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빛에 빛나는 소나무를 보면 항상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나는 대한민국 교사를 한 적이 있다. 두메산골 초등학교에서 음악 교과를 담당하며 순박한 아이들과 '풍금 수업’으로 만난 일이 지금도 어제 일처럼 생생하다.
벌써 30년도 더 된 이야기다. 그때 내가 교사가 된 현실은 배가 고파서였다. 변화는 놀라운 것이다. 지금은 교사가 하늘의 별따기 직업이 되었고, 교사 중에서도 초등학교 교사의 행복지수가 가장 높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초등학교 수업은 누구나 경험하지만 초등학교 교사는 누구나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밤이면 금빛 별빛이 쏟아지고 학교 앞에 은하수 같은 강이 흐르던 초임지. 산 그림자 정겨운 산과 소처럼 눈이 곱고 노루처럼 밝게 뛰어노는 아이들이 곁에 있어도 늘 쓸쓸했다.
돌이켜보면 다만 한 달마다 또박또박 나오던 두툼한 월급봉투의 손맛을 직접 느끼며 어머니에게 봉투를 내밀던 그날의 환희를 빼면 아무것도 남아있지 않을 것 같던 추억들. 머리숱 많던 처녀 선생의 생각은 언제나 휘황한 도시의 불빛에 가 있었다. 시골 다방에서 커피를 마시고 클래식을 들어도 채워지지 않던 마음. 산 깊고 물 맑은 아름다운 산천이 마냥 쓸쓸하게만 느껴졌던 그때. 마음 한구석은 늘 기름진 것에 허기지고 헛헛했다.
그때 무엇을 보고 어떤 방법으로 생각했나 가, 메말라가는 현재의 나에게 옹달샘물을 길어 글밥을 짓게 하는 원천이 되곤 한다. 나이 차이가 크게 나지 않은 첫 졸업생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어쩌면 같은 생각을 공유하며 이웃에서 마주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를 일이다. 그때 하숙집 뒤란 장독대에서 달빛 받던 옹기가, 그 달빛이 말을 걸며 글썽인다, 반짝인다.
추억에서 ㅡ 박재삼
진주 장터 생어물 전에는
바다 밑이 깔리는 해 다 진 어스름을,
울 엄매의 장사 끝에 남은 고기 몇 마리의
빛 발하는 눈깔들이 속절없이
은전만큼 손 안 닿는 한이던가
울 엄매야 울 엄매,
별밭은 또 그리 멀리
우리 오누이의 머리 맞댄 골방 안 되어
손 시리게 떨던가 손 시리게 떨던가,
진주 남강 맑다 해도
오명가명
신새벽이나 밤빛에 보는 것을,
울 엄매의 마음은 어떠했을꼬,
달빛 받은 옹기전의 옹기들같이
말없이 글썽이고 반짝이던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