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이 남자는 사지 관절이 굳어버린 채, 태초의 진흙으로 조금씩 돌아가고 있는 것 같다.
혼자 있는 시간이 늘었다. 내 동선은 고작 5미터 반경에 불과하다. 그 공간 안에 생존에 필요한 것이 다 있으니깐. 침대, 식탁, 소파, 책상과 의자. 그리고 냉장고 파먹기. 대부분의 시간은 창가의 의자에서 턱을 괘고 보낸다.(턱을 괴는 버릇은 척추 협착으로 허리가 아파서)
"다 내려놨어···."
이 말만큼 자조적인 말이 있을까. 지금까지 이 한마디를 반복하면서 마음을 다스려 왔다.
그런데···.
그 내려놓은 자리에 한 남자가 똬리를 틀고 있다. 한번 지난 인연은 미련 없이 마음속에 마침표를 꾹 찍어 놓아야 한다. 그것만이 자신을 방어하는 기제였다. 깨알 같은 연민조차도 다 툭툭 털고 인연의 마침표를 쌓으며 살아왔다. 담은 높았지만, 나는 그다지 야박하지 않아서 주변 사람도 무심히 대하지 않았다. 시간도 열심히 쪼개가며 구르는 돌처럼 현실의 나를 견고히 다졌다.
어느 날부터 마침표 방어벽이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런 배신감이라니. 나는 불식 간에 고독한 짐승이 되어 당신을 떠올린다. 세월의 더께 때문인지 당신의 모습은 두루뭉술하고 희미하다.
우연히 라도 당신과 마주하는 날이란, 단아한 도자기, 영롱한 난초 아니, 그런 생물의 이미지가 아니라, 어깨선이 고운 드레스를 입은 원숙한 여인이고 싶었다. 그런데 이런 웅크린 조각의 자태로, 헝클어진 짐승의 자태로 당신을 그리워하다니.
이제 허락도 없이 마음대로, 기억을 되살리는 지우개로 당신을 불러오려 한다. 단 한 가지 우려되는 것은, 지금의 내 고독한 정신이 당신의 가치를 실체보다 더 크게 인지할지도 모르겠다는 것.
눈을 감으니 지나온 삶의 통과의례가 뇌의 미로를 쏜살같이 지나간다. 마치 고속열차의 창문으로 스치는 풍경처럼. 나는 탄생, 명명, 성인식, 혼인식, 회갑··· 죽음과 같은 접점을 통과하겠지. 인간이면 누구나 맞이 하는 의식이지. 쏜살 같이 지나는 풍경에서 그래도 용케 당신의 모습을 포착한다.그동안 다 내려놓았다 자위하면서, 내 마음의 중심은 항상 당신을 의식했나.
녹음이 우거진 나무는 그 실체를 알 수 없다. 한 자락의 옷까지 밑둥치에 벗어놓고 오롯이 맨몸으로 오시길. 지금 나에게 필요한 것은 당신의 풍성한 모습이 아니라 당신을 그리워하지 않는 나. 내가 당신을 그리워해도 되는지 그 실체 그대로 와서 내 앞에 서기를. 이미 마침표를 찍었고, 잊힌 사람이라고 못 올 것도 없지 않은가. 어차피 삶이란 불안전한 것이니.
캄캄한 시야가 밝아지면서 당신의 모습이 천천히 다가온다. 선한 뒤통수, 윤기 나는 머리카락이 물 위로 투영된다. 인간은 물이 닿으면 스러지는 진흙으로 빚은 조각상이 아니다. 태초부터 인간은 자궁 안의 물속에서 벌거숭이로 태어났다.
멋지게 성장한 모습이 연상된다. 겨드랑이에 힘찬 날개를 달 것 같은 어깨. 세월은 척추를 따라 강물처럼 흘렀구나. 이런이런, 척추가 굽어져 휘었다니. 볼품없이 드러난 갈비뼈, 깡마른 몸. 골반 아래로는 처진 엉덩이와 빈약한 허벅지···. 긴 두 다리가 다가온다.
