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을 마주하다

by 리시안


행복은 그곳에 있었다



돌아보면 숨어 버리고

불러도 대답이 없다면서도

너를 기다린다

햇살 좋은 하늘 밑

눈부신 길 사이로

네가 걸어올까 봐


어쩌면 곁에 있었고

한 번도 떠난 적 없을

너를 생각한다

사랑스러운 입맞춤

아이들의 웃음소리로

너는 그곳에 있었구나


여전히 삶의 언저리에서

서성이고 있어 줄

너를 만난다

프리지아 향기 가득한

키작은 나의 집

행복은 그곳에 있었다






안방에 컴퓨터 책상이 들어왔다. 작은 아이의 책상을 바꿔주면서 버리기도 아깝고 둘 곳도 마땅치 않아 안방 침대 옆에 자리를 잡았다. 재택근무를 하는 남편에게도 좋을 것 같았는데 생각보다 훨씬 괜찮아 보인다. 책상 하나가 방안의 분위를 바꾸어 놓았다. 침실의 기능만 하던 것에 서재의 기능이 더해졌다. 남편도 나름 좋은 기색이다. 좁아지겠다 싶었는데 오히려 넓어 보인다. 낮에는 남편이, 밤에는 주로 내가 앉는다. 내가 책상에 앉아 있을 때면 남편은 침대에 누워 패드로 영화를 본다. 보통은 잠만 자던 곳이었다. 책상 하나로 각자에게 시간들이 허용되었다.


나는 이 책상이 좋다. 다리가 철제인 것도 편하고, 밝은 메이플 색도 맘에 든다. 게다가 작은 아이가 조립한 게임 의자에 앉으면 세상 편안하다. 큰 맘먹고 샀던 식탁의자는 클래식하면서 고급스럽지만 사실 조심스럽다. 무겁기도 해서 식탁에 앉을 때도 살짝 들고빼야 하는 수고로움이 있다. 식사를 하다가도 음식물이 떨어지면 움찔하게 된다. 얼룩이 지지 않도록 얼른 닦아주어야 하는 부담이 있다. 베이지색 패브릭은 살 때는 이쁘지만 마음 놓고 앉아 있기는 편하지 않다. 가족들이 함께 식사를 할 때는 거실에 있는 좌탁에서 먹는다. 식탁만큼은 실용성에 무게를 두었어야 했다. 고급스러움을 선택했다면 그 고급스러움이 불편해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것에 비하면 인조가죽으로 된 버릴뻔한 이 의자는 여간 편안한 게 아니다. 양반다리를 하고 앉을 만큼 넓고 안락하다. 몸에 맞는 옷처럼 가구도 내게 편안함을 주는 것이 우선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심플한 책상에 앉아 글을 쓴다. 퀼트를 하기에도 널찍하니 편하다. 책을 읽기도 집중이 잘된다. 손바닥으로 만져지는 매끈한 나무 느낌 역시. 이렇게 좋은 걸 왜 진작 내 책상 하나 마련치 않고 살았을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살면서 남편에게 서재를 만들어주고 싶었다. 하지만 방 하나 서재로 낸다는 것이 쉽지 않았다. 아이들이 커가면서 각자의 방이 필요했기에 남편의 서재는 늘 다음번으로 미뤘었다. 그렇다고 남편과 서재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다. 시간이 좀 더 지나면 만들어 줄 수 있지 않을까. 얼떨결에 들어온 이 책상에 남편과 나는 충분히 만족해하고 있다.


책상에 앉아 며칠 동안 마음을 위한 필사를 마쳤다. 세 번을 쓰고 나니 볼펜이 일곱 자루가 들었다. 오랜만에 잉크가 떨어질 때까지 써 보았다. 키보드가 아닌 손글씨를 쓰면서 손가락이 아파 그만 쓸까도 싶었다. 그럴 때마다 조금만 더 쓰자 하다 보면 손이 아픈 것도 잠시 잊는다. 뿌듯함도 있다. 빼곡하게 채어진 노트를 보니 힘이 난다. 나와의 첫 약속이었다. 세 번째 손가락의 마디쯤에 굳은살이 볼록하게 잡히려고 한다. 엄지손가락으로 살살 문질러보면 감각도 다른 살 같다. 아이들의 손가락에도 굳은살이 잡혀있다. 오랫동안 쓰면서 공부하라고 아이들에게 쉽게 말했었다. 그런데 고작 며칠을 써 보고 나니 알겠다. 아이들도 손가락과 팔목이 아팠겠구나. 아들의 딱딱하게 굳은살을 그냥 말없이 만지작거렸다.




