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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밥과 노지귤

by 햇쌀

창문으로 눈발이 히끗히끗 날린다.

때마침 제주에서 청정 노지귤이 도착했다. 다오랑 서귀포 농장의 노지귤이다. 이름도 참 예쁜 농장이다. 이 농장을 알게 되어 기쁘다. 나는 사과와 귤 박스를 열 때 엷은 행복감을 느낀다. 박스를 열자 균일하고 윤기 있는 귤이 반갑게 인사한다.

"안녕허우꽈. 반갑수다."


겨울철, 향긋한 귤이 한 박스 곁에 있다면 상상만으로도 행복하지 않은가. 넉넉하게 한 봉지씩 나누어 먹는다면 훈훈한 인정도 구수하게 깊어지리라. 마치 그 옛날, 할아버지가 옥수수 강냉이 한 자루 튀겨 사랑방에 놓아둔 것처럼.

"건넌방에 가서 한 바가지 퍼 오렴"

당신의 그 목소리 들려오는 듯...


옛날이라면, 이렇게 추운 날은 화로나 난로가 제격이다. 보일러 온도를 높이고 스탠드를 켜고 읽고 싶었던 책을 들고 누웠다. 내 곁에 다소곳하게 앉아 있는 간식 바구니.


사철 강냉이를 파는 강냉이 가게가 아파트 동문 입구에 있는데, 요맘때면 공주 밤을 구어 판다. 강냉이도 바삭하고 군밤 알도 유난히 노랗고 실하다. 그 구수한 맛이 좋아서 군밤 껍질 벗기기의 번거로움을 잊고 해마다 사 먹게 된다.


강냉이를 먹고 귤을 먹으면 배가 꼬르락 거리지만, 군밤과 귤은 궁합이 잘 맞는다. 무엇보다도 군밤과 귤, 귤과 군밤의 고소하고 상큼한 맛을 번갈아 먹으면 왠지 그리움을 번갈아 먹는 것 같다.

눈발이 서서히 저물어가는 해를 스친다. 오늘 하루 무탈했다. 군밤의 목메임을 귤즙이 뚫어주는 궁합으로.


내 인생의 목메임도 이처럼 상큼하게 뚫렸으면 좋겠다. 상큼한 귤향기가 먼저 콧속으로 들어와 혈액처럼 한 바퀴 몸을 순환하고, 풍부한 즙이 새콤 달콤함으로 혀에 머문다.*


서귀포 다오랑농장 노지귤(화수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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