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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리시안 Nov 29. 2022

뜨개질하는 시간

그건 또 누구 거야?


베이지색 목도리를 뜨고 있는 내게 남편이 물었다. 침대에 기대어 앉아 뜨개질을 하는 모습을 침대 위에서 남편이 보았나 보다. 티브이를 보려면 내가 보이겠지만 그전날 남편 꺼라며 목에 둘러보던 목도리의 색을 기억하고 있었나 싶어 조금 놀랬다. 남편은 내가 사 오는 셔츠나 니트를 보면서도 색을 인식하지 않았었다. 그야말로 챙겨 주는 대로, 놓은 대로 입고 나가는 남편이라서.


당신꺼지.

내껀 저거라며?


저거라며라고 말하는 남편의 손가락 끝이 향한 곳에는 처음으로 뜬 감색의 목도리가 둘둘 말려있었다. 진심이구나. 남편 꺼라면서 뜨긴 했어도 뜨개질이 거의 초보라 회사에 매고 나갈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니깐.

그런데 남편의 내거 라는 말에 웃음이 났다. 남편도 나이가 들어가는 게 맞나 보다.


서툰 솜씨로 목도리를 떠도 아들들이 엄마가 짠 목도리를 매고 다닐 거란 기대는 없었기에 만만한 남편 꺼라며 뜨고 있었다. 그런데 남편이 좋았는지 자기 것을 챙기는 것을 보니 이런  반응이면 좀 더 좋은 실로 짤걸 그랬나 싶었다. 연습용이라고 집 앞 문구에서 사 왔었는데 아무래도 뜨개방을 다녀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도 문구 한쪽 뜨개실 진열대 앞에서 초등학교 여학생들과 쭈구리고 앉아 실을 고를때면 들리는 이야기가 재밌었다. 친구에게 떠서 선물할꺼라며 실을 고르는 아이들 모습은 시간이 천천히 움직이는 것 같았다.  


어쩌다 수능 전날부터 뜨개질을 하기 시작했다. 열흘 정도 되었나 보다. 갑자기  왜 뜨개질을 하느냐고 묻는 둘째에게 이제 수험생 엄마라서 그렇다고 첫째가 말했다. 사실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고 요즘 들어 별스타가 너무 재밌어서  깜깜한 방에서도 핸드폰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그러다 보니 눈이 침침해져서 옮긴다고 해본 것이 뜨개질이었는데 공교롭게 아이들은 둘째의 입시 때문이라고 생각하게 된 것 같다.


뜨개질 색이 바뀌고 목도리가 한 개 두 개 쌓일 때마다 두 아이들이 눈치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첫째는 나의 과몰입을 걱정한다. 하나에 꽂히면 밤낮이 없어지는 엄마의 성격을 아는 아이라서. 그런데 강하게 아니라고 하지는 않았다. 왠지 뜨개질과 입시를 연결 짓는 아이들을 보면서 공부 열심히 하라는 말보다 뜨개질을 하는 것이 분위기를 만들지 않을까 하는 아주 일말의 기대감이 들긴 했다. 그리고 아이들이 모르는 사실이 있다. 뜨개질은 무상무념이 아니라 오히려 생각을 많이 한다는 것이다. 대신 가장 고요한 마음에서 있었던 시간을 돌아보게 된다.


과몰입이 시작된 것이 맞긴 하다. 하나에 꽂히는 것, 그것이 시작되었다. 손에 대바늘이 잡혔고 다양한 종류의 실타래들이 마치 핸드폰처럼 나의 손에서 움직인다. 엄지와 검지를 많이 사용하는 것도 같아서 가끔 손을 쥐었다 폈다도 해주어야 한다. 아직은 겉뜨기와 앞뜨기만 하는 메리아스 뜨기만 한다. 중학교 때쯤 한번 배웠을 뜨개질을 하려니 시작부터 마지막을 어찌해야는지 헤매었다.


바늘로 겨우겨우 코를 잡고 목도리를 뜬게 어느새 일곱개가 되었다. 세 번째부터는 속도가 붙었고 네 번째부터는 목도리 양끝에 고무 뜨기를 해서 단을 넣어주었다. 열흘 동안 일곱 개의 목도리를 떴으니 과몰입이 맞다. 아직 다른 패턴을 할 줄 몰라서 반복을 하고 있지만 틈만 나면 뜨개질을 했으니. 


뜨개질을 할때면 이야기를 나누었던 지인들의 말들과 표정이 떠올랐다. 어쩜 이렇게 슬로모션으로 들리게 장면이 떠오를까 싶을 만큼 선명하고 차분하게 나에게 전해졌다. 뜨개질을 하니 생각이 줄을 서는 것 같다. 이런 느낌이 나쁘지 않다. 뜨개질하는 시간은 내게 객관적인 기억을 가져오는 시간이다.


엄마는 노란색이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언제가 고등학생 둘째 아들이 했던 말이 생각이 나서 노란색실로 내 목도리를 뜨고 아들에게 보여주었다.


엄마한테 노란색이 잘 어울린다고 해서 엄마가 짜 봤는 데 어때 예뻐?


예쁘냐고 물었으니 정해진 답 같지만


엄마, 내가 말한 건 머스터드색인데..


아,  좀 노랗지? 하구 나니 좀 그렇지?


짜고 나니 더 노랗게 보여 목에 두루니 동동 뜨는 것 같았다. 얼른 둘렀다가 벗으려고 하는데 갑자기 둘째 아이가 말려있던 목도리 끝을 손으로 피면서 한번 더 묶어주면서 말했다.


이것도 괜찮아.


아고, 어린 둘째 아들이 어느새 커서 엄마 목도리를 매만져 주다니. 교복 넥타이를 매 주거나 옷매무새를 봐줄 때면 가만히 나에게 맡기던 아이처럼 나도 그렇게 서 있었다. 세월, 참 빠르다.


노란 목도리도 돌돌 말아 두었다. 남편 목도리나 내 노란 목도리는 눈이 펑펑 오는 날 매는 걸로. 눈이 펑펑 내릴 때는 목에 두른 노란 목도리도 그렇게 튀어 보이지 않겠지. 하얀 세상에서는 뭐든 자유롭게 어울리니깐. 빨간색에 끌려서 짠 일곱 번째 목도리도 12월에는 괜찮지 않을까. 목에 둘둘 말고 나가도 크리스마스가 있는 계절이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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