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속에서 긴장하고 있어서였는지 잠에서 깼을 때 잔 것 같지 않은 느낌이 들었다. 어수선한 꿈을 꾸고 나면 밤을 꼬박 새운 것처럼 찌뿌둥하다. 살짝 한기도 들었다. 졸음은 오는 데 몸은 작은아이 방으로 향했다. 갑작스레 더워진 날씨에 창문이라도 열고 잘 까 봐 문을 닫아주러 갔다. 큰아이 방엔 아직 불이 켜져 있어 시계를 보니 새벽 네시였다. 안쓰럽지만 내일이 시험이라 잠이라도 들어있으면 깨우는 것이 더일이라서 불 켜진 첫째 방은 열지 않았다.
일주일마다 보는 시험도 빡빡하지만 이번 과는 엄청난 분량에숨이찰테지. 행여 잠이 올까 봐 중얼중얼 외우면서도앓는 소리가 들린다. 그럴 땐 문을 열고 아는 척을 안 하는 것이 아이를 위해 낫다는 것을 이제는 안다. 그야말로 멈추면 안 된다는 것을 알기에 마음을 끌고 가는 것 같다. 그럴 때 내가 문을 열면 긴장하며 잡고 있던 마음이 흔들리곤 하는 것도 안다. 수능날도 나는 일부러 따라가지 않았다. 현관에서 인사를 나눴다. 눈이라도 마주치면 서로가 울컥해서 도움이 될 것 같지 않아서였다.
엄마야?
어, 파이팅!
내가 할 수 있는 말은 파이팅뿐이다.잠시 더 자고 깨었을 때도 꿈 때문인지 창문 틈으로 들어온 바람 때문인지 살짝 머리가 무거웠다. 예전엔 두세 시간만 자도 괜찮았는 데 요즘은 잠을 잘 못 자고 나면 하루가 피곤하다.
둘째는 어제 초저녁부터 자더니오늘 아침에 일어났다. 중간에 몇 번을 깨우기도 해 봤지만 깨질 못했다. 잠깐씩 깰 때마다 미안해했다.
엄마, 미안한데 나 좀 편하게 자고 싶어
둘째의 말에 조용히 이불을 덮어주고 나왔다.
미안한데.. 와 편하게의 말이 목에 걸려 넘어가질 않았다.그렇게 열두 시간을 내리 잤다. 첫째는 둘째가 신생아냐고, 고등학생이 이래도 되냐고 말하면서도 오늘은 내 대신하는 잔소리도 짧다.
컨디션은 괜찮아?
어 괜찮아.
둘째는 여섯 시쯤뽀얀 얼굴로 깨서 배고프다며 토스트가 먹고 싶다고 했다
그래 컨디션 좋으면 됐지
냉장고에서 네 개 남은 달걀을 꺼내 놓고 식빵을 먼저 구웠다. 달걀 한 개를 풀고 또 한 개를 풀려고 탁탁 치려다손에서
미끄러지면서 풀어놓은 달걀 위로 떨어졌다. 달걀이 통째로 빠져어쩔 수없이 두 개 남은 달걀로 만들어야 했다. 그런데들다가 또떨어뜨렸다. 떨어진 달걀은 그대로 부엌 바닥에 널브러졌다. 잠이 덜 깨서일까. 바닥에 달걀을 떨어뜨려 깨트리는 일은 살면서 몇 번 안 되는 일이었다. 오늘은두 개나 깨지고 나니 왠지 몸이 사려졌다. 뭐든 안되고 실수가 많은 날이 있는데 그날 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남은 달걀 한 개를 풀어 부치고 구운 식빵에 잼을 발라 샌드 했다. 그리고 사각 모양이 틀어지지 않도록 식빵 끝을 잡으며 조심스럽게 내 등분을 해줬다. 십자로 칼집 모양이 났을 때 왠지 모르게 기분이 나아졌다. 어제는 토스트를 썰다가 달걀이 삐져나왔었는데 자로 잰 듯 썰린 토스트를 보니 어쩌면 오늘이 운수 나쁜 날만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도 들었다.