아, 내가 좋아하는 향! 발자국마다 블루 드 샤넬 향이 난다. 청량하고 깊은 당신의 향. 시공을 초월해서 풍겨온다. 심장이 주체할 수 없이 쿵쾅거린다.
실낱 하나도 걸치지 않은 몸. 만약 당신이 옷을 입었다면 짙푸른 색상의 옷을 입었겠지. 아마 카키색 코트의 깃을 높이 세우고, 회색 바지에 흰 와이셔츠. 한 손엔 밤색 가죽 가방을, 다른 손은 주머니에 쑥 찔러 넣고 뚜벅뚜벅 왔을 거야.
고개를 들기 전, 중요 부분을 가려주길. 상상하기 민망하니까. 태초의 아담과 이브도 무화과 이파리로 가렸지 않은가.
아... 그렇군. 탄성이라곤 찾아볼 수가 없는 팔뚝과 빈약한 가슴 근육. 옆모습도 보여주어 봐. 약간 아래를 보는 당신의 윤곽은 선이 곱고 그대로야.
왜 두 팔을 앞으로 벌리는데? 안아달라고? 잃어버렸던 귀중한 감정이라도 느꼈는가. 아니면 어떤 감정의 표현인가. 여기 의자에 앉아 봐. 흠, 턱을 괴는 버릇은 여전하군. 로뎅의 조각상처럼···.
아니마 아니무스
앗···! 당신은 누구십니까?
아니무스! 내 안의 남성적 본능. 무의식의 인격화.
당신이 이렇게 오시다니. 탄생 때부터 잠자리까지 늘 함께 였다고? 통과의례의 접점에는 항상 당신이 있었다?
그런데 왜 이다지도 당신이 낯선 것인가?
내가 아는 당신은 근육질에 늑대와도 같은 야성이 있지. 언제 잃어버렸나. 영웅과도 같은 기개는 어디로 갔는가.
아니마, 나는 언제부터 착한 딸, 온순한 아내, 자상한 어머니라는 명함에 순응하는 집짐승이 되어 갔는가. 몇 개의 가면을 가진 어릿광대가 되어 춤을 추었는가.
생명력이 강한 자아가 모여 사는 지붕이 가정이라지. 그런데 내 원형은 어디로 가고 포장된 이미지로 남아 있는가.
아니무스! 10년 전 고민은 무엇이었나. 20년 전은 어땠나. 그 이전은···. 앞으로는 어떤 모습일까. 혼란스럽다.
여성성인 아니마는 어떤 존재이며, 남성성인 아니무스는 무엇인가?
나는 상투적인 그 이상의 대답을 원한다.
긴 기간 침묵했던 소리.
여성의 내면에는 남성적인 면을 상징하는 ‘아니무스’가 내재하는 반면, 남성의 내면에는 여성적 자아인 ‘아니마’가 내재해 있다. 어느 한쪽을 선택한다는 것은 다른 쪽을 잃는 것이 아니라 다른 쪽과 조율을 하는 것. 이 둘이 조율하여 조화를 이룰 때, 비로소 성숙한 자아를 가질 수 있다는 말.
오늘, 내 인생길에 엄격한 통과 의례를 하나 더 추가했다. 40대와 50대 사이에. 내 안의 또 다른 나를 조율한 날.
아니무스! 이제 나는 당신에게 잃어버린 늑대를 한 마리 보내겠다. 야성적 자아가 좀 더 움트도록. 그리고 맹자와 같은 성현도 옆에 앉히겠다. 부드러운 힘을 가진 원형과 친숙해지도록. 간디와 같은 지혜로운 행동가도 곁에 두겠다. 내면을 단련하고 풍요로운 영혼을 키우도록.
아니마! 슬슬 5미터 반경을 넘어 외출을 준비하겠는가. 아니무스와 함께.
아니무스! 똬리를 풀고 그 향내를 마음껏 풍겨주길. 내 심장이 다시 뛰도록. 당신은 늘 그 자리에!* 201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