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매모호함에 대하여

by 리시안


내가 글을 쓴다는 것만 알고 있던 첫째 아이가 얼마 전 엄마의 글 쓰는 곳을 안다고 말했다. 작가명까지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포털에 떴을 때 진동소리가 계속 울려 조회수 이야기만 한 적이 있었다. 가족들은 나의 작가명도 당연히 알지 못하고 어느 곳에 글을 올리고 있는지도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었다. 혼자 핸드폰을 보며 쓰고 있으면 슬며시 문을 닫아 주곤 했다. 그날은 핸드폰을 보다 눈을 깜박이는 것을 보고 첫째 아이가 노트북을 사라며 말이 시작되었다.


엄마, 그렇게 쓰면 눈 나빠져. 노트북을 사.


괜찮아.


엄마 내가 사줄게. 그러다 눈 나빠져. 나 돈 있을 때 사줄게. 사자 엄마


사라. 괜찮다 주고받다가 아들이 고백을 했다.


엄마, 나 엄마 어디서 쓰는지 알아, 안지 한 달도 넘었어. 엄마 작가명도 알아 이거지?


브런치를 열고 나의 작가명을 검색해보는 것이다. 아, 알고 있었구나 어떻게 알았을까. 그날이었다고 한다. 포털에 아들이 사준 고슴도치가 올라온 날이었나 보다. 아들방 책상에서 고개를 돌리면 바로 거실 소파 테이블이 보인다. 그위에 놓인 고슴도치 이쑤시개 통을 보았던 것이다. 포털을 보고 있다가 어디서 많이 본 장소가 눈에 띄었다고 한다. 마침 문이 열려있었는 데 고개를 돌려 보니 사진 속의 모습이 우리 집 거실에 있었다는 거였다. 첫째 아이가 유럽여행을 갔을 때 남편의 선물이라고 사 왔던 것이라서 더 눈에 띄었을까. 나도 나의 글이 어디에 올려져 있는지 찾기 쉽지 않은데 그 순간을 보았다니 신기했다.


첫째 아이는 내 글을 읽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혹시 자기가 알아서 부담스러운 건 아니냐고 어쩔 줄 몰라했다. 모른척하려다가 노트북 때문에 말을 하게 된 것 같다. 첫째 아이가 안 봤다면 안 봤을 것이다. 원래 속이 다 보이는 것이 첫째 아이라서. 그리고 무엇보다 모른척해주는 것이 엄마를 위한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아는 첫째 아이라서.


그러나 그날따라 핸드폰에 글을 쓰고 있는 내가 마음이 쓰였는지 노트북을 사라는 거였다. 코 묻은 돈은 아니지만 아르바이트해서 모아 놓은 돈으로 내 노트북을 사기는 미안한 일이다. 남편에게는 글을 쓰는 이야기를 자세히 안 했기 때문에 노트북을 사달라고 말하기가 불편하단 걸 첫째 아이가 아는 눈치다. 그 마음을 알기 때문에 자기가 사준다는 거였다.


가족들은 각자 노트북과 pc를 가지고 있다. 남편과 공용으로 쓸 수 있는 태블릿 pc도 있지만 왠지 그것도 남편 것 같아 거기에 글을 쓰기는 불편하다. 계정이 다르지만 왠지 멋쩍은 일이다. 결국 핸드폰 화면을 보는 것이 편하고 익숙해졌다. 이렇게 자유롭지 못한 마음은 아마도 나의 글들이 대부분 가족 이야기가 많기 때문일 것이다.


첫째 아이는 대학에 들어가면서부터 스스로 용돈을 벌어 썼다. 유럽여행도 모아서 가고 적금도 들었다. 올해처럼 매주 시험으로 바빠지면 공부만 해야 하는 상황이라 열심히 모아 둔 거였다. 요즘처럼 실습이 많은 날에는 포르말린 냄새 때문인지 더 피곤하고 졸려한다. 첫째 아이가 생각했던 것처럼 아르바이트를 할 시간이 없어서 모아 놓은 것으로 용돈을 써야 한다. 그래서 무슨 노트북이냐며 괜찮다 말하다가도 한편으로는 못 이기는 척 받고 아들한테 필요한 패드를 대신 사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엄마한테 선물해서 뿌듯하고 나도 덜 미안하고.


다만, 컴퓨터 관련된 것만큼은 남편을 통해야 하는 보이지 않는 룰이 있어서 고민이다. 3년 전 내가 할인과 옵션도 없이 핸드폰 신제품을 덜컥 사버린 후 기계는 꼭 남편을 거친다. 하물며 핸드폰 샀던 가게가 한 달 뒤에 없어져서 서비스도 전혀 받지 못했었다. 그래서 노트북 이야기를 주저하게 되었다. 그리고 필요하다고 할만한 명분이 약한 것도 발목을 잡는다.


첫째 아이가 내 작가명을 검색하기 위해 열었을 때 카테고리 안에서 내 이름을 바로 찾지 못했었다. 나의 작가명이 어디에 있냐고 물었다. 에세이에서 찾아보는 것 같았다. 찾지를 못했다.


어? 어, 엄마는 글도 쓰고
요리도 써서 그럴 거야.
그리고 동시도 짓거든. 좀 애매모호하지

순간 당황을 했는지 나의 대답이 길었다. 그리고는 혼자 있을 때 다시 찾아보았다. 나 역시 살짝 궁금해졌다. 당연히 에세이 작가에 있지 않을까 했지만 그 어떤 카테고리 안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작가 찾기에서만 찾을 수 있었다. 문득 이곳에서 나는 어디쯤에 있는 걸까. 그제야 내가 쓰는 글들이 애매모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무슨 작가일까. 무슨 글을 쓰고 있는 걸까, 애매모호함으로 이곳에서도 존재하고 있었다.



이 애매모호함, 이것도 아니고 저것도 아닌 어중간함. 허용을 해주다가 어느 날은 안되고. 또 어느 날은 되고. 이것도 조금, 저것도 조금 그러다 보니 매사가 덜 명확하다.

누군가에게 응원의 표현이든 위로의 표현이든 처음의 마음과 달리 가지치기가 되어 정작 말하고 싶었던 것에서 서성일 때도 있다. 그럼 이것도 저것도 아닌 말이 될 때가 있다.


그러나 요즘 내가 생각하는 것은 어쩔 수 없다는 것이다. 내가 어찌할 수 없는 나의 성격으로 인한 결과물들 또한 나의 것이니깐. 그로 인해 마주하는 불편한 진실들도 나의 것이고 애매모호함으로 오는 애매한 색깔인 것도 나인 것이다. 명확한 성격의 사람들이 만들어 내는 세상도 있고 나처럼 모호함이 가득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세상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다. 나는 나대로 지내려고 한다. 바꾸려고 한다한들 바꾸기가 쉽지 않다. 애매모호하다는 말은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말 같다. 그저 성격의 표현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받아들이려고 한다. 내가 애매모호해서 이루어진 모든 글과 일상도 모두 나의 것이기에 그것 또한 나일 테니 말이다. 어디에 있든 있으면 되는 것이다. 그래도 어딘가에 있는 나의 애매모호함들이 잘 전달되어 있기를, 그러다 어느 날 고운 향도 생기고 선명한 빛깔도 서서히 묻어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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