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의 허용

by 리시안


바람에 벚꽃 나비되어




저만치 하얀 눈꽃이 내리고

영원히 녹지 않는 눈꽃송이가

하얀 눈꽃의 도시를 만든다

연인들은 팔짱을 끼고

하얀 꽃길을 걸어간다


눈발 사이로

뛰어다니는 아이들 머리위에

떨어진 하얀 눈꽃잎은

바람에 벚꽃 나비 되어

훨훨 날아간다






마주하고 있으나 쏟아내지 않아도 되는 관계가 좋다. 숙제처럼 밀린 이야기를 쏟아내고 나면 지칠 때가 있다. 지치기만 하면 다행이지만 따라오는 찜찜함은 흘려보낸 말에 대한 의미를 곱씹어 보게 한다. 성격적으로 남신경에 자유롭지 못한 탓에 실수한 것은 없는지, 그 말을 왜 했을까라는 생각이 드는 순간 관계는 멀어진다. 그런 마음이 한두 마디 나누었을 때 알 수 있으면 좋으련만 속절없이 그런 감정은 오랫동안 지내 오다가 툭하고 튀어나온다.


생각해보면 시그널을 보냈을지 모른다. 그런데 나는 내가 주고받는 많은 이야기는 소통의 척도라고 생각했었다.

내가 어떤 생각과 어떠한 일이 있었다고 말하는 것이 가깝게 지내는 사람들에 대한 친함의 정도로 여겼던 것 같다. 그러나 나이가 들면서 드는 생각은 사람들은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싶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나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럴 것이다. 차 한잔을 두고 그냥 말없이 이야기를 듣고 오는 것이 점점 편해졌다.


나는 사람을 좋아하지만 누구에게나 쉽게 마음을 열지는 못하며 살았다. 내가 굉장히 살가운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만 아이들의 부모 모임을 하면서 쉽게 마음을 여는 사람이 아니란 걸 알았다. 오히려 테두리 안에서의 사람들과의 소통에 익숙한 사람이었다. 문제는 친해지면 침묵이 불편하다는 생각을 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나의 감정들은 고스란히 비추어진다. 그러나 돌이켜 생각해보면 쏟아내는 많은 일상의 말들이, 그리고 세세한 나의 감정들을 거를 수 있는 말 거름망이 있어야 했다.


가깝다고 생각해서 보였던 속마음이 때론 후회라는 마음으로 돌아올 때는 쓸쓸해지는 것이다. 가까운 이들에게 후회가 되면 어떻고 못할 말이 어딨겠나 싶었지만 모르면 좋을 텐데. 시간이 지나면서 사람의 관계의 그 깊이가 느껴질 때면 헛헛할 수밖에 없다. 제는 선택적으로 대화를 해야 하는 것일까. 왜 그랬을까, 내가 왜 그 말을 같이 나누었을까 라는 생각은 되도록이면 내 안에서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말의 간격, 말의 틈, 말의 사이에 의미를 두지 않았던 시간들. 그래도 마음을 다했으면 되었다고 생각한다. 사람 간의 관계에서 내가 진심이었던 순간들이라면 그걸로 되었다.


혼자만의 글이 아니게 되면서 글의 무게를 느낀다. 쓴 글을 읽어보면서 넣었다 뺐다 고민을 한다. 어느 날은 좋아 보였다가 어느 날은 왜 이렇게 썼을까 생각한다. 글도 말처럼 쏟내 듯 적어내다가 삭제 버튼을 계속 누른다. 얼마큼 쓰고 얼마큼 걸러야 하는지. 말 거름망처럼 글 거름망도 필요한 것일까. 글도 사람처럼 시선에서 자유로워야 하는 데 아직까지는 자유롭지 못하다. 나의 글들이 방향을 잡아가다 보면 조금씩 자유로와지지.


어깨에 바짝 힘주지 않아도 함께하는 시선이 자유로운, 침묵이 허용되는 시간을 생각한다. 언제부터인가 남편이 안방에 들어올 때면 노크를 한다. 물론 아이들 방에도 노크를 하고 들어간다. 문득 노크 같은 것일까 생각이 들었다. 사람 간의 대화의 시작도 노크처럼 천천히, 한 템포 쉬고, 상대가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살피는 시간, 그것이 침묵이 허용되는 시간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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