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가장 나답게 해 주는 것

현타에 마주하기

by 리시안


코로나를 뚫고 우리는 3월에 이곳으로 이사를 했다. 1층이라 누릴 수 있는 자유로움이 아이들에겐 더없이 편안함을 주었고 저층을 선호하는 우리 부부의 기호에도 적당한 집이었다. 주방엔 신데렐라 엔틱등을 달고 아이보리 원목 식탁에 앉아 갓 내린 원두커피를 마시면서 이제는 조금은 자유롭게 많은 것을 할 수 있겠다는 기대감에 부풀었다. 1층이라서 층간소음에서 자유로울 수 있겠다 생각했다. 1층인 이곳에서는 퀼트 미싱도 맘껏 할 수 있고 베이킹도 자유롭게 할 수 있다는 기대가 가득했다. 게다가 윗집의 소음이 엄청난 걸 보면서 오히려 다행스럽다 여겼지만 여전히 나는 미싱을 돌릴 수 없었다. 미싱은 베란다에 내다 놓았고 베이킹은 하루에 식사시간에 맞춰 두 번만 한다. 거품기 소리가 윗집에 올라가는 건 아닐까 노심초사에 거품기를 사용할 때마다 등에 진땀이 났다. 그럴 때마다 나 스스로가 바보처럼 느껴졌다.


마카롱 만들기에 한참 빠졌을 때 이렇게 혼자 걱정하느니 2층에 올라가서 소리가 안 나는지 물어볼까도 했지만 중학생 아들이 말렸다. 굳이 뭐라고 안 했는데 왜 그러냐고 시끄럽다고 내려오면 그때 안 하면 되지 않냐고 답답해했다.민반응과 지나친 남에 대한 신경이 아이들을 답답하게 하고 누구보다 나를 불편하게 만든다. 나는 왜 이렇게 남신경을 쓰게 됐을까. 다른 사람의 말에 나는 왜 그토록 좌지우지될까? 나를 평가하는 말들에 나는 왜 내 안에서 이토록 감정들을 폭발시킬까. 나는 특히나 나를 규정짓는 말에 감정이 꽂힌다. 내가 어떠어떠한 사람이다라고 내가 아닌 사람들이 표현할 때 부정할 수 없는 나의 약점들이 나를 주눅들게 한다.


얼마 전 친정식구 모임에서 요즘 많이 하는 mbti라는 성격심리검사를 했었다. 나는 ISFP '성인군자형'이다. 가족들은 서로의 성향이 딱 맞다며 각자의 특징들에 공감하면서 즐거워했다. 나는 자라면서 한 번도 부모님에게 혼난 기억이 없다. 그냥 말 잘 듣는 착한 딸이었다.엄마에겐 한 번도 무슨 일로든 졸라본 기억이 없다. 포기가 빨랐는지 기대를 안 했는지는 모르겠다. 그래서 남편에게도 누구에게도 한번 이상은 말하지 않았다. 나는 부탁하는 것에 익숙하지 않고 나로 인한 민폐를 극도로 싫어했었다. 하지만 살다 보니 어느 날 누군가에게 부탁하는 일이 생기고 민폐도 끼치는 일이 생겼다. 그때 내 자존심은 무너졌다.


