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도 다 지나간다. 이맘 때면 산과 바다 어디에든 인파가 들끓던 시절이 먼 옛날이야기처럼 들린다. 경치 좋고 시원한 곳은 어디든 검은깨를 쏟아 놓은 듯 사람이 많았었다. 어중이떠중이 실속 있는 피서를 보내기 위하여 머리를 짜내서 연구하곤 했는데 그 시절도 떠나갔다. 이제 피서지는 피서지가 아니게 되었다. 계곡도 해변도 모처럼 휴지기를 맞아 한 여름을 편하게 한숨 돌린다고 생각하니 사악한 인간의 마음도 편해진다.
햇살 좋은 아침,
쓰르름 쓰르름.
늦매미 소리가 강원도 인제 자작나무 숲을 상기시켰다. 시원하게 뚫린 서울 양양고속도로. 자작나무 숲으로 떠나볼까 채비를 하다가 사찰로 발걸음을 옮겼다. 소리 깊은 자작나무 숲을 대신해서 연한 미소가 내 발걸음을 잡아끌었나 보다.
진여문을 들어서니 허공을 흔드는 연꽃잎 소리. 소리 없는 소리가 공간에 가득 차 숨소리조차 잡음으로 생각되었다.
항아리에 담긴 꽃잎이 순한 바람에 실려 절마당에 떨어져 소리 없이 멸하니 그 자체가 순결하다. 사뿐히 사라지는 그 목숨에 몇 잎 붙어 있는 꽃잎이 추하지 않고 더욱 고요하고 청초하게 빛을 내고 있다. 꽃잎 진 자리에 어김없이 돋아나는 황금빛 연밥이 성스 로워 보였다.
한 잎 두 잎 꽃잎이 떨어져 먼지로 사라지는 과정마저 아름다운 꽃. 언제나 작고 순한 것들은 죽으면서도 날을 세우지 않더라. 절마당 돌 틈에 끼인 좁쌀보다 작은 이끼 꽃잎 한 잎이고 싶다.
작은 것들에 대하여ㅡ 윤강로
한낮 허공에 가득한 빗소리
항아리에 담긴 시든 안개꽃이 마룻바닥
에 지니, 순결한 몰락이다 무너지는 소리
를 키우지 않는 안개꽃의 목숨은
등불 켜지도 않아도 별꽃이다
유리창에 굴러내리는 빗방울은 어느 아
득한 나라로 향하는 묘연한 잠적인
지...... 순하고 억울한 사람들은 컴컴한
뒷소문 남기지 않고 사라지는 빗방울 빗
방울은 차가운 벽에 손톱을 세울 줄 모
른다
빈 산에 잔 돌멩이 굴리며 넘어가던
어깨 젓은 사내가
아기똥풀 곁에서 오줌을 누고 있다
하늘에 오르면 별이 되는
작은 것들
나는 지금 말간 술잔에 떨어지는 눈물
한 방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