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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線) 넘어가기

by 리시안


입추가 지나고 나니 올해도 어김없이 바람이 여름내 지친 땀을 걷어준다. 아파트 옆길에 있는 마트를 향하는 그 길가, 목련과 벚꽃을 보여 주던 그 길가엔 하나 둘 성격 급한 낙엽들이 뒹굴기 시작했다. 바람에 날리는 낙엽을 보며 어디에서 온 나무의 잎사귀인지, 어떤 곳의 나무가 바람에 따라 내 눈앞에 날아와 있는지는 알 길이 없다. 하얀 목련은 목련인 줄 알았고 분홍 벚꽃은 누구나 벚꽃이라고 알았는데, 같은 자리에서 나뒹구는 낙엽의 이름을 모르니 꽃잎을 내어주었을 이름 모를 나무에게 미안한 마음이 든다. 폭염 때문에 나뭇잎이 메말라 고사한 것은 아닌지. 그런 이유가 아니라면 천천히 9월쯤이나 되어서 와도 좋을 걸, 이 낯선 여름 8월 한가운데로 훌쩍 넘어와 우두커니 마주하게 되는 낙엽은 왠지 더 쓸쓸해 보인다.


요즘 내 또래의 지인들을 만나면 대부분 비슷한 증상을 이야기 한다. 턱관절이 아프다고 누군가 말을 하면 그 걱정을 무색하게 모두가 최근 또는 그 한참 전에 이미 턱관절 이상을 겪고 있다고 말한다. 동병상련이란 이런 때 맞는 표현일지 모르겠다. 모두가 같은 증상을 공감하면서 그 순간 불편한 것이 별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된다. 최근에는 시력 이야기를 많이 한다. 40대가 되면서 한두 명 안경이 바뀌는 모습을 보았는데 이제 누구랄 것 없이 침침해진 시력과 노안의 불편함을 이야기한다. 오십 대 남편들의 다초점 안경으로 바꾼 이야기부터 안경알의 크기를 고르는 노하우도 알려준다. 비슷한 나이의 지인들을 만나면 아프거나 불편한 것들이 그저 일상의 하나라고 여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 그동안은 말하고 싶지 않았던 불편함들을 이야기 하면서 어쩌면 모두가 "나도 그렇다"는 그 말들을 듣고 싶어 하는지도 모른다.


얼마 전부터 핸드폰에서 글을 볼 때마다 안경을 빼고 보는 습관이 생겼다. 그러다보니 핸드폰 화면의 글자들이 예전 같지 않음이 느껴졌다. 이동할 때마다 핸드폰에 글을 쓰는 것이 전혀 불편함이 없었는데 이 계절에 급하게 낙엽이 바람을 타고 내 앞에 날아오듯이 노화가 어느 날 시작한 것 같다. 문제는 핸드폰 글씨 크기가 일 년 전과 같다는 것인데 이것이 이상하게 좀처럼 글자크기를 키울 생각이 안 들었다는 것이다. 우연히 내 핸드폰을 보게 된 지인들은 글자 크기를 키우라고도 했지만 바꿀 마음을 갖지 못했다. 그게 뭐라고, 마치 작은 글씨로도 잘 보겠다는 우습잖은 마음이 있었던것 같다.


그러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며칠 전 핸드폰 설정에 들어가 글씨 크기를 한 단계 키웠다. 검색포탈의 글씨체도 키우고 카톡 안의 대화도 글자를 키웠다. 글자를 크게 바꾸는 것은 몇 분도 걸리지 않았다. 잘 보인다. 이렇게 한 번에 잘 보이는 것을, 그 몇 분의 할애를 못해서 오랫동안 불편함을 감수하고 지냈다니. 어리석게 느껴졌다. 내가 하던 일들에서, 내가 생각하는 툴에서 조금만 벗어나도 큰일 나는 것처럼 살아온 나였기에 지금이라도 글자크기를 키워 편해지는 것을 택한 것은 잘한 일 같다. 다만 화면에 큰 활자들이 아직은 익숙하지 않다는 것이지만 글씨를 보려고 미간을 찌푸리고 안경을 올리거나 벗는 일은 줄일 수 있게 되어 다행스럽다.




