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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돌아간다면

by 리시안


비에는 막걸리라며 찾아온 친한 동생 A, B와 파전에 막걸리를 마셨다. 오랜만에 마시는 막걸리는 어찌나 달달하고 맛있던지 고소한 파전에 그야말로 술이 술술술 들어갔다. 물론 막걸리를 많이는 못 마시지만 마음은 결혼 전으로 넘어가 이야기에 취하고 있었다. A는 나보다 한 살 어린 동생이고 B는 네 살이 어린 동생이다. 평상시에 커피를 마실 때와는 조금은 다른 진지하면서도 알코올을 빌어 할 수 있는 속 이야기들이 오고 갔다. 아들만 있는 나와 B는 딸이 있는 A가 진심으로 부러웠다. 우리들이 딸이기에 엄마에게 딸이 어떠한지를 알수록 딸 가진 엄마는 아들만 있는 엄마들에게 그 자체로 부러운 일 인것이다.


동생들은 시댁 이야기와 아들의 엄마로서의 입장들을 이야기하며 만약 우리라면 어떨지 이야기했다. 정신적 힘듦과 물리적 힘듦에 대한 이야기 끝에 우리가 시어머니가 되었을 때는 그 누구도 장담할 일 없을지 모른다고 했다. 맞는 말 같다.

그러다 네 살 어린 B가 물었다.

"언니들은 다시 돌아간다면 언제로 돌아가고 싶어?"

"안 돌아가고 싶은데" 내가 주저 없이 대답했다.

B가 깜짝 놀란 듯 다시 물었다.

"어떻게 없지? 그럼 언니는?"

"나도 지금이 좋아. 그렇지만 이십대로 가보고 싶긴 해. 대신 기억을 갖고 가야 해."

B가 대답했다.

"아니, 그냥 돌아간다면, 제일 좋았던 시절이 없어? 그래도 만약 딱 한 시절만 돌아가게 해 주겠다고 하면?"

조용히 듣고 있던 나는

"돌아가고 싶은 시절은 없어. 가장 생각하면 웃음 나는 시절은 있지. 중3 때나 고1 "

나의 대답에 두 동생은 어떻게 그때이지 싶은 표정을 했다. 두 동생들은 다시 돌아간다면 스무 살이라고 했다. 둘의 공통점은 이십 대에 진짜 잘 놀았다는 것이다. 한 명은 너무 잘 놀아서 굳이 돌아가지 않아도 된다고 했고, 한 명은 잘 놀아서 좋았기에 돌아가서 더 잘 놀고 싶다고 했다. 재밌는 대답들이었다.

"언니는 그때가 젤 맘편했나보다."

"그런가? 어쩌면 잘 놀아 본 적이 없어서 그런가 봐. 늘 바빴거든. 틀에 못 벗어나기도 했고. 별로 돌아가고 싶진 않아."

"이런, 안습이야. 나는 얼마나 재밌게 놀았는 데."

언니 나 이 말 한 번만 할게

"언닌 형부가 첫사랑이잖아. 쯧쯧이야"

A와 B가 안됬다며 놀렸다.

뭐, 동생들이 못 놀았던 내가 안됐다 말해도 막걸리는 시원하고 달았다. 홀짝홀짝 잘 넘어갔다.


스무 살 이후 나는 모든 것을 나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며 살아왔던 것 같다. 남편과 연애를 하던 이십 대였지만 돌아보니 그때가 가장 편안한 시간은 아니었다는 것을 느꼈다. 오로지 연애만 할 수 있었다면 그때라고 했을까. 아마도 성격이 바뀌지 않는 이상, 돌아간들 바뀔까 싶다. B가 알아차린 듯 말했다

"언니, 이제라도 성격을 바꿔. 언니 중심으로 살아."


세상 걱정 없을 때는 중3 때와 고1이었다. 공부만 해도 되는 시기, 무언가를 할 수 없기 때문에 할 수 있는 것만 해도 되는 시절이었다. 그때 학교가 끝나면 교문 앞에 기다리던 독서실 봉고차가 독서실까지 데려다주곤 했었다. 우리 학교와 인근 남학교를 돌면서 아이들을 태워 삼청동 뒷길 꽃길을 지나 안암동까지 가던 길이 생각이 난다. 인근 남학생들이 타면 왠지 쑥스러움에 창밖만 바라 보았었다. 그당시 차안에는 이승환의 '기다린 날도 지워진 날도'가 자주 흘러나왔었다.


설레던 시절이었다. 10시가 되면 독서실 시청각실에서 교육방송 수업을 같이 들었는 데 사실 공부가 되었을까 싶다.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순정 만화책 속의 남녀공학이 전부였을 때였다. 독서실 좁은 계단에서 마주칠 때 온전히 설레기만 해도 되던 시절, 우리 둘째 아이의 나이였다. 대입이 끝나고 잡혔던 첫 미팅의 그 아이도 독서실에서 3년을 오고 가며 스쳤던 옆 학교 아이였다. 그런데 얼굴이 기억나질 않는다. 어떻게 첫 미팅이었는데 이렇게 생각이 나질 않을까. 잘 살고 있을까,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얼굴이 떠오르지 않으니 상상도 안된다. 그나마 나의 친구들이 그 아이가 누구와 누구를 닮았다고 했고 옷은 무슨 옷을 입고 있었다고 말해준다. 그렇게 머릿속에 만들어진 기억으로 남아 있는 것 같다. 만났던 카페와 내 모습을 그대로 기억하는 나의 친구들이 있어 추억이 소환된다. 내 어린 시절 친구들이 곁에 있다는 것이 더없이 다행스럽고 즐겁다.


"언니들, 나는 기억 없이 돌아가도 돼, 난 똑같이 다시 살고 싶어. 와, 나 엄청 행복했나 봐"

B가 말했다.

"그러네, 그러기 쉽지 않은데, 너 정말 행복하게 살았구나. 언니랑 난 지금이 젤 좋은 걸로"

A도 말했다.


이야기를 나누면서 생각하게 된 것은 어떤 상황을 받아들이는 방식과 정도가 각자가 다르다는 것이다. 그야말로 성격의 차이에서 문제를 맞닥뜨리는 모습이 참 다르다. 그러나 성격이란 것이 이 나이가 되어 쉽게 바뀔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모두 안다. 그저 성격대로 살아가게 된다. 행복했던 순간들은 많았지만 그렇다고 그 순간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진 않다. 살면서 느낀 것 중 하나는 행복한 일이 그냥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다. 힘든 시기가 지나고 고비를 넘겨야만 인생은 달콤한 기쁨을 보여줬다. 적어도 내겐 그랬다. 놓친 것을 위해 이룬 것을 다시 놓칠 상황을 만들 자신이 없다. 그냥 지금의 현실을 지켜내는 것이 바람이다. 즐거운 시절은 잘 기억해 두었다가 오랜 나의 벗들과 만났을 때 봉인된 것을 풀어놓으면 된다. 그때 잠시 열여섯 살 우리가 되었다가 열일곱 살 우리가 되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그래, 내게는 분명 즐거운 기억이 맞나 보다. 소녀였던 우리들의 모습이 하나씩 떠 오를 때마다 스르르 미소가 지어지는 걸 보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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