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독서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좋은 책이 너무도 많습니다. 일생을 읽어도 다 못 읽을 정도로 책이 쏟아집니다. 도움이 될만한 독서법이 있어 소개합니다.
"아무리 대가의 글이요 세상이 떠드는 글이라도 제 눈에 안 들면 버린다. 아무리 무명인의 글이요, 남이 나쁘다 해도 제 눈에 들면 택한다 하는 주관적인 선택이 필요하다. 이태백의 <봉황루> 시는 만고의 절창 이건만, 김성탄이 그 첫 귀를 헐뜯었고 <<수호지>>는 당시 천시되던 글 이건만, 성탄이 천하 최고의 글이라고 했다. 이런 용기와 자신이 필요하다. 그럼으로써만 자기 개성에 맞고, 자기 정도에 맞는 책을 선택할 수 있으며, 그런 글만이 자기의 피와 살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어떻게 해서 주관적 선택이 가능할 것인가. 몇 가지 기초적인 조건을 알아둘 필요가 있다.
글을 읽고 나서 이 글이 나에게, 어떤 감격을 주었나, 어떤 정서를 안아다 주었나, 어떤 새로운 문제를 제기해 주었나, 이 사람은 무엇 때문에 이 글을 쓰지 않고는 못 배겼나 생각해 봐서 하나도 뚜렷한 것이 없으면 그 글을 읽지 마라. 그것은 저속한 글이거나 무의미한 잡문이다. 그런 글을 많이 읽으면 만화가게 드나드는 초등학생이 공부 못 하는 것과 같이 글을 못 쓰게 된다.
다음은 문장 표현 면에서도 선택의 조건이 있다. 그러나 이것은 습작을 말할 때 아울러 말하기도 하고 독서의 방법을 아울러 말하겠다. 자기가 좋다고 생각한 글이거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싫도록 읽는다. 이것이 유일한 방법이다. 그렇지 않고는 좋은 글을 못 쓴다. 왜냐하면 독서의 첫 단계는 그 글을 따라가려는 노력이요, 둘째 단계는 그 글을 정복하려는 노력이요, 셋째 단계는 그 글을 버리고 앞서 가려는 노력인 까닭이다. 그래서 더 높은 글, 또 더 높은 글을 발견하고 애독하고 정복하는 것이다. "
위 글은 윤오영, <<수필문학 입문>>에서 인용한 글입니다.
"만화가게 드나드는 초등학생" 대목에서 풋하고 웃음이 나와 버렸네요. 바로 제 말 같아서입니다. 돈만 생기면 만화가게 꽤나 들락거렸던 생각이 났습니다. 그때는 그게 그렇게나 신나고 좋았는데...
지금은 무엇이 그만큼 좋을까 잠시 생각해 보았습니다.
좋은 사람에게 좋은 일이 ㅡ 박노해
좋은 사람을 만나니
좋은 일이 생긴다
그는 담소 중에 단지
1834년 발간된 후 절판된
책 한 권을 건네줬을 뿐이다
그 낡은 책 한 권을 읽다 보니
나는 순식간에 고원을 걷고 있었고
만년설 사이로 여명의 길이 보인다
좋은 사람을 만나니
희망의 노래가 들린다
그가 선물한 파슈툰족 음반 한 장에서
깊고 강인한 아프가니스탄 산맥의 힘을 느끼며
불의한 전쟁의 귀결을 예감할 수 있었으니
좋은 사람들이 모이니
한 줄기 빛이 보인다
어둠이 몰려오는 세상에서
무력한 내 삶에 대한 감사가
절망의 세계에서 인간에 대한 신뢰가
눈물 젖은 미소로 피어오른다
좋은 사람에게
좋은 일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