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아트홀에서 복화술을 이용한 극(劇)을 보았다. 복화술이란 복화술사(발화자)가 자신의 입술을 움직이지 않고 물체의 입술을 움직임으로써, 마치 그 목소리가 물체의 입에서 나오는 목소리라는 착각을 강하게 일으키는 화법이다. 한마디로 유쾌한 속임수다. 속임수를 돕기 위해 흔히 인형을 사용한다. 인형을 사용하지 않을 때는 과장된 몸짓으로 소리가 나오는 것처럼 보이고 싶은 장소나 물체에 청중의 주의를 돌리고 말한다.
복화술사 에드거 버겐
복화술은 고대 이집트, 헤브라이, 그리스 등에서 근원을 찾아볼 수 있다. 사람을 혹하고 환상 속으로 끌어들이는 심리적 요소를 복화술사는 너무나도 잘 알고 있다.
장내는 낯선 장르에 대한 호기심으로, 막이 오르기 직전 무대처럼 조용하다. 기술이 좋은 복화술사일수록 소리의 거리나 높낮이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
특히 허공에서 울리는 듯한 동굴 목소리는 신비스럽기까지 하다. 그래서 고대 사람들은 복화술사의 말을 신적인 존재의 것으로 인식하였나. 공연이 시작되자 홀은 아이들의 큼큼한 웃음소리로 가득 찼다. 나도 인형의 뇌 속에서 나오는 소리가 아니라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감쪽같이 빠져들었다. 소리의 파장을 이용한 복화술사가 마치 물체에 의식을 불어넣고 있다는 객쩍은 생각마저 들었다.
문득 복화술사의 얼굴에 한 일본 과학자의 얼굴이 포개졌다. 그는 ‘물의 의식’을 알기 위해 8년 동안 얼음을 관찰했다. 실험에 쓰인 얼음은 보통 얼음이 아니다. 인간의 말을 듣고 자란(?) 물을 얼린 얼음인 것이다.
실험 결과부터 말하면, 좋은 말을 들려준 물의 결정을 현미경으로 보면 비할 데 없이 아름다운 육각형이다. 이에 반해 부정적인 말을 들은 물은 일그러진 형상이다.
게다가 신통하게도 물은 음악에 반응했다. 쇼팽의 ‘빗방울’을 들려준 물을 얼린 얼음은 빗방울처럼 생긴 결정을 취했다. ‘이별의 곡’을 들려준 물의 결정은 잘게 쪼개졌다. 한국의 ‘아리랑’을 들려준 물의 결정체는 어떠했을까. 상상에 맡긴다. 물이 인간의 정서에 상응하는 형태로 모습을 바꾸었다니... 과학자의 실험실이 실로 복화술사의 큰 무대 같지 않은가.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전자파를 실험하는 영상을 본 적이 있다. 전자레인지의 곁에 둔 물은 육각수 결정을 유지하지 못했다.과학자의물에 대한 관찰 실험은 보이지 않는 전자 파장을 이용한 것인지 모른다.
기도(화수분)
우리는 너무 인간 중심적 사고로 살아간다. 왈츠를 들려주며 키운 호박, 교향곡 들으며 자란 돼지고기 이야기를 들어 본 적이 있는가.
하지만 이런 실험을 통해 우리 인간은 행간을 잘 읽어야 한다. 좋은 말과 좋은 생각을 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글의 행간. 여백의 의미. 막과 막 사이.
흠, 과학자가 관찰한 얼음 중, 가장 아름다운 육각형 결정을 보인 것은 어떤 물인가. 사람은 물에게 어떤 말을 많이 들려주었을까.
그렇다. 바로 사랑과 감사의 말을 많이 들려준 물이다. 욕설이나 나쁜 말을 많이 들은 물의 결정은 삐쭉삐쭉 날카로운 모양이었다.
공연이 끝나고 나오니 빗방울이 콧등에 떨어진다. 상가의 처마 밑으로 들어가서 비를 피했다.금세 거센 빗줄기가 지나간다.처마를 심하게 두드리며 물분자가 요란하게 떨어진다. 실감 나게 바닥으로 떨어지며곤두박질친다. 뒤척이며 흘러가는 모습이 자연스럽다. 물에도 인간처럼 자신만의 언어가 있을까. 폭포에서 토해내는 웅장한, 저수지 둑을 넘어가는 고요한, 얼음 밑을 흐르는 깊은, 가랑잎 두드리는 가벼운, 경박한 등등.
복화술사라면 물에게태고적 원시 밀림의 빗소리를들려주어 영혼을 불어넣었을 것 같다.
“험한 빗줄기야 한바탕 뿌렸으니 이제 얌전히 지나가렴!”
누군가 내 마음을 읽었나. 두리번거려 복화술사를 찾아본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비가 그치고 하늘이 금세 맑아져 올 것 같다.
몽롱에서 깨어났다.
나는 평소 어떤 에너지로 사물을 대하며 살아가고 있는가. 자신 중심적으로 살아가고 있지는 않은지 한 번 돌아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