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영, 웃는 나무

친절한 부제

by 햇쌀

'겨울산'이구나 싶었다. 그런데 부제를 보니 '봄산'이다.


카페 벽에 풍경 액자가 걸려 있다. 무한한 천공이 마른 나뭇가지 사이에 얼비치었다. 같은 고동색 계열의 나무도 농담濃淡으로 입체감을 주니 차원이 몇 개나 된다. 그림 한 구석에 여백처럼 삭연한 눈이 쌓여 있다.

며칠 전 걸었던 앞산 둘레길이 그림에 포개졌다. 둘레길은 대모산, 구룡산, 우면산으로 산의 맥박이 연결된다. 산으로 드는 들머리에는 장승처럼 벙긋이 웃는 나무가 서 있다.

둘레길 초입(화수분)


"잘 오셨소."

장승이 유쾌하게 웃는다. 장승이라고는 했지만, 허리가 잘린 나무다. 동강 난 몸통에 산새가 둥지를 트느라 구멍을 냈는지, 딱따구리가 벌레를 파먹기 위해 구멍을 냈는지, 버섯 핀 옷을 입은 나무가 마치 허허 웃는 사람 얼굴 같다. 나무는 잘려도 영혼까지 웃나 보다.

흙길은 녹아서 산새 발자국이 찍혔다. 허리를 펴고 오름길을 보니, 양쪽으로 늘어선 나무의 원근이 조화롭다. 아직 새잎이 달리진 않았어도 폭신한 느낌이 든다. 뾰족한 바늘끝 같은 솔잎도 봄기운이 들었는지 보드라워 보였다. 지난 계절 무수히 밟혔을 떡갈나무 잎은 밟혀도 더 이상 바스락 소리를 내지 않는다. 흙으로 돌아가기 위해 이미 제 몸의 뼈를 다 녹였나 보다. 양분을 먹은 봄산의 숨소리. 작년에 벤 나무인가. 동면에 든 나무더미 속에선 버섯 포자가 눈 녹은 물로 숨을 쉬리라. 파릇하게 이끼가 올라와 앉았다. 온몸으로 느낀 포근한 봄의 감촉.

액자의 고동색 계열 그림 한 폭은 봄의 감촉을 담은 봄산이었다. 친절한 부제가 없었다면...,
영락없이 겨울산으로 감상했으리라.

사람도 봄산처럼 겉보기는 차가워도 속이 따뜻하고 포근한 사람이 있다. 흠 , 사람도 '나 포근한 사람임'이라는 부제가 필요할까.
따뜻한 성질의 차, 따뜻한 성질의 음식처럼, 우리는 그저 나무의 영혼에서 우러난 것 같은 따뜻한 말 한마디에 힘을 낸다.

웃는다. 나무가.

"환영, 어서 오시오. "*

둘레길 초입 웃는 나무(화수분)
환영, 웃는나무 (화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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