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릇하던 해피트리 잎이 누렇게 색이 옅어졌다. 뿌리 쪽에 가까운 잎이 타들어가면 과습이고 멀리 있는 잎이 타들어가면 영양부족이라고 한다. 뿌리 쪽이 아닌 걸 보니 영양부족인가 보다. 누렇게 변하는 잎은 떼어주면 된다고 했다. 무성하다고 좋은 것이 아니라 뿌리와 흙과 모든 환경에 가장 적당한 잎의 정도가 있다고 했다. 그래야 새순이 자랄 수 있는 환경이 된다고.
그런데 참 못하는 것이 가지치기다. 누렇게 색이 바뀌어도 잘라주는 것을 못하고 바라보기만 했었다. 가위만 있으면 되는 것을 잘라내지 못할 때가 많았다. 잘라내다 옆의 잎까지 영향이 갈까 주저했다. 몇해전처럼 가지만 남겨질까 두려웠다. 기어이 잎이 다 떨어지면 그제야 속상한 마음이 들곤 했었다. 아무래도 가위를 들어야했다. 누런 잎들이 하나 둘 바닥에 툭툭 떨어졌다. 잎과 잎 사이에 공간이 생기고 헹해졌다.
어쩌면 식물을 잘 키우지 못했던 이유도 제때에 가지치기를 하지 못해서 일지 모르겠다. 그리고는 식물을 못 키우는 사람이라는 말 뒤에 숨어버렸다. 어떤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규정짓고서 하지 않은 일들이 많았다. 그중에도 잘 하지 못하는 일이 생각을 바꾸는 일이다. 마음은 있지만 잘하지 못하는 일, 감정을 끊어내는 일도.
오늘 나는 내가 하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문득. 그말이 내게 오자 갑갑했던 머릿속이 시원해졌다. 느낄 수 있는 감정중에 하찮다는 표현이 이렇게 자유로울 수 있게 하는 지 몰랐다. 살면서 하찮다는 말은 생각해본 적이 없는 표현이었다. 스스로에게 썼을 때만 자유로워지는 말.
잘쓴 글과 작품 앞에서 나는 하찮아졌다. 계획적으로 살아온 사람들 앞에서도, 스스로를 잘 지켜내고 하나씩 이루어 내는 사람들을 볼 때도 나는 하찮아졌다. 그럴 때마다 어설픈 힘이 들어가면 뭉쳐진 근육처럼 뻐근하고 피곤했다.
잘 쓴 글을 읽고 나면 글 한 줄 쓰는 것이 쉽지 않았다. 그런데 오늘 하찮다는 말을 나에게 가져오니 이렇게 마음이 편할 수 없다. 마음이 바뀌니 자유롭다. 잎을 잘라내듯 누렇게 곪고 있을 지 모를 마음을 떨어내니 가볍다. 가늠하거나 비교하지 않는 자유로움에 이 하찮은 마음이 반가운 것이다. 귀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별일없던 어제처럼, 기꺼이 오늘을 살아가는 마음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