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의 환기

by 리시안


바람이 분다


틀니가 사라진 어머니의 동굴에서

바람이 분다

어머니의 말들이 하나 둘 바람을 타고 나온다

서울 사람 어머니의 말들은

난생처음

갈 곳을 몰라 허공 위로 떠 다닌다

나는 실눈 같은 눈으로

동굴에서 나오는 어머니의 말들을 쫒는다

그 옛날 내가 아기였을 때

기가 막히게 알아들으셨을

어머니의 신통력을 소환하다가

내 마음에도

바람이 분다






사람의 감정이란 것이 한결같을 수 다면 얼마나 좋을까. 힘들기 때문에 시시각각 마주할 수 있는 감정의 변화엔 각자의 해소법이 있어야 한다. 그래서 사람은 누구나 마음의 감정을 다스리는 방식을 가지고 있다. 누군가는 책을 읽으면서 누군가는 노래를 들으면서, 그리고 누군가는 몸을 움직여 운동을 하거나 쇼핑을 한다. 그 어떤 방식으로든 스스로의 감정을 유지할 수 있다면 다행스러운 일이다. 평온한 상태를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수많은 내 안의 갈등을 만져줄 수 있는 무언가가 작동했다는 것이니깐.


수술 후 재활을 하고 계시는 엄마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는 재활이 마음처럼 드라마틱하게 되지 않음을 속상해하셨다. 병원 음식과 생활의 불편함을 토로하셔서 시간이 더 필요하시다고, 드시기 싫어도 꼭 식사를 하시라고 말씀드렸다. 엄마와 통화를 하는 동안 입원하신 지 얼마나 되셨다고 그러실까, 조금만 참아주시지. 편안한 마음으로 지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들었다. 순간 답답함이 밀려왔다. 이제 수술하신 지 한 달 조금 넘었다고 말씀드리면서 안심을 시켜드렸다.


다음 주면 좋아하시는 반찬을 해서 찾아뵐 텐데. 기운 없으신 엄마의 목소리에 그나마 잡고 있던 나의 기운도 더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며칠 동안 컨디션이 좋지 못했던 까닭도 있었지만 그 순간은 나도 웃으면서 엄마의 하소연을 받아줄 여력이 없었다.당황스러웠던 것은 엄마와의 통화를 끊고 마음이 울적해지려고 했다는 것이다. 또 감정을 분리를 못하고 엄마의 고민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나를 보았다. 그러면서 동시에 불편한 마음에 한없이 처질 것만 같았다. 안 되겠다 싶어 커피가 내려지기를 기다리면서 집안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선 몸을 계속 움직이면서 생각했다.

'병원은 시간이 더디게 가는 곳이니깐. 엄마의 답답함은 충분히 있을 수 있어. 엄마는 평소처럼 나한테 하소연을 하시고 싶으신 거야. 오늘 내 컨디션이 안 좋았기 때문에 이런 마음이 들 수 있어.'


내가 나를 이해시키고 있었다. 엄마는 그저 별로 좋지 않은 하루를 이야기하신 것뿐일지 모른다고 생각을 했다. 휘몰아치는 감정을 가라앉힐 수 있는 방법. 생각을 한다. 또 생각을 한다. 엄마의 입장에서.

상대의 입장에서 내가 이해가 되는 순간 화난 마음은 순식간에 수그러든.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생각이다.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생각의 환기. 그것은


그럴 수 있지.



라는 이해다. 왜 그럴까? 가 아니라 그럴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나의 화는 누그러진다. 그럴 수 있었다. 엄마는 병원생활이 답답하실 수도 있었고 반찬이 입에 맞지 않을 수도 있으시고 거동이 불편한 마음에 기분이 좋지 않은 것이 당연하시다. 낯선 병동에 가족들도 만나지 못하는 곳에서 느낄 수 있는 여러 가지 불편함은 느끼실 수 있으신 거였다. 다만 엄마는 언제나처럼 나에게 괜찮아질 거라는 용기의 말을 듣고 싶으셨을 것이다. 목이 잠긴 내 목소리를 들으시고 감기가 왔냐며 걱정하시는 엄마께 최소한 오늘은 아프지 않은 척했어야 할지 모른다. 어쨌든 우리는 병원 밖에 있고 엄마는 꼼짝 못 하시는 상황이니 그러실 수 있다. 엄마가 항상 밝은 목소리로 우리와 통화를 하기를 바란다는 것 또한 우리 마음 편하자고 바라는 욕심일 테니 말이다.


감정은 다스지기가 쉽지 않지만 도움을 받아서든 혼자의 방식으로든 매 순간 털어낼 수 있어야 한다. 상황을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되면 판단이 조금 쉬워진다.

이 계절이 더욱 마음을 움츠리게 하지만 스스로가 토닥일 수 있는 방어기제 하나쯤은 절실하게 느껴진다. 스스로 무너지지 않을 힘을 줄 수 있는 단단한 감정의 시선이 생겼으면 좋겠다. 다른 사람을 위해서든 나를 위해서든 어떤 상황에서든 그럴 수 있다는 이해로 마음을 다독여줘야 한다.


우리는 끝이 알 수 없는 길 위에서 때로는 방향을 상실하며 시행착오를 겪는다. 누구나 알면서도 때로는 선택할 수 없는 상황에 놓여 무조건 가야 하는 길이 생기고 그 안에서 지켜내고 이겨내야 하는 일들에 부딪힌다. 사람 간의 일에 감정이 치우쳐 밀려가다 보면 행동에 아쉬움이 남는다. 흔들리는 감정에서는 생각을 환기시켜야 한다. 조금의 틈도 없이 밀려가다 보면 나의 감정에 나 자신이 흔들리고 만다. 생각의 두 갈래의 길에서 어느 쪽이 맞는 길인지는 알지 못한다. 선택을 하고 가 본 후에야 그 길이 어떠했는지 알 수 있다. 마음이 울적해지는 순간도 알지 못하는 길을 마주하는 것처럼 어렵지만 우리는 선택을 해야 한다. 그대로 멈춰 있을지, 아니면 일어나서 털어내야 할지.


문제는 내 위주로 생각을 하는 순간 상대에 대한 여러 가지의 마음의 동요가 일어난다는 것이다. 내 입장에서만이 아닌 상대방의 입장, 또는 다른 상황을 볼 수 있는 자세도 필요하다. 생각을 할 때 역시 나를 객관화시키고 고민과 분리시켜 냉철하게 볼 수 있어야 한다. 이런 것이 쉬운 내가 아니라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생각을 하고 글로써 나를 토닥인다. 마음 쓰고 신경 쓰는 모든 생각에서, 한 발자국 떨어져서 바라 보고, 과할지도 몰랐을 감정의 몰입에서 벗어나야 한다. 생각의 환기, 생각들 사이의 간격이 필요하다. 그렇게 지내다 보면 복잡한 생각들이 말랑말랑하게 조금은 편안하게 다가오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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