돌아보면 스스로에게 만들어진 수많은 선들을 넘어가지 못하며 살아온 것 같다. 습관과 고정관념은 세월에 굳어지는 성벽처럼 삶의 테두리를 단단히 봉쇄했다. 보이지 않는 테두리를 치고 그 안에서의 사람들과 반복되는 일상이 익숙했다. 언제나 일정량의 눈과 비와 햇살이 쏟아져 땅의 건재함이 영원할 것이라는 생각으로 지내다가 어느 날 천둥번개가 치고 장마가 지고 홍수가 올 수 있다는 것을, 그래서 줄 긋기처럼 약한것이 없다는 것을 알았다. 줄그어진 틀안에서 사는 것은 잘 사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 전, 대학에 다니는 아들이 내가 얼마나 고지식하고 틀에 갇혀 지냈는지를 말해주었다. 예전에 내가 관상 만화책 전집 열권을 사서 읽은 적이 있었다. 아들 말로는 그 책들에서 성에 관한 이야기가 딱 한 개 정도 설명이 나와 있다고 그 이유로 고등학생인 자신에게 절대로 읽지 말라고 했었다고 한다. 엄마는 도대체 어떻게 자기를 키운 거냐며 크게 웃었다. 어른이 되고 보니 나의 철통 같은 견제가 기가 막히면서 웃음이 났다고 했다. 게다가 드라마에서 스킨십 장면이라도 나올라치면 얼른 화면을 돌리곤 했단다.

아들말이 엄마는 최강 극강 보수엄마였다고 했다. 내가 그랬냐며 말했지만 사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에겐 모르쇠다. 아마 고1인 둘째 아들은 모르는 것이 없을 거라는 이야기도 나눴다. 형때와는 다르게 나의 잔소리나 철통방어가 없는 둘째에게 예전 형이 이랬다고 하는 이야기는 이해하기 힘든 옛날이야기 같을 것이다.


먼저 걱정하고 문제가 오지 못하게 미리 방어를 하며 살았다. 그러나 이제와 생각해보면 전전긍긍할 필요가 없었다. 살다 보니 싫은 상황과 맞닥드려야 하는 일상이 존재했고 이겨 내야 한다는것을 알았다. 아이들에게 무엇은 되고, 무엇은 안된다고 아무리 이야기를 해도 어른이 되면 스스로 결정하고 선이라고 믿고 살아온 자신만의 선을 넘을 때도 생길것이다. 그럴 때마다 선을 지켜내지 못한 자신을 괴롭히는 일은 없어야 할 것 같다. 적어도 내 아이들이 사는 삶에서는 스스로를 가두는 선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이미 엄마인 나로 인해 자유롭지 못했던 삶은 그저 살면서 신호등의 빨간불이라고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 아이들의 삶은 실수해도 괜찮고 부족해도 웃을 수 있는 삶이 되기를 바란다.


어느 만치의 성과와 실패가 이만큼이 좋다 아니다는 살면서 알 수가 없다. 언제나 내 것이라고 여기고 지켜내려 했던 선들도 넘어가야 할 순간이 올 수 있는 것이다. 나역시 괜찮다고 생각하다 보면 테두리를 그은 선들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지지 않을까. 모든것을 내가 꼭 해야한다는 선도 넘어가고 있다. 부족해도 괜찮다는 생각들은 옴짝달싹 못하던 나를 조금씩 앞으로 걸어가게 해주지 않을까. 어쩌면 폭염으로 떨어진 낙엽이 이른 계절에 이방인처럼 다가왔지만 이듬해 봄을 위한 꽃 피워줄 자리인 것처럼, 때론 정석에 맞지 않아도 괜찮고, 순서가 바뀌어도 괜찮다고 말하고 싶다. 조금 흐트러져도 괜찮다고, 만들어 놓은 틀 따위는 툴툴 털고 넘어가도 괜찮다고, 이제야 세상이 조금 보이는 나에게 말해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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