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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시안 Nov 11. 2022

느지막한 가을밤

가을일까, 겨울일까. 나는 언젠가부터 11월을 가을이라고 해야 할지 겨울이라고 해야 할지 헷갈려했다. 달수로 본다면 9월, 10월, 11월을 가을 달이라고 하겠지만 이맘때가 되면 나에게 11월은 가을 같기도 하고 겨울 같기도 하다. 늦가을이, 어쩌면 초겨울이 좋은 이유는 애매모호해서 일까. 그렇다면 애매하다는 것은 늦가을처럼 얼마나 그윽하고 애처롭고 다정할까. 그리고 초겨울처럼 얼마나 눈부시고 맑고 포근할까. 이토록 착한 형용사들 애매하고 불투명하고 쓸쓸한 계절도 썩 괜찮아진다. 애매모호함은 어쩌면 가장 유연하고 부드러워 웅크린 등위를 살포시 감싸 안아 줄지도 모른다.


이 애매한 계절 안에서 나는 가을이 되고 겨울이 된다. 좋았다가, 슬펐다가, 쓸쓸하다가, 벅차다가 내게 쓰는 온갖 형용사에 사뭇 민망해질 만큼 감정에 애매모호함이 가득하다. 그럼에도 이 계절 안에서 나는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느껴지는 것은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바라봐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감정을 만질 수 있게 된다.


노트북을 켰지만 늦가을에 들으면 좋다는 피아노 선율만 하루 종일 흘렀다. 화면 가득한 가을 숲 풍경의 노란빛이 거실 한쪽을 밝혔다. 익숙한 곳이 낯설어지고 이방인 같은 느낌이 들더라도 이 계절은 지나간다.

때로는 과몰입이 생각지 못한 버거움으로 돌아오면 한 발치 떨어지면 되는 것이다. 외로워질 때도 있고 혼자처럼 느껴질 때가 있는 것은 우리가 이 계절에 가을이 되어 버리는 습성 때문일 테니. 


쓸데없이 마음이 가라앉으면 어떻고, 글 한 줄 쓰지 못했던 몇 날이 있었어도 모두다 계절 때문이라고, 나는 오늘 나의 감정의 애매모호함을 가을 탓으로 넘겼다. 늦가을이 좋아서 늦가을처럼 되는 것을 어떡할까. 그로 인해 조금 감정에 흔들리는 그런 날이 오늘이었다 해도 내리는 달빛 때문이라고 핑계대어도 좋은 밤이다. 무엇을 쓴 건지 애매모호해도 그런 날도 오늘이라고 모두가 계절 탓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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