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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의 마음

by 리시안


내일이 크리스마스이브네요. 예전 같으면 오늘부터 서울 종로에는 사람들로 북적였습니다. 종로 2가가 가장 핫한 거리였던 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다니던 중, 고등학교가 있었고, 회사도 있었던 제게는 추억이 많은 곳이네요. 종로 2가 길에는 아주 오래된 패스트푸드 집이 있었습니다. 친구와 창가에서 바라보던 크리스마스 거리는 참 좋았습니다. 건너편은 인사동길이었지요.


이맘때쯤 되면 극장들이 모여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항상 많았어요. 지금은 사라졌지만 길거리 테이프 노점상에선 항상 최신곡의 가요들이 틀어져 있었지요. 길보드라는 말이 있을만치 히트곡들을 먼저 들을 수 있었습니다. 크리스마스 즈음에는 가는 곳마다 캐럴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 거리에 그저 함께 걷는 것만으로 크리스마스는 더없이 즐거웠으니깐요. 게다가 흰 눈이라도 내리면 거리엔 'White Christmas'가 흘러나왔었습니다. 그것만으로도 설레던 때였네요. 너무 당연해서 감사한지 몰랐던 크리스마스의 정경이 그립습니다.





오늘은 제가 작정하고 감사의 마음을 적으려고 합니다. 다사다난했던 한 해를 돌아보면 그래도 감사의 날이 더 많았습니다. 에는 코로나를 뚫고 이사를 무사히 온 것이 감사합니다. 1층이라 누릴 수 있었던 사계절의 변화를 베란다에서 만끽할 수 있어 좋았습니다. 3월에 생각보다 빨리 이사 오게 된 사연이 오히려 그때가 아니면 이사 오기 힘들었다는 생각에 전화위복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소음은 좀 있지만 따뜻한 집이라서 다행입니다, 남편과 아이들이 좋아하니 됐습니다.


남편이 회사 동료를 자꾸 데리고 오는 것을 보면 집이 좋은가 봅니다. 저는 남편의 친구들이 집에 오는 것이 싫지는 않습니다. 미리 약속을 하고 오면 괜찮습니다. 갱년기 남편의 변화중 하나가 사람들을 집에 초대하는 거였습니다. 뭐 평생 그런 것이 아니라 괜찮습니다. 오히려 남편에게 절친들이 있는 것이 감사합니다. 저와 아들들이 친구들 만난다고 매일 나갔을 때 남편은 회사 아니면 집이었습니다. 그래서 남편의 회사 절친들과의 시간이 고맙습니다. 회사 동료분이 제게 형수님이나 제수씨라고 부르는 말이 좋습니다. 형 동생으로 내며 편이 외롭지 않게 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공부를 열심히 해서 가끔 스트레스를 받는 첫째 아들이지만 평생 공부하라는 말 안 하게 해 주어서 감사합니다. 이 마음은 공부 안 하는 저희 둘째를 보면서 비로소 느껴지는 마음입니다. 음이 약해 걱정이 되긴 하지만 착한 아이라서 고맙습니다. 경제관념도 조금씩 생기는 것이 고맙고 동생 용돈 주는 것도 고맙습니다. 눈이 시큰하다고 울어서 그런가 하길래 왜 울었냐고 물었습니다. 여자 친구랑 슬픈 영화를 봤는데 둘이서 너무 많이 울었다고 합니다. 얼마나 슬픈 영화였길래 스물두 살 남자아이가 다음날까지 눈 시리게 울었을까 했습니다. 그래도 함께 울었다는 착한 여자 친구가 있어서 고맙고 슬픈 영화를 보며 엉엉 울었다는 둘의 모습이 예쁩니다.



스스로를 '중학생 IT'라고 하는 저희 둘째 아들에게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아이가 약속을 지키고 인강을 완독 했습니다. 첫째 아이도 기적이라고 좋아합니다. 한 달 전 인강을 혼자 해보겠다고 했을 때 걱정 어린 제 눈을 보며 게임을 걸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인강을 신청해서 듣기 시작했었습니다. 동시에 단어집도 한 권 같이 해본다고 했을 때 얼마 하겠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열흘 째 되던 날 쉬운 단어집이지만 한 권이 끝났을 때 첫째 아이와 저는 너무 기뻐 둘째 아이를 칭찬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그렇게 적지 않은 인강을 완독 했습니다.


둘째 아이가 와서 말하던 모습을 잊지 못할 것 같습니다.

"엄마 나 다했어."

이 말이 이렇게 가슴 떨리게 기쁜 일인지 첫째를 키울 때는 몰랐습니다. 자기성취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좋을 때 나오는 저희 아들의 표정, 웃음을 참으려고 입을 닫아도 느껴지는 코의 벌렁 거림입니다. 사람들이 별거 아닌 것으로 좋아한다고 해도 괜찮습니다. 저는 저희 둘째 아이가 스스로의 약속을 지키고 완강을 했다는 것만으로, 행복해하는 아들의 모습만으로 감사합니다.




일기 같은 에세이에 대하여 이야기한 글들을 읽을 때면 나의 글도 그렇지 않을까에 소심해지기도 했습니다. 잘된 에세이 책이라고 추천된 책을 주문해서 집중해서 읽어보기도 했던 시간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부족하지만 제 글은 제 글이 될 수밖에 없더라고요. 오랫동안 살아오면서 습관화된 말투와 생각의 표현은 어쩔 수없으니깐요.


가을 전에 시작한 글이 이제 겨울 글이 되었네요. 지금도 감사의 글이 지극히 저의 사적인 마음이라 잠시 주저했지만 오늘만큼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마음을 적습니다.


그동안 놓치고 살던 재미있는 역사이야기와 신화 이야기에 배우는 즐거움을 느낍니다. 좋아하는 멋진 그림들도 잘 보았습니다. 흥미진진한 이야기들과 마음 따뜻해지는 글들을 읽으며 읽는 재미를 알게 된 한 해였습니다. 그리고 비슷하거나 또는 많이 다르지만 글 쓰는 즐거움으로 공감하며 소통하는 즐거움도 알았습니다.


어느새 글쓰기가 4개월이 되어갑니다. 이런저런 일로 힘이 빠질 때쯤 구독자님들이 떠올랐습니다. 구독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다시 글을 쓰고 있었습니다. 며칠 후에 써야지 싶다가도 이렇게 글을 쓰게 되는 습관이 생긴 것에 감사드립니다. 제 글을 읽어주셨던 따뜻하신 작가님들께 연말을 빌어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힘드셨던 한 해 마무리 잘하시고 건강한 새해되시길 바랄게요. 구독자님들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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