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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를 위하여

by 리시안



자기 방에서 잘 나오지 않는 둘째가 내 주변을 자꾸만 서성인다. 할 말이 있을 때의 모습이다. 역시나 은밀히 나에게 속삭인다. 속삭인다는 것은 부탁을 해야 하는 일이 있을 때거나, 아빠 모르게 엄마선에서 샀으며 하는 물건이 있을 때다.


"엄마, 할머니가 주신 용돈 있잖아, 거기서 나 무선 이어폰 사주면 안 돼?"


'뭐 이어폰 하나가 그렇게 비싸지? 귀에도 안 좋은걸 왜 또 사겠다는 거지?'

나는 눈만 깜박깜박거리며 쳐다보았다.


"왜 엄마 안돼? 엄마 화났어?"

아들이 눈치를 본다.


둘째와 이야기를 할 때면 결국은 내가 들어준다는 것을 알기에 차라리 말을 잠시 안 하고 생각을 한다. 게다가 선물로 받은 무선 이어폰이 남편한테 있는 상황에서 하나 더 구입을 한다? 이건 내선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유일하게 기계 구입은 남편을 거쳐야 한다. 물론 은밀히 내게 부탁하는 컴퓨터 부속품들, 예를 들어 게임 전용 마우스나 불빛이 번쩍번쩍 들어오는 키보드까지는 가능하다. 아는 사람이 무선 이어폰 하나가 마을버스 문에 끼어 출발하는 모습을 내내 바라봐야 했다고 말해줬다. 또 한쪽을 잃어버려 찾아보니 버스에 밟혀있는 이어폰 한쪽을 슬프게 바라봐야 했던 이야기를 해주었다. 하지만 자기는 이제 고등학생이라며 걱정을 말라고 했다.


"이건 아닌 것 같아. 선물로 받은 무선 이어폰을 아빠가 너 줄 거라고 했거든. 아빠하고 얘기해봐. 엄마가 말은 해놓을게."


"그건 기종이.. 알았어."

이번엔 둘째 아이도 사는 것이 과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눈치라 일단은 내손에서 떠난 일이 되었다.


둘째 또래의 친구들은 저마다 관심사가 다르다. 그것은 용돈을 받았을 때 무엇을 사는가에서 구별이 된다. 패션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은 입고 싶은 옷을 사는 데 즐거움이 있고, 누구는 프라모델 구입에 용돈을 쓰기도 한다. 시험이 끝나는 날 아이들이 어디를 향하는 지를 보아도 평소의 취미가 보인다. 둘째는 컴퓨터 기계에 용돈을 거의 다 써버린다. 그 대신 브랜드 옷도 모르고 매일이 운동복이다. 나에게 컴퓨터 관련된 것 말고는 사달라고 한 적이 거의 없다. 그래서 조금 관대한 편이지만 이어폰 이야기는 남편에게 넘겼다. 학원을 가느라 이제야 옷 신경을 조금 쓰는 것 같지만 자기 돈으로 사는 것은 기계들이다. 다양한 마이크와 마우스들 같은 것이다. 그나마 다른 것은 사달라고 안 하니 자기돈으로 사는 것은 뭐라고 하지 않는 정도다.




살면서 어떤 특정한 것에는 후한 지출을 하는 경우가 있다. 둘째 아이처럼 남편도 기계에 관심이 많다. 그런 면은 남편과 둘째가 통하는 면이 있는 것 같다. 그래서 남편이 둘째를 이해해주는 경우도 많은지 모른다. 다만 남편은 같은 사양의 제품을 가장 저렴하게 구입한다. 남편과 둘째의 차이는 남편은 기다릴 줄 아는 것이고 둘째는 기다림이 필요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둘을 바라보면 핸드폰 신제품을 얼마나 갖고 싶을까 생각이 든다. 둘째 핸드폰이 3년이 넘었으니 슬슬 바꾸고 싶은 것도 이해가 된다. 고등학교 입학도 하니 겸사겸사 바꿔 줄 생각은 하고 있었다. 둘째의 바람은 하나였다. 평범한 핸드폰이다. 처음 사줬던 핸드폰은 최신 사양의 중국 제품이었다. 남편은 실속을 먼저 생각하는 사람이라 사양만 높은 제품이면 된다고 생각한다. 두 번째도 저렴한 것으로 용산에 가서 사주었는데 기계를 잘 아는 둘째가 그나마 오래 잘 사용했다는 생각이다.


이번만큼은 친구들이 쓰는 핸드폰을 갖고 싶다고 한다. 남편이 어떤 게 갖고 싶냐고 물었다. 말을 못 하던 둘째가 조심스럽게 아빠에게 선을 말해달라고 한다. 둘째는 아는 것이다. 자기가 말해도 바로 안된다는 것을, 그래서 아빠가 사주려고 하는 가능선을 말해달라고 한다. 가운데서 둘의 모습을 보면 웃음이 난다. 비슷한 성격의 남편과 둘째, 둘은 가장 최선의 결과를 찾기 시작했다. 이젠 나의 일이 아니라 남편의 일이다.