새해가 되면서 큰 바람을 갖지 않았다. 오히려 지난해처럼만 같아도 좋을 것 같았다. 물론 다사다난했고 힘든 일도 많았던 한 해였다. 그래도 이렇게 새해를 맞았고 나는 책상에 앉아 글을 쓰고 있으니 이만하면 좋은 것이다. 엄청나게 좋은 일보다 무탈한 한 해가 되기를 소망한다. 마음이 바닥을 치고 나면 올라가는 일만 남는다. 삶이란 것은 좋다고 좋은 것만도, 나쁘다고 나쁜 것만도 아닌 것 같다. 남편은 잊을만하면 가족들에게 일희일비를 하지 말자고 말한다. 자주 들어서 이제는 일희일비 금지가 가훈 같기도 하다. 평정심을 갖는다는 건 분명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바람이라면 올해 나는 그 평정심을 지니고 싶다. 꽂히면 하나만 보이는 성격이라며 놓치는 일들이 있었다. 하지만 무언가에 몰두한다고 해서 다른 것을 놓쳐도 되는 것은 아니었다. 많은 사람들은 동시에 무언가에 꽂히고 그 나머지에 최선을 다해낸다. 나에게도 멀티플레이어가 작동해야 한다. 그 오랜 시간을 멀티가 안 되는 사람이라며 나에게 지나치게 관대했다. 내 안에서 숨고 싶어 하는 나를 끄집어내야 했다. 그리고 마주해야 한다. 내가 하고 싶은 것들과 지켜내야 하는 것들을.





한때 퀼트를 시작하면 멈추기 어려웠다. 퀼트는 손가락 두 마디도 안 되는 작은 바늘을 사용한다. 처음에는 그 작은 바늘을 온전히 잡기가 쉽지 않다. 목이 아프고 손목이 아플 만큼 손바느질을 하다 보면 2.5센티 퀼팅 바늘에 여덟 땀이 잡혔다. 아주 작은 바늘에도 내 손이 익숙해지는 것이다. 그런 퀼트가 글쓰기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든다. 한 글자 한 글자가 모여 글이 되고 책이 되는 것처럼 퀼트도 조각조각들이 모여 작품이 된다. 퀼트에 쓰고 남은 천은 언제 어느 작품에 조각으로 들어갈지 모르기 때문에 버리는 천이 거의 없다. 소소하고 평범한 일상의 조각들이 모여서 글로써 바느질되고 있는 것이라 생각한다. 손바느질의 단단함과 글쓰기의 견고함은 닮았다. 집중과 몰입이 퀼트 작품이 되고 글이 되어간다.


한번 바느질해서 엮은 자리는 나는 웬만하면 다시 뜯어 내지 않는다. 뜯어 다시 해도 미세한 자국도 남을테고 그때그때의 실수들도 보고 있으면 퀼트스럽다. 집중을 해야 하는 이유다. 퀼트스럽다는 것은 사람들에게 저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질 것이다. 나에게 퀼트스러움은 누빔이 주는 소박함과 포근함이다. 묵직했던 천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부드러워지는 느낌이 좋다. 세탁할수록 조각들의 경계가 없어지고 하나로 느껴진다. 수백 개의 조각들로 별 모양을 만들고 하나씩 이어 붙이다 보면 별 퀼트 이불이 된다. 작은아이도 어릴 때 만들어 주었던 별 이불을 아직도 좋아한다. 퀼트는 손에 잡히는 누빔의 폭신함이 따뜻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나의 글도 마음 한켠 따뜻해지는 글이 되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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