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명한 어느 날 오후. 아파트 단지 내 공지를 장터로 삼아 길을 따라 시골 5일장처럼 장이 섰다. 나는 분위기에 이끌려 한가로운 마음으로 구경하던 중, 한 가게 앞에서 우뚝 발걸음을 멈추었다. 그릇 가게였다. 넓적한 그릇 하나가 눈에 쑥 들어왔다. 그 그릇에 국수 한 그릇 말아먹으면 순수해질 것 같았다. 손으로 빚어서 가마에 구었는지 정형화되지 않고 살짝 이지러진 모습이 자연스럽고 편안했다. 무명의 도공이 빚었으리라. 그리고 나는 무심히 가게 앞을 지나쳤다.
왜 그 그릇은 내 발걸음을 되돌릴 정도로 그렇게 집요하게 나를 따라다녔을까. 나는 그 그릇을 다시 한번 보려고 그 상점 앞에 다시 갔다. 그릇에 마음이 끌리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유혹이란 얼마나 묘한 것인가. 처음에는 내가 그 그릇을 바라보다 돌아섰다. 그런데 차츰차츰 그것이 마음을 휘저어 놓았다. 고 소담한 모양새, 색감, 인위적이지 않은 분위기에서 오는 느낌이 마치 사랑하는 사람의 얼굴처럼 은근하게 마음을 뚫고 들어왔다. 나는 이미 그릇을 원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그 마음이 은근했지만, 점점 간절해져서 결국은 소유하고 싶은 마음에 사로잡혔다.
그릇가게 주인은 내 눈빛을 보고 바로 알아차렸으리라. 은근한 욕망이 점점 더 커지는 것을. 나는 결국 그릇을 사서, 소중한 것이라도 얻은 양 가슴이 감싸 안고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초등학교 때 유행따라 잠깐 해 본 우표수집 이후로 수집가가 아니다. 그러니 무언가의 수집가가 자신이 간절히 원하던 것을 막 손에 넣고 벅차하고, 황홀하게 함께 밤을 보내는 그 밀월의 재미를 잘 모른다. 그런데 바로 이런 기분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마치 그릇이 살아있는 것인 양 눈과 손으로 쓰다듬는다. 부드러움이 밴 눈으로 지긋이 쳐다본다. 입술을 살짝 대본다. 나는 정말로 그 그릇을 좋아했다. 소유한다는 것이 이런 것이구나. 내밀한 즐거움을 만끽하면서 황홀한 마음으로 그것을 다루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문득, 그 그릇에 한 사람의 얼굴이 스쳤다.
우리는 과수원이 바라다 보이는 들마루에 앉아서 국수를 먹었다. 하얀 배꽃이 바람에 떨어져 넓적하고 이지러진 그릇에 담긴 국시물에 살포시 내려 앉았다.
유혹이란 얼마나 기이한 것인가. 처음에는 물건이 마음을 뒤 흔들어 놓는다. 그 모양, 색감, 형상에서 오는 매력이 사람처럼 마음을 꿰뚫고 들어온다. 백지에 하얗게 스미듯 번져간, 보이지 않는 기억의 한 끄트머리를 잡고. 배꽃이 날리 듯 그녀는 그렇게 떠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