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리시안 Aug 16. 2022

마음에게 묻다

아파트 정문을 나오면 시장으로 향하는 두 갈래 길이 나와요. 왼쪽은 평평한 큰 도로 길이고 오른쪽은 약간의 경사가 있는 오르막길이에요. 시장까지 걸리는 시간은 비슷하지만 오늘도 습관처럼 오르막길로 발길이 옮겨지더라고요. 마스크 속으로 숨이 살짝 찰 정도의 경사를 오르다가 가로수 밑을 지날 때면 잠시나마 뜨거운 햇살을 피할 수 있어 좋아요. 오르막길을 오를 때는 생각 할 틈이 없어요.내딛는 걸음에 집중을 하게돼요. 뒤에서 보면 걸음이 무겁고 더디어 보일 수 있어요. 그래도 돌아올 때는 평평한 도로 쪽보다 내려올 때의 편안함이 있어요. 내리막길은 힘을 주어 걷지 않아도 저절로 걷게 해 주니까요.


그런데 내리막길에서는 오르막길을 오를 때 보았던 나무는 보이지 않아요. 내려가는 속도에 밀려 주변 풍경은 잊게 돼요. 마치 시동이 걸린 자동차처럼 미끄러지듯 내려가면 어느새 집 앞에 도착해 있어요. 그때는 빨리 온것 같아 이길로 오길 잘했다고 잠깐의 마음이 들어요. 그 마음에 다시 오르막길로 향하는 것 같아요. 땀내며 올라갔을 때의 더위는 잊어버려요. 매 순간 우리들이 힘든 일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과 비슷할 거예요. 길하나에도 늘 선택을 해요. 그것이 때로는 더 힘든 순간들을 마주하게 한다는 것을 알아차려도요. 오랜 습관처럼요.


아주, 가끔은 마음속으로 잘살고 있느냐고 물어요. 하지만 잘 산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하루들은 아닌 것 같아요.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모를 만큼 일들이 많을 때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를 생각할 틈이 없었어요. 그날이 그날 같아도 그냥 그런 하루는 없다는 것도 아니깐요.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하루나 너무 많은 일에 지친 하루도 우리들의 하루하루니깐요. 그저 매 순간 마음에게 묻게 돼요. 최상은 아니지만 최선의 선택이 되길 바라면서요.


며칠 전 카페에서 지인 네 명이서 영화 이야기를 하고 있었어요. 누군가 어릴 적 홍콩 4대 천왕이라고 불리던 유덕화와 장학우와 여명과 곽부성 중 누굴 좋아했느냐고 물었어요. 참 오랜만에 듣는 중국 배우들이었네요. 네 명의 이미지가 다른 것처럼 네 명 모두의 대답도 달랐어요. 한 사람을 보고도 사람들이 느끼는 모습은 참 다르다는 생각을 했어요. 질문을 한 친구가 재밌어하더라고요. 그러다 각자의 남편들의 모습이 겹치면서 모두 웃었어요. 네 명의 남편들에게 시절에  좋아했던 배우들의 이미지를 떠올리려 하다보니 웃음이 나왔나봐요.아마도 있었을거에요. 학생때가 다르고 20대와 지금이 같진 않아도요. 어찌보면 누군가에게 마음이 끌리는 순간도 변한다는걸 느껴요. 마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말캉말캉한 푸딩같아요.


그날 저녁에 남편이 뜬금없이 김치찌개와 된장찌개 중에 뭐가 좋으냐고 물었어요. 김치찌개라고 했고 남편은 된장찌개라고 했어요. 또 뭐가 있더라며 짬뽕과 짜장면을 묻길래 짜장면이라고 대답했어요. 남편은 짜장면보다는 해물이 가득한 얼큰한 짬뽕을 좋아하는 걸 저는 알아요. 하지만 마음은 바뀌잖아요. 어느 날은 찐득한 짜장면을 후루룩 먹고 싶다가도 면과 국물이 겉돌아 별로이던 짬뽕 맛집도 어렵게 찾게 되거든요. 


살면서 그런 질문을 하는 남편이 아니었어요. 주변에 관심이 별로 없던 남편이 점점 변하네요. 가족들의 일에도 궁금한 게 많아졌어요. 다르게도 저는 그렇지 못해요. 여러 가지 생각을 잘 못하게 되네요. 돌아보면 모든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도 강박 같은 거였던 것 같아요. 그런 마음은 스스로를 힘들게 할때도 있어요. 뭐가 좋으냐고 묻거나 기분이 어떠냐고  물으면 한결같지 못해요. 작은 일에 감동하기도 하고 콩알만 한 서운함에 서글퍼져서 새초롬해지는 변화무쌍한 마음이에요.


어떡하지. 마음에 물어도 이젠 대답이 느려요. 생각이 금방 떠오르지 않아요. 아주 오랜만에 글을 쓰게 하는 마음도 답을 빨리 주지 않았어요. 잘하고 있는 거냐고 묻기만 하게 했어요. 내 것이라고 생각하던 마음이 내 것이 아니게 느끼게 되었어요. 자신 있던 것들에 의기소침해져서 가지고 있는 것도 보지 못하게 되는 날이 많았어요. 어느새 글을 쓴 지 2년이 되었네요. 오르막길을 오르듯 글을 썼나 봐요. 숨이 차도 찬가보다 더워도 더운가 보다며 걸었어요. 저만치에 집이 보이는 내리막길에 서있어요. 아무것도 쓰지 못하던 시간을 보내고 나니 이제야 마음이 말해주네요. 힘을 빼고 걸어도 된다고요. 오를 때보다는 더 쉬울 거라고요. 뜨거운 계절이 지나서야 알려주었네요. 지켜내라고 말해요. 없다고 생각하면 쓸쓸해지는 모든 것들을 지켜내라고요. 어느 여름날, 마음이요.












매거진의 이전글 여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