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벌써, 일 년

by 리시안


서울의 낮 최고 온도가 39도였고 전국 대부분 지역에 폭염특보가 발효되었다. 팔뚝으로 느껴지는 열기가 이렇게 뜨거울 수 있을까 최근 몇 년 동안 느꼈던 열감 중 최고였다. 이런 날씨에는 쓰러질 수도 있을 것 같았다. 문득 바깥에서 일하시는 분들이 얼마나 고생스러울지 생각이 드니 덥다고 타박할 일이 아니었다. 작년에도 더웠지만 올해가 제일 덥다고 느껴지는 것은 고통도 그 순간이 가장 크게 느껴지는 까닭이 아닐까 생각이 든다. 겪었기에 익숙해져서 체감하는 고통이 줄어드는 것이 아니라 알기 때문에 두려움이 더 크게 느껴지는 것일지 모른다.


십여 년 전쯤 친정엄마가 백내장 수술을 하셨었다. 우선 한쪽을 먼저 하시고 다른 한쪽을 하셨는데 처음 한쪽을 수술하실 때는 웃으면서 나오셨지만 다른 한쪽 수술을 하실 때는 혈압이 200까지 올라 갔었다. 결국 응급실로 가셔서야 혈압이 떨어졌다. 처음 하실 때의 기억이 두 번째의 두려움을 만든 것 같았다. 그때는 어떻게 혈압이 200까지 올라가나 싶었지만 나를 낳으실 때도 혈압이 200까지 올라가서 힘드셨다고 했다. 그렇게 백내장 수술은 두려움으로 하셨지만 하시고 나서는 세상이 다르게 보이신다며 십년이 넘은 지금도 내 옷에 붙은 먼지도 떼어 주실 정도로 시력이 좋으시다. 두려움도 좋은 기억으로 덮이면 다시 마주 한다해도 그 불안함이 덜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고 보면 나도 20대에 수면이 아닌 위내시경을 처음 했을 때보다 최근이 어렵게 느껴진다. 몇번 하다보면 불편힌 기억이 있어 위 내시경이 어느쯤 내려갔을 땐 긴장을 하게 된다. 점점 잘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저런 이유로 점점 못하는 나를 보게 된다. 때로는 모르는 것이 약이라는 말이 참 맞다는 생각이다. 그러다가도 괜찮다는 소견을 듣고 나면 두려움의 기억은 작아진다.


작년 이맘때 아들 방에 이동형 에어컨이 들어왔고 전기료 폭탄을 받았었다. 작년에도 많이 더웠다는 것을 잊었다. 작년에 더웠나를 잠시라도 잊을 수 있었던 것은 더위나 힘듦에 멈춰있던 것이 아니라 계절마다 글을 썼기 때문인 것 같다. 여름을 보내고 가을과 겨울의 하루하루에 집중하고 기록하면서 기억은 그저 여름의 뜨거운 날들로 남게 된 것 같다. 며칠 후면 글을 쓰게 된 지 일 년이 된다. 작년 여름 유독 힘들었던 날에 써서 보낸 글이 이렇게 글을 쓰게 되었다. 일 년 전 글을 쓰기 시작했을 때는 설렘이 가득했었다. 비록 일상을 적는 글이었지만 글을 쓰는 시간은 친정엄마일로 오고 가는 지하철 안에서의 시간을 소중하게 해 주었다. 집 앞 베란다 앞 나무의 푸릇푸릇한 잎들이 노랗게 물들고 떨어지고 하얗게 눈이 쌓이고 녹는 시간 안에서 사진으로 남기고 글로 적었다. 어느날 부터 무심코 지나치던 거리의 나무가 보이고 꽃이 보이기 시작했다.




글을 쓰면서 일상의 많은 것들을 글 안으로 가져오려고 했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가져와진 일상을 다듬는 재미가 있었다. 때로는 에세이로, 때로는 시로 어설펐던 하루하루가 조금씩 모양을 만들어 가는 느낌이 들었다.

흐트러졌던 생각들이 정리가 되고 모아지는 것 같았다. 그렇게 계속 쓰다 보니 연재를 하고, 어쩌다 시인도 되었다. 늘 이름 뒤에 숨어 있던 내가 용기라는 것을 내보기도 했다. 지금도 8할이 주부이지만 더불어 작가라 불리는 것이 새롭다. 십년정도 후에 쓸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했었다. 그런데 어느 날 느닷없이 글이 내게로 왔다. 그리고 이제는 내 일상의 한 부분으로 들어왔다. 안써지는 날에는 행복회로를 돌려 십년을 번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한다.


앞으로 얼마나 잘할지 못할지는 모르지만 벌써, 일 년이 지났고 나는 조금씩 변화되어가고 있다. 댓글 소통하는 법도 모르고 감정도 표현을 못하고 쩔쩔매던 일 년 전보다는 훨씬 나아졌다. 내게는 무에서 유라고도 할 수 있을 만큼의 변화다. 행간으로도 감정을 읽던 것이 결코 좋은 것이 아니라는 것도 알았고, 때로는 느껴지는 그대로, 보이는 그대로 마음을 나누는 것도 용기라는 것도 알았다. 글로 마음을 나누는 인연이 소중하게 느껴진다. 더 잘쓰고 싶어진다. 그러다 아직 갈길이 멀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헛헛해질 때도 있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고 있던 일년 전을 떠올리면서 마음을 다독인다. 부족한 무엇을 하더라고 하고 있다는 것은 나이가고 있다는 것일테니깐.


일 년이 되는 지금 아이들은 여전히 공부와 싸우고 있고 남편은 매일 야근이다. 그사이 나는 틈틈이 글을 쓰는 시간을 갖고 있다.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때 외출했던 가족들의 신발들이 보일 때면 왠지 마음이 놓인다. 누구 왔구나 하면서 가족들 신발 옆에 내 신발을 벗고 들어가는 그런저런 일상이 감사하다. 일 년 후에는 또 얼마나 나의 모습이 변해져 있을까. 해마다 조용히 돌고 있는 선풍기처럼 세월은 가다 서다 하더라도 흐르겠지.

가끔씩은 기분 좋은 일 하나쯤 날려주는 그런 날이 오기를, 또 여름이 오면 그렇게 선물 받는 하루들이 시원한 바람처럼 불어주기를 욕심 내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다시, 돌아간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