욕실 휴지걸이를 끼우다 떨어뜨렸을 때 깨지지 않은 것을 보면서도 그랬다. 손이 들어가지 않는 3센티 여유도 없는 침대와 벽 사이에서 둘째의 핸드폰을 꺼내는 일을 해내고 나니 역시 운수 나쁜 날만은 아닌 것 같았다. 두 번째라서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침대를 뺄 수 없는 공간에서는 파일 낱장 하나면 된다. 파일을 반으로 접어서 그 사이로 핸드폰을 끼워 침대 끝까지 밀고 나오면 된다. 그런데 문득 드는 생각은 둘째가 해야 하는 것을 기다리지 못하고 생각할 기회도 주지 않는 건 아닌지, 너무 쉽게 해결을 해주는 것이아닌지. 어떤 방식으로든 나에게 너무 의지하고 익숙한 아이들을 보며 이런저런 생각이 드는 아침이었다.
달걀을 떨어뜨린 후 유리컵을 닦을 때는 더 조심했고 휴지를 끼울 때도 주의했다. 핸드폰이 떨어지는 둘째의 침대와 벽 사이에는 얇은 책들로 채웠다.
오후에는 아무래도 안되겠다 싶어 동네병원에 들렸다. 놓치는 실수를 몇 번 하고 나니 살짝 걱정이 들어 혈압체크를 하러갔는데 약을 주시면 먹어야지 싶었다. 두 번을 쟀는데 가자마자 잰 것은 살짝 높았고 10분 있다 잰 건 낮았다. 간 김에 혈당체크도 해보았다.
처방은 약은 먹지 않지만 생활습관을 바꿔야 한다고.무엇보다 땀이 나는 중강도 운동을 해야 한다.야식 라면도 끊어야 한다. 그래도 라면은 끊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문제는 좋아하는 빵과 떡을 양껏 먹지 못한다는 것이다.
매일 마시던 달콤한 아이스 연유 라테도 이젠 스톱이다. 이 세상 달콤한 것들과 거릴 두어야 하는것이 아쉽지만 평생 실컷 먹었으니 이젠 건강을 생각을 해야 할것같다.그래도 병원에 가서 검사를 하고 나니 좀 마음이 홀가분했다.
'해결되는 일이 일어나는 날은 운수 나쁜 날이 아니지.'
나쁘다 생각하면 그렇고 괜찮다고 생각하면 또 괜찮았다. 돌아보면 대부분의 날들이 그랬다.
뒤숭숭한 꿈을 꿔서 무슨 일이 있으려나 싶었던 것도, 깨진 달걀을 닦고 청소해야 하는 수고스러움만 넘긴다면 별다르지 않은 하루이고 일들인 것이다. 굳이 운수라고 말하지 않는 평범한 하루일 뿐이다. 조심해서 나쁠 것은 없으니 살짝 조심하면 된다.
큰아이가 오늘은 쪽잠도 안된다며 졸린 잠을 깬다고 집 앞 카페에 가서 천오백 원짜리 아이스커피를 사 왔다. 시원한 아이스커피의 바닥이 보일 때쯤 일기 같은 오늘의 글이 마무리되었다.
일어나려는데 남편의 카톡 이모티콘이 날아왔다. 퇴근시간이 아니여서 일찍 퇴근하나 싶었는데 오늘 이모티콘은 '택배 왔숑'이었다. 생일 선물로 뭐 사줄까 했을 때 비싸지 않은 걸로 얼른 골랐던 귀걸이가 하루 일찍 현관문 앞에 와 있었다. 햇살에 크리스탈이 달랑거리며 반짝였다. 고맙다는 이모티콘을 보내줬더니 즐거워하는 이모티콘이 왔다. 남편의 활짝 웃는 이모티콘을 보니 오늘도 별다르지 않은 하루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