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입원하고 계신 병원에 반찬을 갖다 드리고 집으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엄마가 계신 병원과 우리 집은 지하철로 두시 간 남짓이다. 짧은 거리가 아니다. 극과 극이라고 보면 될까. 서울에서 400킬로 가까운 시댁을 갈 때도 ktx를 타면 두 시간 반이면 도착인데 같은 서울 안에서의 두 시간은 정말 먼 거리다.
이렇게 지하철에서 글을 종종 썼기에 지루하진 않지만 오고 가고 네 시간 가까운 이동은 쉽지 않다. 친정 일을 무어라 말한 적은 없지만 몇 년째 친정엄마를 쫓아다니는 내 모습이 남편에게 가끔은 보이기 불편하다. 엄마에게 다녀온 날은 집에 가자마자 잠깐이라도 쓰러지는데 오늘처럼 저녁때와 맞물리면 맘이 급해진다.
이제 환승을 하러 잠시 움직인다. 엄마에게 갈 때면 서울 지하철 9호선, 5호선, 6호선을 이용한다. 지금은 5호선 공덕역이다. 빠른 환승 6-1이다. 오랫동안 다니다 보면 검색이 알려준 최적의 거리에 맞춘 환승을 몸이 기억을 한다. 빠른 환승이라는 것은 지하철을 내려서 환승 통로 입구까지 가는 가장 가까운 출입문 위치를 말한다. 지하철 운행방향 기준으로 여섯째 칸 첫 번째 출입문이라는 것이다. 운동화를 신고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걸음이 빨라졌는데 가볍다. 갈아타는 이역은 결혼을 하고 첫 신혼집이 있던 곳이다. 우리 첫째 아이를 갖고 임신 8개월일 때 지금 사는 동네로 이사를 했었다.
사람들은 환승을 할 때 대부분 걸음이 빨라지는 것 같다. 나도 따라 걸음이 빨라진다. 그러다 시간대가 맞아서 빈자리에 앉는 날이면 그때부터는 내 시간이 되지만 출퇴근 시간에 겹쳐버리면 대략 난감이다. 핸드폰을 꺼낼 틈도 없다. 그저 앞사람의 등이나 머리를 보고 생각을 잠시 멈춰야 한다. 다행히 오늘은 자리가 여유가 있어서 편하게 글을 쓰고 있다. 이런 날은 두 시간여를 타더라도 시간이 빨리 가는 것 같다. 맞은편에 앉은 사람의 얼굴을 바로 본적이 거의 없다. 시선은 맞은편 사람의 신발 정도의 높이에서 멈춘다. 마스크를 통해 편해진 것도 있는 샘이다. 예외가 있다면 어린 아기가 앉았을 때다. 아기와 눈이라도 마주치면 나의 웃는 모습이 마스크로 보이지 않아서 안타깝다.
이제 9호선을 갈아타러 간다. 9호선의 급행을 타면 이동 거리 시간이 많이 단축이 된다. 역시나 퇴근시간에 가까워지니 사람들이 많아졌다. 남편회사도 걸어 다닐 만한 거리기도 하지만 큰아이의 아침시간을 줄여주고 싶어서 급행역 쪽으로 이사를 했었다.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못 탈 수 있는 경우도 종종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출퇴근 시간을 피하기만 하면 9호선은 원하는 곳으로 최단시간으로 데려가 주어 좋다.
출입문이 열리고 책을 들고 타시는 분이 계신다. 스마트폰이 아닌 책을 읽는 분을 보니 나도 모르게 책 제목에 눈이 갔다.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다. 다시 읽으시나 보다. 슬픈 사랑이야기, 성스러움과 사랑,, 이런,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나도 다시 읽어봐야지 싶다. 지금 읽으면 다르게 와 닿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 앞에 서 계시다 옆자리가 비자 바로 옆에 앉으셨다. 앉으실 때 보니 연세도 있으셨는 데 안경을 끼지 않으셨다. 나 같으면 안경을 끼지 않고는 코를 책에다 붙이고 읽었을 텐데. 무엇보다 시력이 좋으시구나 하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핸드폰을 많이 안 보셔서 그럴까. 문득 최근 들어 침침해진 것 같아 눈 영양제를 챙겨 먹는 나로서는 그렇게 책을 보실 수 있는 것이 마냥 좋아 보였다.
이제 다음 역에서 내린다. 출입문 앞에 섰다. 지하철 유리문에 내 모습이 보인다. 출입문 유리창 앞, 제일 편한 위치다. 다행히 저녁 시간 전이다. 그런데 어디선가 빵 굽는 냄새가 난다. 지하철 계단까지 온통 달콤한 빵 굽는 냄새가 가득하다. 내가 좋아하는 호두과자다. 사지 않을 수가 없다. 하얀 봉지에 담긴 호두과자를 받아 들고 간다. 아이도 아닌데 바로 나온 이 호두과자 하나 입에 넣었으면 좋겠다 싶었다. 얼른 하나 먹고 갈까, 마스크 안에서 오물오물해봐도 모를 텐데. 피곤해서 그런지 더 맛있어 보였다. 하지만 마스크를 내리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닌 요즘이라 어려운 유혹을 꾹 참으며 집으로 부지런히 걸었다. 고소하고 달콤한 빵 굽는 냄새가 집까지 따라오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