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의 뿌리는 흙의 숨결을 타고 스스로 뿌리를 깊이 내려야 생명력이 있다”
'숨결'이란 단어가 뇌리에 깊이 박혔다.
밤사이 태풍이 지나갔다. 밖으로 나오니 단지가 어수선하다. 습관대로 도로 쪽 길로 접어들었다. 무수히 떨어져 있는 나뭇잎을 밟으며 걷고 있자니, 발길을 막는 무엇이 있다.
뿌리가 뽑혀 넘어져 있는 나무. 지나다 보니 한 두 그루가 아니다. 30년 이상 된 조경수가 이리도 무참한 최후를 맞이하다니. 여름이면 시원한 그늘과 수령에 걸맞은 운치를 제공해 주었는데 참 아깝게 되었다.
발끝으로 이리저리 나무 가지를 피해 가다가 문득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굵은 나무가 뿌리 째 뽑히다니.
해마다 태풍이 몇 번씩 지나갔다. 그때마다 허리가 꺾이거나 센바람에 가지가 부러진 나무는 보았어도 이렇게 뿌리를 몽땅 드러낸 적은 없었다. 이번 태풍의 위력이 이렇게 강력했구나.
하지만 의아한 것은 태풍의 위력이 아니라, 뽑힌 뿌리의 모양이었다. 굵고 곧은 나무의 겉모습에 비해 드러난 뿌리는 파뿌리처럼 약해 보였다. 갈퀴처럼 옆으로 퍼져 있는 모양새가 굵지도 길지도 않고, 저 큰 몸채를 지탱한 뿌리치고는 보잘것 없어 보였다. 어떻게 저런 뿌리로 고된 세월을 버틸 수 있었는지.
옆 동네 지인에게 뿌리 이야기를 했다. 그녀도 봤다고 했다. 이런저런 태풍 피해 이야기를 했지만, 뿌리에 대한 갈증이 속 시원하게 해결되지 않았다.
그런데, 며칠 뒤 그녀가 산림 쪽에서 일하는 지인에게 물어봤더니 이렇게 말하더라는 것이다.
“겉 토양이 비옥해서”그렇다고.
깊이 뿌리를 내려 치열하게 영양분을 빨아올리지 않아도 될 만큼, 겉 땅이 기름지면 뿌리가 얕게 옆으로 퍼진 다는 것이다.
아, 그렇구나. 도심 한가운데 있는 아파트 단지 안의 겉 땅이 황폐하면 황폐했지 기름질 것이라고는 미처 생각 못했다. 나는 해마다 거름도 주고 나무둥치를 옷처럼 입혀주는 것을 봐 왔지 않은가. 가뭄이 들면 급수도 해 주지 않던가.
겉흙의 영양이 너무 풍족해서 나무 스스로 흙의 숨결을 따라 뿌리를 깊이 내리지 못했다고 생각하니, 문득 자식 키우는 엄마라서 그런지, 먼저 교육과 연관 지어 생각하게 되었다. -- 흙의 숨결을 생각하며, 2015년 8월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