딴 세상은 이랬다. 하앴지만 단순하지 않았다. 기온이 조금 올랐을 때 나뭇가지의 눈이 녹아내렸다가 기온이 다시 낮아지면 물이 그대로 가지에 얼어붙어서 마치 유리로 세공을 해 놓은 것 같은 가로수길이 태양에 반짝였다. 버스에서 내리는 사람들은 하나 같이 두꺼운 파카를 입고 앞섶에 휘날리는 갈퀴 같은 털을 둥글게 단 모자를 쓰고 다녔다. 표정이 느긋했다. 나는 겨우내 낯선 풍경에 추운 줄 모르고 지냈다. 두꺼운 파카를 안 입었어도 내 몸에 열기가 많았다. 눈이 내리면 기화열 때문에 오히려 기온이 높아진다고 하지만, 그것과는 상관 없는 열기였다. 순전히 기분 탓이었다. '첫'이라는 단어가 내재하고 있는 에너지. 그 분위기에서 분수처럼 솟아나는 그 어떤 감정이 기화열을 내고 있었다.

평생 눈을 보지 못한 사람이나 바다를 본 적이 없는 사람이 그것을 접했을 때의 첫 심장박동... 그 존재를 나는 느끼며 살았던 것 같다. 분위기에 익숙하기 전까지 아주 오랫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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