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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에 꽂힌다는 것

by 리시안


이른 새벽, 어둑한 어둠이 내려앉아 공기마저 무겁다. 푸르스름한 새벽하늘은 오늘따라 천천히 다가온다. 새벽이 한밤중처럼 고요하다. 며칠 밤낮이 바뀌면서 몸의 기운이 떨어졌다. 모두가 잠든 시간 발밑으로 일정한 진동이 느껴진다. 아파트 옆으로 대략 2분마다 한 번씩 지하철이 지나간다. 집 앞 지하철역에서 보내는 진동이다. 처음에는 느끼지 못했다. 모두가 잠들었을 때쯤 땅의 진동이 느껴진다. 보통은 잘 모른다는 것이 그나마 다행스럽다. 진동이 느껴진다는 것은 나의 감각들이 민감해졌다는 것이다. 귀와 몸이 미세한 진동을 알아차린다. 마음이 발밑 지하철과 가까이 맞닿아 있다. 마치 달리의 그림처럼. 축축 늘어져서 바닥에 귀를 대고 있는 것 같다.


지하철과 나만이 소리를 내는 지금, 온전히 나를 바라볼 수 있는 시간이 된다. 무언가에 몰두하면 하나만 보이고 몸이든 정신이든 지칠 때까지 몰입하는 나다. 좋아하는 노래는 그 곡만 반복해서 종일 듣는다. 아이 때문에 힘들었을 때 무작정 걸으며 들었던 소향의 '바람의 노래'는 눈물 났던 그 순간을 고스란히 느끼게 한다. 작은 지혜로는 알 수가 없고 아는 건 살아가는 방법뿐이라는 가사가 나온다. 이 구절을 듣고 있으면 눈물이 쏟아졌다. 아무래도 나는 자책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아이가 힘든 것도 내 탓이고 모든 상황에 내 잘못이라는 생각에 빠져있었다. 그럴 때 노래가 툭하고 건드리면 참고 있던 눈물이 쏟아진다.


프랑스 작가 귀욤 뮈소의 소설을 읽은 후 한동안 그 작가의 책만 찾아 읽은 때가 있었다. 과거와 현재를 오고 가는 영화 같은 장면들과 무엇보다 빨리 읽히는 속도감이 좋았다. 작가는 사랑하기 때문에 갖게 되는 죄책감과 자괴감에서 용서와 화해를 끌어낸다. 어느 날 '당신, 거기 있어줄래요?'가 영화로 나온다 했을 때도 왠지 반가웠다. 책으로 읽은 이야기가 영화로 만들어지는 것은 매력적인 일이다. 영화도 재미있게 봤지만 사실 귀욤 뮈소의 소설은 소설 자체로도 영화를 본 느낌을 받는다. 소설만으로도 충분히 좋다.


약해진 마음의 어느 부분이 어루만져졌을 때 그 순간 작가와 독자는 만나게 되나 보다. 만나지는 시점은 사람마다 다를 것이다. 성격이 달라서 감동의 순간도 다르다. 그러고 보면 같은 장면을 보고 같은 마음을 느낀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그 순간이야 말로 비슷한 성향이라는 말이 나오는 것 같다.

사람들이 슬플 때 함께 슬픈 마음이 들고 웃을 때 함께 웃음이 나오는 이 솔직한 감정의 표현이 얼마나 귀한 일인지 점점 더 느끼고 있다.




몇 년 전 친정엄마가 수술을 하셨을 때 두 달 동안 매일 병원과 친정을 오간 적이 있었다. 그때 반복해서 들었던 애드 시런의 '포토그래프' 역시 그때의 기억을 떠올리게 한다. 이틀에 한 번씩 엄마네 강아지들 목욕을 시키고 강아지 밥을 챙기고 청소해야 했던 여름이었다. 다시 병원에 갔다가 집에 오면 저녁 할 시간이 훌쩍 넘었던 시기였다. 선택의 여지가 없었던 시간, 두 달 만에 6킬로가 빠졌었다. 집에 오는 차창밖으로 보였던 똑같은 풍경과 반복된 하루에 지쳐있을 때 위안이 되었던 곡이 애드 시런의 '포토그래프'였다. 아기 때부터의 커가는 모습을 담은 뮤직비디오를 보고 있으면 그래그래 시간은 지나간다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러니 기운 내라고.


사람 관계에 꽂혀 있을 때 강약 조절이 필요할 때가 있다. 물론 우리는 좋으니 더 마음이 가고 마음은 저절로 열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너무 잘하려고 하는 마음이 저만치 앞서 가거나 맞지 않는 사람과 맞추려 하다 보면 진이 빠진다. 어렸을 때는 누구와도 잘 맞아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다. 관계에서도 나만 참아내면 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분명 맞지 않는 성향의 사람들이 있다는 걸 알았다. 맞지 않는 성향은 착하지 않은 사람이 아니다. 나에게 맞지 않은 사람은 불편한 사람이다. 그런 불편함은 긴장을 하게 하고 이내 몸이 지쳐온다. 가감 없이 편안한 마음이 드는 관계가 좋다. 나도 모르게 마음이 열리는, 행간이 읽히는 관계가 점점 고마워진다.


걱정에 꽂혔을 때는 최소한의 의지가 있는 것이다.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 할 수 없을 때는 꽂히는 일도 없다. 미리 한 발치 앞서 하지 않아도 되는 걱정을 하는 경우도 기력이 있어야 한다. 걱정에 꽂혀 하루 종일 걱정거리와 싸우다 보면 몸은 천근만근 까브라진다. 어쩔 수 없이 걱정을 하는 마음은 밥을 먹고 물을 마시는 것처럼 습관이 되었다. 그래서 특별할 것도 없고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남보다 밥을 자주 먹고 자주 물을 마시는 것뿐이다. 그러니 마주할 걱정들 때문에 미리 주눅 들지 말았으면 좋겠다. 때론 편향적일 때도 있지만 무언가에 꽂힌다는 것은 무엇보다 살아내고 있다는 것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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