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게 편지를 쓴다
나만 몰랐지
아지랑이 내 뒤에서 일렁이고 있는 것을
깜깜한 저녁이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새벽 여명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나만 몰랐지
암막커튼을 뚫고 쏟아내는 햇살로
기어이 나를 깨우는 눈부심이 너란 걸
준비가 아직 안됐는데
갑자기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네
짐을 꾸릴 시간도 없이 허둥지둥 나갈 준비를 해
왜 나만 몰랐을까
사람들이 너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나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추웠던 마음이 싫은 게지
웅크리던 어깨가 힘든 게지
앞뜰 벚나무가 어렵사리 순을 내고
꽃송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왜 나만 몰랐을까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그런데 어쩌지 그만 짐을 못 챙겼어
내가 가져가 줘야 하는 데
두고 가서 미안해
부탁해도 된다면
미쳐 챙기지 못한 나의 하루들
복사꽃 발그스레 볕 좋은 날
베란다에 툴툴 털어
햇살에 널어줘
내 눈치를 보며 남편이 하루도 안 빠지고 애용하는 물건이 있다. 빨래를 하려고 바지 주머니에 손을 넣었을 때 찔릴뻔했던 뾰족하고 기다란 남편의 필수용품. 이쑤시개다. 많지 않은 나이에 이쑤시개가 어울리지 않지만 작년 이맘때 치과치료를 하고 어쩌다 보니 이쑤시개는 필수품이 되었다. 어르신도 아니고 이쑤시개를 챙기는 것이 신경이 쓰였지만 치통은 앓아본 사람만 아는 고통이라 짠한 맘으로 여기고 있었다. 쓰지 말라고 말해도 주섬주섬 찾아서 쓰곤 했다,
작년 겨울, 여행이 자유로왔던 마지막 겨울 첫째 아들이 여행을 갔었다. 여름 내내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과 친구들과 유럽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이 끝날 무렵 프랑크푸르트 선물 가게라며 아빠의 선물을 샀다고 사진을 보내왔었다. 아빠에게 꼭 필요한 선물이라며 보내온 사진 속에는 세상에서 제일 귀여운 고슴도치 이쑤시개 통이 있었다.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 먼 곳에서 이쑤시개 통을 보고 아빠를 떠올리며 샀을 모습이 순간 감동스러웠다. 아들이 아빠의 선물을 사 오는 것이 당연한 것이겠지만 힘든 시간을 보낸 후 열심히 지내고 떠났던 여행이어서 마음 씀씀이가 고마웠다. 그런데 사진을 보자마자 웃음이 터졌다. 유럽에서 이쑤시개 통을 사 올 거란 생각도 못했고 남편에겐 너무 절묘한 선물이란 생각이 들어서다. 말은 안 해도 오며 가며 아빠가 이쑤시개를 사용한다는 것을 보고 기억하고 있었구나 싶어 고마웠던 것 같다.
사진을 남편에게 전송을 했었다. 회사에서 사진을 보면서 얼마나 뿌듯했을까 안 봐도 알겠다. 조용히 입꼬리가 올라가고 절친에게 슬쩍 자랑을 했을지 모른다. 칭찬에는 박 한 사람이지만 언젠가부터 나는 남편의 미세한 웃음도 눈에 들어온다. 첫째 아들 말이 엄마 선물이 제일 비싸다고 하지만 고슴도치 이쑤시개 통은 훨씬 큰 감동을 줬다. 내가 받은 것보다 아빠를 생각해준 아들이 기특했다. 실제로 보면 더 귀엽고 앙증맞다. 고슴도치가 살 집은 내가 챙겨주었다. 특성상 먼지가 들어가면 안 되기 때문에 투명 집이 필요했다. 이제 남편의 손이 닿는 가장 가까운 곳에 고슴도치가 있다. 남편은 맘 편하게 이쑤시개를 사용할 수 있게 되었다.
우리들은 여러 가지 사연들로 자신만의 최애품을 가지게 된다. 남편에겐 아들이 선물해준 이쑤시개 통이, 첫째 아들은 노트북일 테고 둘째 아들은 당연히 날아다니는 속도의 컴퓨터일 것이다. 나의 최애품은 뭘까. 어쩌나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나는 특별히 좋아하는 물건이라기보다 그해 손에 잡히거나 편하거나 그러면 그것만 애용한다. 그것이 아들이 안 입는 옷 일 때도 있고 내가 집에서 입어야지 싶어 산 옷일 때도 있다. 올해는 집 앞 마트에서 보냉 가방을 샀었는 데 마카롱 담아 다니기도 좋고 장보기도 좋아 마르고 닳도록 매고 다녔다. 지인은 이번 계절은 이거냐며 으례그려려니 하곤 한다. 집을 둘러봐도 고만고만하다. 분명 있었는데.. 생각을 했다. 다시 둘러본다 둘러보지 않으면 생각나지 않는 건 최애품이 아닐 수도 있을 것 같은데. 찾았다. 아니 생각이 났다. 서랍 안에 있는 저것. 최애품 맞다. 사용할 때마다 뿌듯하고 좋은 그것,
뜬금없지만 감자칼이다. 길게 생긴 것이 아니라 납작한 모양의 감자칼이다. 만원 이상을 주고 산 나름 고급 감자칼. 나는 감자칼로 감자를 깎을 때의 스피드감이 좋고 많은걸 감자칼을 사용한다. 사과나 배를 깎을 때의 편리함은 쓸 때마다 좋았다. 아주 오래전 시어머니께서 감자칼로 과일을 깎는 것을 보고 뭐라고 하신 적이 있었다. 그건 이해가 된다. 지극히 내가 편하지고 사용하는 것이니깐. 그래도 어머니께 한 소리 듣고 나서 대외적으로는 과일칼로 한 줄 깎기 신공을 하는 마음으로 얇고 길게 깎는다. 물론 내가 먹을 때는 감자칼을 쓴다. 어느 날은 참외도 깎고 감도 깎는다. 물론 감자칼로 잘 깎이지 않는 과일이 있는 데 말랑 복숭아다. 말랑 복숭아는 껍질을 살살 벗겨줘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도 웬만한 것은 감자칼이 편하다. 최애품 맞다. 잊어버리면 안 돼서 꼭 제자리에 두려고 하는 소중한 물건.
살아가면서 자신이 좋아하는 무언가가 있다는 것은 분명 즐거운 일이다. 그것이 일이어도 좋고 사물이어도 좋다. 예쁜 그릇을 모으고 거기에 맛있는 요리를 하는 내 친구의 부지런함이 좋아 보인다. 나에게는 이 시간이 그렇다. 그러고 보니 지금 치고 있는 남편이 사준 휴대용 키보드가 최애품에 등극하지 않을까. 접었을 때 손에 착 감기는 것이 볼수록 유용하고 편하다. 물론 남편의 선물이란 것이 덤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