우리 집 남자들은 주는 대로 입는 편이다. 아니 있는 대로 입는 편이다. 그러고 보니 남편과 내가 남편 옷을 같이 사본적이 없다. 당연히 남편이 사온적도 없다. 옷 입는 것에는 관심을 두지 않아 내가 편한 세월이었다. 그러나 요즘엔 그 오랜 세월 남편의 외모에 관심을 가져 주었다면 좋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첫째와 사이즈가 같은 남편은 아들 옷도 참 많이 입었다. 지금은 남자들 사이즈가 셋다 같다. 키가 제일 작은 둘째도 옷을 크게 입는 것을 좋아해서 입는 사이즈가 같아졌다. 첫째 옷 사는 곳에서 옷을 사 오면 아빠는 젊게 입어 좋고, 둘째는 편하게 입어 좋다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 내가 사다 주는 옷을 보면 첫째와 둘째가 머뭇거린다. 말로는 못하고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리는 것으로 보아 이젠 사 오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고 있었다. 내가 보기에는 이쁘기만 한데 아들들은 어느새 옷 입는 것에도 나름의 호불호가 생긴 것이다. 아니 주변 시선을 신경 쓰게 된 것이다. 첫째 아이에게 체크남방과 후드티를 자주 사줬었다. 대학교 1학년 때였을까 첫째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와 말했다. 친한 같은 과 친구가 "엄마가 옷 사다주시지?"라고 물었다고 했다. 딱 봐도 엄마가 사준 옷이라는 말이었다. 그동안 사 오는 대로 입었던 아들이었지만 아들도 보는 눈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런데도 아이들 걸 사다 주려고 해서 문제다. 그 대신 물어본다.

"이거 어때?"

아직 둘 다 옷을 사 입는 걸 잘 못해서 안 사줄 수도 없고, 사입을 생각도 안 하니 답답한 내가 사이트를 이용한다.


남편이 벽돌색 티셔츠를 입고 회사에 간 적이 있었는데 회사 직원들이 남편의 옷 색깔에 대해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아마도 나이가 좀 들어 보인다고 했었던 것 같다. 이쁜 벽돌색이었기에 이해가 안 됐다. 그래서인지 남편이 그 옷을 입지 않으려고 했다. 돌이켜보니 나는 어울릴까 생각보다는 디자인과 색과 소재를 먼저 보기는 하는 것 같다. 사실 소재가 좋아서 다른 색깔로 하나 더 샀었는데 꺼내지 않았다.


컴퓨터 관련된 것에 지출을 하는 남편과 둘째 아이와 다르게 첫째는 기계에는 관심이 없고 잘 모른다. 첫째의 지출은 먹는 것이다.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 첫째는 행복해한다. 공부가 안되거나 기분이 안 좋을 때 좋아하는 음식을 먹으면 금세 기분이 좋아지는 단순한 성격이다. 지하철역에서 사 먹은 천 원짜리 고로께를 먹으면서 행복해하고 조금 비싸더라도 맛집을 찾아 사먹는 즐거움을 즐긴다. 남편과 작은 아이는 먹는 것에 그다지 관심이 없다. 밥은 세끼만 먹으면 되고 맛있는 곳을 찾아가는 것을 귀찮아한다. 남편과 둘째는 먹는 것에 아낌없는 첫째가 잘 이해가 안 되겠지만 이 또한 다름을 안다.


살면서 하나쯤은 아깝지 않게 여길 즐거움은 괜찮다고 생각이 든다. 과하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이런 생각을 해보니 가족 중에 내가 제일 많은 것 같다. 어찌 댔건 나는 좋아하는 것을 하면서 살고 있었구나 생각이 든다. 우선 커피값이다. 늘 저렴한 커피도 맛있게 먹고는 있지만 고소한 맛이 가득한 정말 맛있는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때가 있다. 차라리 커피 공부를 할까도 생각해보았지만 바리스타가 맛있게 내려주는 커피를 가끔 사 먹기로 했다. 요즘은 거의 집에서 내려 먹지만 커피값에는 후했던 것 같다. 향이 좋은 구수한 커피는 기운을 나게 한다.


그리고 뜬금없지만 달걀 살 때이다. 마카롱을 만들기 시작했을 때부터 달걀의 신선도가 얼마나 중요한지 느꼈다. 그래서 처음 만들 때부터 달걀만큼은 깐깐하게 구입하고 조금 비싸도 괜찮다 여겼다. 마카롱은 달걀과 아몬드가루가 주된 재료라서 더불어 아몬드 가루도 제일 좋은 재료를 사서 만든다. 지인들은 내가 재료들을 비싼 것을 써서 만약에 팔아도 남지 않을 거라고 한다. 나는 마카롱 한 개 가격이 왜 비싼지 만들어 보니 알 것 같다. 비싸서 만들어 먹기도 하지만 다른 사람이 만든 마카롱이 먹고 싶을 때는 아깝다 생각이 덜 든다. 어쩌다 맛있는 커피와 마카롱 한두 개는 내가 나를 위해 지출해도 좀 괜찮지 싶다.

그리고 퀼트 천을 살 때다. 이것이 이상하게도 좀 이쁘다 하면 가격이 좀 비싼 게 흠이다. 그런데도 이쁜 그림들이 그려져 있는 천을 보면 사고 싶어 진다. 그러고 보면 우리 둘째나 어른인 내가 사고 싶어 하는 마음이 뭐가 다를까.


내 마음이 이러하니 가족들이 각자에게 하나쯤은 후해도 이해가 된다. 지나치지만 않는다면 그것은 답답한 숨을 쉴 수 있는 숨구멍이 된다. 그리고 앞만 보고 걷다가 다리가 아플 때쯤 마주하는 정류장의 벤치가 된다. 그렇게 숨을 쉬고 잠시 쉬었다가 다시 앞으로 간다. 나의 지인들은 자신에게 어떤 후함이 있을까. 워커홀릭 언니는 일주일에 한 번은 집 앞 사우나에 가는 것이 낙이고, 그릇을 모으는 것이 즐거운 친구는 그 안에서 행복해 보인다. 멀리 사는 내 친구들은 오늘은 어떻게 숨 쉬는 하루였을까. 생각해보면 자신을 위해 넉넉해지는 순간이 분명 있을 것이다. 알게 모르게 자신을 바라봐주는 시간이 무엇일까 문득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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