'성인군자형'. 이 이름이 나는 맘에 들지 않는다. 말은 나를 잡아 놓으니깐. 반드시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게 하니깐. 성격유형에서 보통은 단점을 들으면 거부한다지만 난 단점들도 모두 나의 성격이라고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의 신경을 지나치게 쓰며 살았고 게다가 결정도 잘 못하고 추진력 없다는 설명이 그냥 요즘의 딱 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런 말들이 좋지만은 않다는 거였다. 미묘하게 언짢아지는, 나를 단정 짓는 말에 내색은 못하지만 마음이 상해진다. 몇 해 전부터 무언가를 한다만다 하다가 결국은 용기를 못 내던 내 모습에 가까운 사람들이 답답함을 느꼈다는 것도 안다. 그래도 우유부단 같은 표현들은 싫다. 난 나름 최선을 다해 고민해서 결정하는 거였고 결혼 후 네 시간 이상을 자본적도 없을만치 게으르지 않았다. 사람들이 나를 잘 모르니깐 그렇다 싶다가도 나는 이상한 감정들로 툭하면 말들에 꽂혀서 씩씩거린다. 그러고 보면 자존심은 강하지만 자존감이 낮다는 mbti의 설명이 틀리진 않은 것 같다. 그런데 앞으로도 이렇게 살아야 하는 걸까 현타가 온다.


힘들다 소리를 안 하면 사람들은 모른다는 걸 알았다. 물론 돌아보면 본의 아니게 오해로 어긋난 인연도 있었겠지만 하고 싶은 말들은 입 밖으로 나오지 못하게 꽁꽁 싸매고 살았다. 참으면 참을수록 사람들에게 난 착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그래서 잘 싸울 줄도 모른다. 잘 싸우는 사람이 똑똑한 거란 걸 몰랐다. 나에겐 늘 나만 참으면 됐으니깐 싸움이 날 수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안 하고 싶다. 그저 참는 거. 내가 지켜내고 살아온 삶을 단순 간에 묵살해 버리는 사람들을 위해 더 이상은 애쓰고 싶지 않아 졌다. 가족들이 원하는 대로 해주는 것이 맞다고 살아왔는 데. no를 못하는 사람.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아닌 것에 아니라고 할 수 있어야 했다. 싫으면 싫은 내색도 하고 화도 내면서 살아야 했다. 아니면 싸워서라도 변화될 수 있게 했어야 했다. 착한 사람이란 말이 나답다고 여기며 살아온 것이 어리석었다. 그러면서도 지금도 난 누군가를 용서해야 하는가에 딜레마에 빠져 있다. 또 꿀꺽하고 참아버리면 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나를 괴롭힌다. 나답게 해 주는 것에 대한 질문에도 나는 착하게 사는 것이라는 말이 떠 올랐고 어느새 난 또 그 말에 나를 갇아버리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다른 생각이 나질 않았다.


어릴 적 나는 애어른 같다는 소리를 많이 들었었다. 혼자 결정하고 해결하는 일들도 많았다. 그래서 걱정이나 고민은 어려운 문제가 아니었다. 문득 나의 30년 지기 친구가 했던 말이 떠올랐다. 뱀이 껍질을 벗고 나오는 모습이 꼭 나와 같다고 했었다. 징그러운 표현이긴 했지만 그때의 내 모습은 실패나 새로운 시작에 두려움이 없었나 보다. 하고 싶은 것에 겁도 없이 도전했던 디자이너라는 이름으로 반짝였던 시절의 나였으니깐. 그런데 지금은 왜 이렇게 웅크리며 살고 있을까.나도 날 때부터 우유부단하고 비논리적이고 유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내가 지켜 내야하는 것들이 많아지면서 걱정이 많아지고 의기소침해졌을 뿐이다.


이렇게라도 나를 마주하다 보니 장맛비 같은 이 꿀꿀함이 조금은 털어내 지는 것 같다. 피라미드를 한번 그려야겠다. 어릴 적 피라미드를 그리고 우선순위를 나열하다 보면 복잡한 마음이 정리가 됐었다. 놓친 것이 아니라 가진 것에 집중이 되고 선택이 쉬어진다. 내가 장 나답게 살아가던 때는 내가 나를 믿어주던 때였다. 지금은 두려움과 맞설 수 있던 시절의 나는 아니지만 나를 나답게 해 주던 나를 믿어주고 싶다. 그래서 하고 싶은 것들을 하기로 했다. 난 최상의 결과는 아니었더라고 언제나 최선을 다했으니깐.

그 걸로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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