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0원이 한 달치 차비였던 10대 때 일이다. 오천 원이란 거금의 세뱃돈을 지니고 남동생 둘과 극장에 갔다. 표를 끊기 전에 군것질거리를 사고 싶어 근처 슈퍼에 갔다.그때는 큰 슈퍼도 계산기를 두드리던 시절이었다. 그게 현대식 슈퍼였다.
무엇을 살까 이것저것 눈요기를 하다가 진열대 위에 놓인 모과차 병이 눈에 띄었다. 목감기로 컥컥 기침하는 할아버지가 떠올랐다. 모과차 한 병과 식빵을 들고 계산대로 갔다. 오천 원을 내고 거스름돈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그 여종업원이 내가 천 원을 냈다는 것이다.
동생들이 우리 누나가 오천 원을 냈다고 해도 믿지 않았다. "정말이어요." 아무리 말을 해 봐도 식빵만 가져가라고 거스름돈을 주었다. 계산을 하기 위해 서 있는사람들이 모두 나를쳐다보는 것 같았다.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얼떨결에 그돈을 받아쥐고 돌아서고 말았다. 한번 돌아서니 다시 따질 용기가 없었다. 그냥 처량하게 식빵 봉지만 덜렁 들고 극장 주변을 맴돌다 집으로 돌아왔다. 생각할수록 억울한일이었다.
일주일 뒤에 문제의 사건이 터졌다. 나는 꼭 사천 원 어치는 아니더라도 그 모과차만은 가져오고 싶었다. 동생들을 데리고 그 슈퍼로 다시 갔다. 나는 태연하게 불투명한 빵 봉지를 들고 그 가게로 들어갔다. 모과차 병을 빵 봉지에 넣고, 과자 하나를 당당하게 계산하고 나왔다. 그리곤 부리나케 동생의 손을 잡고 걸었다. 한참을 갔다고 생각했는데, 바로 그때 뒤에서,
“학생 이리 와 봐!”
라는 큰 목소리가 들렸다. 남자 목소리였다. 큰 동생은 겁을 먹고 울먹이며 뛰고, 나는 작은 동생의 손을 잡고 혼신의 힘으로 걸음아 날 살려라 도망갔다. 헐떡이며 겨우 집에 당도해서 동생들을 달랬다.
“괜찮아, 우리는 알고 있잖아···.”
할아버지 드리려고 모과차만 가져온 것이니까, 결코 나쁜 일을 한 게 아니니 안심하라고 행위의 당위성을 설명했다.
그날 밤, 웬 시커먼 아저씨가 따라오는 꿈에 밤새 시달렸다. 식은땀에 흠뻑 젖어 잠에서 깼다. 창밖을 보니 깜깜했다. 깜깜한 밤하늘에 별들이 총총히 박혀 빛을 내고 있었다. 마음이 불안하면 별이 이렇게 많이 보이는가. 별에게 용서를 빌며 반성했다. 이유야 어떻든 남의 물건을 허락 없이 가져오는 일은 이런 두려운 심정이라는 것을 알았다. 열이 오르며 며칠을 앓았던 것 같다.
나는 그 일 이후 많이 변하고 성숙해졌다. 어둠이 깊을수록 하나둘 돋아나는 별처럼. 여러 경험을 쌓아가면서 나이를 먹어갔다. 10대에서 20대로, 30대로, 40대, 50대로···. 각기 다른 속도로 나이 들어갔다.
되돌아보면 내가 별을 헤던 날들은 평소와는 다른 날이었다. 부족함이 없을 때는 하늘에 별이 있는 것조차 느끼지 못했다. 늘 무언가에 쪼들려 꿈이고 뭐고 다 날아가 버리려 할 때, 문득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았다.
밤하늘의 별을 올려다본다. 그때의 그 별 이건만 세상의 때가 묻어서인지 순수한 감동에 잠길 수 없다. 어떤 때는 별이 황금덩이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