밥을 먹으며 식탁에서 브런치를 펼쳤다. '행복해지려면' 이라는 글이 보였다. 궁금했지만, 읽기 전에 생각해 보았다.
행복, 무척 흔하고 많이 듣는 단어지만,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밥을 먹고 있는 아들에게 그냥 지나가는 심드렁한 어조로 물어보았다. (힘주어 말하면 대답하기 곤란할까 봐서)
"욕심을 버리는 것이지"바로 대답이 나왔다. 흠~ 순발력좋은데.
욕심을 버리기란 얼마나 어려운가. 브런치 글도 욕심을 내서 쓰는 사람의 글은 점점 늘어진다. 군데군데 독자를 잡아놓는 문장이나 사진 하나씩 심어 놓고 질질 끌고 간다. 저자의 의도와 의미를 알 것 같다가도, 말장난 같은 다른 문맥에 끌려가다 보면 그런 것 같기도 하고 그렇지 않은 것 같기도 해서 혼동이 온다. 남의 귀중한 시간을 조금씩 뺏어가는 언어라는 칼을 든 도둑 같다.
행복해지는 비결이 욕심을 버리고 현재의 삶에 만족, 현재 유지라면 이미 대부분 성취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현재를 살고 있으니.
행복한 사람은 그 행복이 깨질까 봐 두렵다. 서로 사랑해 행복한 커플이 있었다. 그들의 고민은 언젠가 이 행복이 깨지는 것이 걱정이었다. 고민 상담을 해주는 사람을 찾아가서 고민을 말했더니 이러한 과제를 주었다.
30일 동안 여행을 하면서 30명을 만나 행복의 이유를 찾아오라는.
그들은 즐겁게 여행을 떠났다. 목적이 있으니 여행길이 더 즐겁고, 과제가 있으니 만나는 사람에 대해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브런치 처럼)
동네에서 제일 금슬이 좋다고 소문이 자자한 여인숙에 들렀다. 서로 살뜰히 챙겨주고 배려하는 모습이 정말 행복해 보였다. 그 비결을 묻자 두 사람은 이런저런 비결을 말해주었다. 그런데 말자랑이 끝나자 곧 어두운 표정으로 변했다.
"하지만…."
그 단어만 붙지 않았다면 완벽했다.하지만, 자식이 없어서 고민이라고 했다.
그들은 다시 여행길에 올라 자식이 많은 농가에서 하루를 보내게 되었다. 농부는 착한 자식들 자랑에 신이 났다. 자식이 많은 만큼 끊임없이 이어졌다. '하지만'이란 단어만 붙지 않았다면, 그 집은 이 세상에서 더 바랄 것이 없어 보였다. 하지만... 가난이 걱정이었다.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날 없다며 "휴우" 한숨을 쉬었다. 비바람까지도 사랑하기는 힘들었는가. 자식이 있는 분은 이미 짐작하시리라. 무슨 걱정이 계속 이어질는지. 상상에 맡긴다.
다음으로 그들은 돈 많은 부잣집에 들러 대접을 푸짐하게 잘 받았다. 그들은 욕심이 없고 예의와 덕을 갖추고 있었다. 소위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실천하는 사람들 같았다. 퍼펙트했다. 하지만이 붙지 않았다면말이다.
하지만... 그들은 항상 칼 든 강도가 들까 봐서 걱정이라고 했다. 허명이었나.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커플이 상담사를 다시 만났다.(과제를 상기하시라. 30일 동안 여행을 하면서 30명을 만나 행복의 이유를 찾아오라는) 상담사가 말했다.
"그래 여행은 즐거우셨소? 해답을 찾으셨소?"
그들은 이렇게 말했다. "이 세상에 행복을 말하는 사람은 참 많고 많았소."
하지만 그 끝에, '하지만'이 달리지 않는 사람을 아직 못 만났소. 하지만, 우리는 이제 행복의 이유를 찾는 여행을 중단하려 하오. 행복에서 하지만을 빼면 행복이 남는 것을 알았소."
커플은 어찌 보면 그 여행의 과제를 성실하게 완수한 셈이다. 통제할 줄 알았다. 처음 여행을 떠났던 이유를 잊지 않고, 적당한 선에서 멈출 줄 아는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처음 브런치를 시작했을 때의 마음)
이 글은 있음 직한 이야기로, 현제의 생활에 대한 만족이 행복이라고 읽힌다. 그러나 다른 각도에서 읽어 보면, 어쩌면 행복은 적당한 지점에서 자기 통제를 할 수 있는 지혜가 아닐까.코로나19가 길어진다. 말도 바이러스 같다. 스스로 말을 절제할 줄 알아야 겠다. 행복하려고 글을 쓰는 것이다. 내 평생 과제인 언어의 경제성과 효율성을 생각해서 교만하지 않고 스스로 자제할 수 있다면 얼마나 행복할까.
문득행복이 뭔지 이런저런 생각 자체를 하지 않고, 엉성하게 사는 것이 행복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생애 가장 젊은 오늘, 입맛이나 제대로 느끼자 싶었다. 폰을 내려놓고 밍밍한 밥을 먹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