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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시안 Jun 04. 2022

달콤하고 쌉싸래한  글 한 스푼


저녁을 먹고 산보하러 나온 길, 팔에 스치는 바람이 그렇게 부드러울 수가 없다. 낮에는 올라간 온도로 초여름의 햇살이 가득했는데 밤이 되니 바람과 섞이어 찬 듯 보드랍게 나를 감싼다. 오늘따라 길 건너에 알록달록한 간판의 아이스크림가게가 보였다.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무지개의 얼음세상이 있는 곳, 나도 모르게 달콤한 세상의 문을 열었다.


셔벗과 녹차 아이스크림을 담았다. 진한 초콜릿 아이스크림도 담아졌다. 우유에 쌉싸래한 녹차가루가 섞이고 진한  초콜릿이 주르륵 녹아들어 갈 때쯤의 아이스크림은 상상만으로도 입안에 달콤함이 머무는듯하다. 잊을 때쯤 생각나는 이 달콤함이 입안에 들어가면 무채색의 하루 같던 하루에 생기가 돈다. 남편은 내가 좋아하는 녹차 아이스크림 한통을 사다 주곤 했었다. 진한 녹차맛이 쌉스름하면서 달달했던 녹차 아이스크림을 냉동실에서 꺼내 먹을 때마다 진한 맛이 좋았다. 언제가 부터는 아이들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만을 사게 되었다. 남편은 내가 녹차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것도 잊었을지 모른다.


친한 동생과 커피 약속으로 일찍 시작한 하루였다. 얼음 가득한 디카페 커피에 싱싱한 사과와 두꺼운 치즈가 샌드 된 통밀 샌드위치에 기분 좋은 아침이었다. 조금 울적해 보이는 동생은 몇 년 만에 외국에서 온 친구와 만나기로 했는데 옷장을 여니 마땅히 입을 옷이 없더라는 것이다. 그 마음은 주부라면 오래간만에 만나는 친구를 만날 때 느낄 수 있다. 내가 동생은 청바지에 티셔츠만 입어도 예쁘다고 말해주었는 데 친하면 예뻐 보이는 거 아니냐고 했다. 나는 아주 객관적이라며 진짜 이쁘다 했지만 언니는 아는 사람 중 제일 객관적이지 않고 주관적이라고 했다.


나에겐 좋아하는 친구들이 뭘 입어이쁘보이는 건 맞다. 친구들은 이 옷 살까 하고 물어오면  나는 이쁘다며 사라고 한다. 그러면 너는 다 이쁘다고 한다며 물어보나 마나라고 한다. 어쩌면 나는 객관적이지 못할 수도 있지만 내 눈에는 이뻐 보이는 걸 어쩌겠나. 그래도 헤어질 때쯤에는 울적하던 동생의 얼굴에 웃음기가 보여서 다행이었다. 나의 말이 달콤하라고 한건 아닌데 울적한 동생에게 사탕 하나 녹여먹을 만치만이라도 기분이 나아졌으면 된 것이다.


오후에는 며칠 전 시아버님상을 치른 또 다른 동네 동생과 커피를 마셨다. 지난주에 둘째 친구 엄마들과 장례식장을 다녀왔었다. 동생에게 그간의 일들을 듣고 있었기에 황망한 마음이었다. 엄마들과 찾은 빈소에서 우리를 보자 동생이 눈물을 보였고 우리들은 모두 울먹이며 동생의 시어머니를 뵈었다. 얼마 전 친정아버지를 여읜 동네 동갑친구는 동생의 시어머니의 손을 잡고 힘내시라고 다독여드렸다. 옆에 있던 동생들도 식사를 잘하셔야 한다며 위로 말씀의 전했는데 열에서 길을 놓친 아이처럼 나는 한 발자국 뒤에 우두커니 서 있었다. 아마 1초, 2초나 되었을까. 그저 울컥하는 마음으로 그간 간호하느라 고생했던 동생의 남편을 보다가 인사의 열에서 물러나 있었다.  


손을 잡아드리며 울먹이던 친구는 얼마 전 홀로 남으신 친정엄마 생각이 나서 계속 눈시울을 붉혔다. 그 막간에 나는 함께 간 지인들이 어른이구나 생각이 들었다. 동갑내기 친구와 동생들은 시어머니께 먼저 손을 잡아드리며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네고 있었다. 나는 맨뒤에서야 나오면서 시어머니의 손을 잡아드리는 것이 전부였다. 의 말이 목에서 맴돌다 결국 나오지 못했다. 마음의 표현을 한다는 것이 슬픔을 얼마나 부드럽게 감싸 안아줄 수 있는지 알면서도 마음을 전하는 순간을 놓치고 나면 할 수 없을 때가 있다.


우리는 울적한 마음을 다스리는 것에 미숙하다. 슬픔을 다루는 방식이 모두가 다르지만 때로는 달달한 쿠키 한 조각이 기분을 올려주고 부드러운 말 한마디에 딱딱해진 마음이 스르르 풀린다는 것은 안다. 종일 지친 가족들의 뜨거워진 마음을 식혀주는 아이스크림 한 개가 하루를 녹아내리게 한다는 것도. 만약에 누군가에게 전하려는 마음이 있다면 미루지 말아야 한다. 울적한 이를 위한 위로가 생각보다 큰 힘으로 다가갈지 모른다. 잠깐 사이에도 녹아버리는 아이스크림처럼 가장 좋은 순간에 달콤함이 전해지도록. 때로는 쌉스름한 용기가 필요할지 몰라도 그 순간을 놓치지 말기를. 힘내라는 말, 기다린다는 말, 그립다는 말, 그리고 언제든 전화하라는 말. 마음을 온전히 전할 수 있도록. 그렇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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