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대 기다리는 시간
그대 기다리는 시간
나는 꽃잎이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그대 기다리는 시간
나는 꽃향기 되어 그대에게 가고 싶다
바람만 불어준다면
그대에게 데려다줄 수 있다면
나는 떨어지는 꽃잎이어도 좋고
나는 날아가는 꽃향기라도 좋다
그대 오는 길목 아카시아 나무 아래서
바스락 소리에 그대인 줄 알았다가
달빛 그림자에 그대인 줄 알았다가
베란다 밖으로 올해 보는 첫눈이 온다. 바닥에 수북이 쌓인 은행잎 위로 흰 눈들이 살포시 내린다. 내릴 때는 펄펄 내리던 것이 은행잎 위에는 살살 내려앉는다. 노랗던 바닥이 하얗게 바뀌어간다. 문득 병원에 계시는 엄마 생각이 났다. 그래서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인 지붕과 펑펑 눈 내리는 풍경을 동영상에 담았다. 다인실인 병원에서는 창들이 닫혀있고 눈 오는 모습을 볼 수 없으실 것 같았다. 살면서 어떤 풍경은 꼭 담고 싶은 순간이 있다. 늘 보시던 첫눈이었지만 올해 엄마는 보실 수 없는 풍경이 되었다.
엄마께 동영상을 전송해드리고 하늘을 보는데 눈 내리는 하늘이 참 높았다. 좋은 풍경과 즐거웠던 기억은 세월이 지나도 어느 날 툭하고 튀어나와 미소 짓게 한다.
가족들에게도 첫눈이 온다고 깨웠다. 눈이 내리는 그 순간을 함께하고 싶었다. 아들들이 베란다로 뛰어나와 펑펑 내리는 첫눈을 본다. 남편에게 가서도 첫눈이 온다고 깨웠다. 남편이 눈이 오냐며 벌떡 일어난다. 창을 열어 눈 내리는 것을 보여주었다. 첫눈은 자다가도 공부하다가도 일어나게 하는 힘이 있다. 지인들의 단톡에도 첫눈의 즐거운 인사들이 가득하다. 첫눈은 첫눈이니깐.
첫눈을 보면 나는 중학교 3학년 때가 떠오른다. 중3 겨울, 4교시 영어시간이었다. "선생님 첫눈 내려요." 누군가 눈이 내린다고 말했고 아이들은 모두 창밖을 바라보았었다. 종이 치기 몇 분 남아 있었지만 영어 선생님께서는 수업을 마무리하시고 우리에게 첫눈을 감상할 수 있도록 해주셨다. 잠시 후 점심시간 종이 울리고 아이들은 우르르 창가로 모여들었었다. 그때 방송으로 비틀즈의 ' yesterday'가 나왔다. 첫눈이 펄펄 내리는 운동장에도 'yesterday'가 울려 퍼졌다. 해마나 첫눈이 올 때 그날의 운동장과 'yesterday'가 떠오르는 것을 보면 열여섯 살의 나는 그날이 참 좋았던 것 같다.
우리 둘째 나이 때의 한 장면이 이렇게 수십 년을 가지고 가는 것을 보면 기억의 힘을 실감한다. 둘째 아이는 수십 년 후에 첫눈을 보면서 무슨 생각을 떠올릴까. 첫눈 왔다고 이방 저 방을 찾아다니며 즐거워하던 엄마를 떠올릴까. 베란다에서 형과 함께 바라보던 눈 내리는 하늘을 기억할까.
눈사람을 보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그때는 진심이었던 시절.
남편은 스무 살 전까지 아주 따뜻한 어느 지방 도시에서 자랐다. 그곳에서는 겨울이 되어도 눈을 볼 수가 없었다고 한다. 몇 년에 한 번 와도 금세 녹아버리는 날씨였기에 당연히 눈사람을 한 번도 못 봤다고 했다. 남편은 방학이면 본가로 내려가야 했기 때문에 여전히 눈을 보기가 힘들었었다. 살면서 한 번도 눈사람을 못 봤다는 말에 눈사람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다.
그해도 첫눈이 많이 내린 날이었다. 남자 친구였던 남편을 위해 만든 것이 20센티 눈사람이었다. 차위에 하얗게 쌓인 눈으로 미니미 눈사람을 만들었다. 몸통과 머리를 합쳐도 키가 두 뼘 안 되는 눈사람을 냉동실에 보관을 했었다.
개강을 하기 위해 서울에 올라왔을 때 선물이라며 건네주었다. 눈사람을 못 본 남자 친구에 대한 짠한 마음과 나름 재미도 있어서 만들었던 눈사람이었지만, 생각해보니 스물두 살, 그때라서 생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좀 엉뚱했던 것 같기도 했지만 청춘이었으니 가능했을 것이다.
남편에게 그때의 눈사람을 기억하냐고 물었다. 고개를 끄덕인다. 기억하고 있구나. 정성이 넘쳤던 스물두 살의 나, 우리 첫째 아이의 나이였다. 그때 나는 참 열정이 많았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