쳇바퀴 같은 일상이라도

by 리시안


식탁 벽 엔틱시계


식탁 하얀 벽

유럽 귀부인 시계가

가느다란 허리 같은 초침으로

느린 왈츠를 춘다


맞잡은 손으로 뱅글뱅글

무거운 발을 떼면서

시간을 늘어뜨리면

이름을 잃은 오후는 창밖에서 서성인다


뒤늦게 찾아온 밤은

푸른 달빛에 취해

느릿느릿 발걸음을 옮기고

이름을 잃은 아침은 서두르지 않는다


느려도 좋은 세상은

나뭇가지 바람에 일렁이는 소리

작은 새들의 지저귐을 들려주며

이름을 찾을 때까지 쉬었다 가라고 한다





여름 비가 내리는 주말 새벽이다. 뜨거운 햇살에 지칠 때쯤 내려준 여름 비가 나무와 풀들도 얼마나 반가울까. 아이들 방에 켜져 있는 선풍기를 꺼주고 나왔다. 시험기간이라 늦게 잠이 들면서 선풍기를 켜고 잔 모양이다. 큰아이의 방에 있는 선풍기를 볼 때마다 4년 전이 생각이 난다. 4년 전 큰아이가 대학생이 되기 전부터 있었던 선풍기였을 것이다. 정확히 언제 우리 집으로 온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4년 전을 기점으로 아이방에서 함께하고 있다.


큰아이가 대학생이 되던 해 여름, 이맘때쯤 아들과 선풍기는 한 몸이 돼서 여름을 보냈다. 밤에 잠을 못 이루던 아이는 낮밤이 바뀌고 에어컨이 있는 거실에도 나오지 않았었다. 가장 힘들었던 그 시간 속에 선풍기는 아들의 뜨거운 가슴을 식혀주는 유일한 바람이었다. 이리저리 차여서 넘어지기를 수십 번을 했을 선풍기가 아직도 아이방에서 바람을 일으켜주고 있다는 것이 그저 신기하다. 시간이 지난 지금 아들과 나는 선풍기를 볼때마다 저 회사 선풍기는 성능인정이라고 말한다. 나야 회사를 알고 있지만 요즘 세대는 잘 모르는 회사 제품인데, 4년을 지나도 그 견고함에 믿고 사는 제품이 되었다. 동굴 같았던 아들의 방에서 여름 내내 돌아가던 선풍기였다.


다시 매년 여름이 되어 꺼내져서 작동되는 것을 보면 물건이지만 생명력에 대단함을 느낀다. 지금도 시원하게 돌아가는 선풍기와 곤히 자는 아들의 모습을 보면서 물건에도 인연이 있다면 저 작은 선풍기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방의 선풍기는 그때의 큰아이의 힘듦을 모두 기억하고 있을 것만 같다. 모두가 잠들었 때 큰아이 혼자만 잠들지 못하고 괴로워했던 시간을 묵묵히 함께 해주었던 선풍기였다. 다시 평온하게 돌아가는 이 시간이 그저 감사한 마음이 든다.


오늘처럼 비가 오는 날은 특히나 집에 있기가 아쉬운 맘이든다. 다행히 우리 아파트 옆에는 24시간 창 넓은 햄버거 집이 있는데 사람이 없는 시간에 창가에 앉으면 비 내리는 거리를 바라보기가 여유롭고 좋다. 이른 아침이라 한산해서 아침 커피 한잔을 받아 2층에 앉았다. 넓은 사각 층을 통해 2층에서 보는 거리는 액자 속에 풍경사진 같다. 비 오는 날이면 더욱 정적인 풍경이 된다.


사놓고 못다 읽은 에세이집을 꺼내 읽었다. 박완서 님의 에세이집이다. 천천히 읽고 싶었던 책이라 읽다가 남겨 두었던 책이었는데 어쩌다 한참이 되었다. 집에서는 해결해야 할 일들과 나를 찾는 가족들 때문에 책을 읽기가 쉽진 않다. 오늘은 마저 읽기 위해 작정하고 나왔다. 천천히 밑줄을 치며 읽었다. 예전에는 밑줄을 잘 치지 않았는 데 요즘은 좋은 글은 밑줄을 치는 버릇이 생겼다. 다시 읽을 시간이 없다는 이유도 있고 깜박도 잘해서 샤프펜을 들고 책을 읽곤 한다.


책의 내용 중에는 처마 밑에 생긴 말벌집 치우는 이야기가 나온다. 벌집을 없애기 위해서 샤워꼭지의 직수를 이용해서 말벌집을 쏘았는 데 말벌의 새끼들을 물과 흘려보내고 불편한 마음에 악몽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셨다는 이야기다. 그런데 그 자리를 말벌들이 돌아와서 새끼들을 못 잊고 슬퍼하는 것이 아니었을까 두려웠던 기억의 글이었다. 문득 비슷한 마음을 가졌던 일이 생각이 났다.


몇 달 전 아침 욕실에서 작은 벌레 한 마리를 본 적이 있었다. 깜짝 놀라서 순식간에 물로 흘려 보냈다. 그 순간은 벌레라고 생각했었는 데, 흘려보내고 나니 작은 거미이지 않았을까 하는 마음이 들어 내내 불편한 적이 있었다. 마음으로 미안하다고 몇 번을 말했는지 모른다. 소심한 마음에 꽂혀서 하루를 꼬박 괴로운 적이 있었다. 마침 그쯤 지장경을 필사하고 있을 때라 마음이 더 그랬는지 모르겠다. 지장경은 삶과 죽음에 관여된 경전이라 더 마음이 무거워 그날은 더 필사를 열심히 했었다.

그렇게 몇 달이 지나고 얼마 전 빨래를 개고 있는 데 이번에는 진짜 작은 거미 한 마리가 빨래를 따라 들어왔다. 머리카락 한가닥이 뭉쳐있는 듯 가늘고 자세히 보아야 볼 수 있었다. 사는 곳이 1층 아파트라 가끔 베란다 문이 열려 있을 수 있는 일이었지만 거미를 맞닥드리는 일에는 여전히 움찔한다. 바닥에 떨어진 거미가 멈춰있을 때 투명 비닐봉지를 가져와 살짝 덮었다. 거미가 봉투 안쪽으로 들어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얼른 봉투 입구를 잡고 밖으로 뛰어 나갔다. 다행히 문을 열고 나가면 바로 아파트 화단이 있어 흙 위로 떨어뜨려 줄 수 있었다. 아주 순식간에 생긴 일이었는 데 곤충을 못 만지는 나는 진땀 나는 일이었다. 살려 보내서 너무 마음이 놓였다. 그래서 조금은 이해가 되는 대목이었다.


에세이집을 거의 읽을 때쯤 그동안 몰랐던 이별에 대한 슬픔에 눈물이 났다. 엄마라면 알 것 같은 극한의 아픈 심정이 담담히 적힌 글을 읽으면서 그 담담함에 더욱 먹먹해졌다. 겪어보지 못한 나는 감히 가늠할 수 없는 일이다. 다만 슬픔을 마주 하는 것 역시 마음이 얼마나 큰 희망이 되고 견디어지는 힘이 될 수 있는지 조금은 짐작해본다. 장마가 시작되었다. 연일 내릴 빗물을 따라 지금의 불안과 걱정들도 흘러갔으면 좋겠다. 시간이 지나고 나면 어김없이 장마가 멈출 것이고 말갛게 갠 하늘이 우리를 기다릴 것이다. 쳇바퀴처럼 돌아가는 세상이라서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