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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기를 느낄 때

by 리시안


엄마가 과자 사다 줄까? 밤 열 시가 넘었건만 기어이 편의점을 가겠다고 나서며 물었다. 특별히 아이들이 먹고 싶어 하는 것이 편의점에 있는 것도 아니다. 온전히 내가 무언가를 먹고 싶다는 마음이 들어서였다. 모니터 앞에 앉았는 데 써야 할 글이 잘 써지지 않았다. 오후 늦게 아이들에게 시켜준 치킨을 어쩜 이렇게 바삭하게 맛있느냐며 함께 먹었고, 퇴근한 남편이 심심할까 봐 어제 남긴 백숙 국물로 끓인 닭곰탕에 밥 한 그릇을 말아먹었다.


그리고 열한 시가 다된 시간에 굳이 편의점에 다녀왔다. 달빛에 아파트 옆 미장원의 창에 비친 나의 실루엣을 슬쩍 보다가 이제는 놀라지도 않고 편의점 쪽으로 홀린 듯 갔다. 편의점에서는 아이들의 달달한 과자 몇 개와 우유를 담고 내가 먹을 반숙란을 두 개 샀다. 분명 배가 고픈 것은 아니었는 데 어느새 바구니에 담고 있었다. 방금 사온 반숙란을 하나 먹었다. 오늘따라 짜게 느껴졌다. 문득, 왜 이 시간에 나는 먹고 있는 걸까 생각이 들었지만 그 마음도 잠시, 아무 일 없는 듯 먹고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배고프지도 않았는데 왜 뭔가를 먹으려고 하는 건지 모르겠다. 많이 먹을 때도 있지만 항상 그렇지는 않다. 그냥 한입이 필요해지는 때이다. 이럴 때면 진짜 허기일까 궁금해진다. 어떤 날은 배가 부른지도 모르게 다 먹고 또 먹다 뭐 하는 거지 하며 나에게 놀라기도 한다. 도대체 배고프지 않으면서 왜 군것질을 자꾸만 하는 것일까. 잠시 생각을 해본다.


왤까, 내가 많이 먹을 때, 내가 과자에 손이 자주 갈 때의 공통점을 찾았다. 먹는 것에 집중을 하지 않을 때였다. 아이들 남은 것도 먹고, 버리느니 먹었다. 그냥 '남았네' 하면서 먹었다. 그 순간도 먹는 것에 집중을 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냥 남은 것이 보여서였다. 허기가 아니었다. 습관이었다. 나에겐 너무 못된 습관이었다. 먹는 것에 집중을 하면 더 먹으면 안 된다고 그만 먹으라고 나에게 말했을 텐데 생각이 딴 곳에 가 있으니 뇌에서도 놓쳐버리는 것 같다. 뭔가를 생각할 때, 나의 뇌는 그 생각만 하기에도 버거운지 나의 이 가짜 허기를 모른척한다. 그런데 다 먹고 나면 그제야 잠깐, 너 또 먹었다 하며 알려준다.




배고프지 않을 때 먹는 것의 대부분이 가짜 허기라면 먹고도 느껴지는 허기는 무엇일까. 아마도 감정에서 오는 허기일 것이다. 해야 할 일들이 남아있을 때, 그 생각에 빠지면 나에게 먹는 음식은 그냥 먹는 행위일 때가 많다. 그러니 배가 불러도 먹는 것 같다. 가족과의 소통에 부딪혔을 때 헛헛해진 마음도 감정의 허기일 텐데 나는 배가 고픈 줄 알고 초콜릿이며 단 음식을 찾는다. 어쩔 때는 피곤해서 그럴 거라며 내 마음을 잘 아는 듯 달콤한 음식들을 먹는다. 감정의 허기는 먹는 것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렇다고 감정의 허기가 음식으로만 오는 것은 아닌 것 같다. 나의 경우는 노래라는 것인데 이것이 참 우스운 것이 크게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웅얼웅얼 읊조리는 듯한 노래이다. 뜬금없지만 그렇다고 한다. 자주 보는 지인의 말이 뭔가 고민이 있을 때 내가 노래를 한다는 것이다. 모임에 있을 때나 둘이 만날 때도 그런 말을 가끔 듣는다.

그러고보면 내가 나도 모르게 한 가지 노래를 웅얼거리고 있었다. 이 시점에서 뭐지 싶어 등줄기가 오싹해지려다 말았다. 속상한 일이 있거나 해결할 일들이나 걱정이 있을 때 나도 모르게 노래가 나온다는 것을 알았다.


어제 둘째 아들과 서로에게 서운한 말이 오고 갔다. 잘 걷고 있는 아이에게 뛰지 않냐고 말한 결과가 되어 마음만 상했다. 아들과의 대화에 나는 답답한 마음에 감정이 앞서서 하지 말아야 하는 말이 나왔고 아이의 반박이 맞는 말이라서 나의 감정만 상하게 됐었다. 하고 싶은 말은 많지만 더 이상 말을 잇지 말아야겠다는 순간 나도 모르게 노래가 나왔다. 그런데 그때 둘째 아들이 엄마 또 노래한다는 것이다. 지인에게 들었던 이야기가 있어 흠찟 놀랐지만 아들에게 엄마는 그냥 노래를 하는 거라고 했다. 아들 말이 엄마가 속상할 때 마음 달래려고 부르는거잖냐고 했다. 그때야 생각이 났다. 부엌에서 노래를 부르며 밥을 준비할 때 첫째 아들도 엄마 괜찮냐고 묻곤 했다.


이런, 내가 노래를 부르는 것이 어느 순간 가까운 사람들에게 걱정을 만드는 일이었다는 생각에 웃기면서도 슬픈 느낌이 들었다. 한편으로 감정의 허기를 느낄 때 시그널을 보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어 혼자 피식 웃음이 났다. 먹는 것은 방치하던 나의 뇌가 노래로는 가까운 이들에게 알려주고 있었구나.

그런데 생각해보면 고마운 일이다. 때로는 내가 말하지 않아도 누군가 나의 마음 상태를 안다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차오를 때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감정 표현을 못하는 내가 먹는 것으로 내 몸을 괴롭히는 것보다는 노래를 웅얼거리는 것이 훨씬 낫다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제는 노래가 나오다 쏙 들어갈지도 모르겠다. 뇌의 영역이라 알 수가 없다. 무언가 생각에 빠지면 먹거나 노래하는 내가 이상한 것은 아닐까도 생각이 들지만 인지하고 있으니 다행스러운 일이다. 뭐, 폭식증도 아니고 고성방가도 아니니 나의 소심한 표현 정도라고 여기면 어떠랴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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