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슬픔을 등에 업고 가는 사람

by 리시안


벗에게



꿈을 꾸었다 낯선 도시 나는 길을 잃었고

꿈을 꾸었다 나를 모르는 사람들 나는 외로웠다

모두 사라진 깜깜한 하늘

제발 누군가가 나를 불러주기를 기도했다

적막을 깨는 벨소리

꿈에서 깨었다 눈을 뜬다

너였구나

어두운 거리에서 내 이름 불러준 사람

벗이었구나

네가 있는 이곳에서 나는 길을 잃지 않아 좋다

네가 있는 이곳에서 나는 외롭지 않아 좋다

네가 나의 벗이어서 좋다






첫째 아이의 시험이다. 간식이라도 챙긴다는 것이 어쩌다가 거실 소파에서 잠이 들었다. 일찍 시작한 시험공부였지만 어제 아이는 살짝 흔들리는 자신과 싸우는 것 같았다. 실습을 하고 공부했던 것들이 기억이 잘 나지 않았나 보다. 스스로 멘탈을 잡고 공부하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알지만 아직은 아들의 걱정스러움이 전해져 온다. 차라리 한 시간 자고 일어나겠다고 했는데 꼬박 밤을 새운 것 같다. 감정을 끊고 잠시 잠을 자는 것이 아이가 요즘 할 수 있는 마음을 잡는 방법이다.


새벽 5시. 어디선가 웃음소리가 들려 잠이 깼다. 아들방의 열린 문틈으로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첫째 아이의 대학 친구들이다. 아들의 절친들. 아이들은 지금 스피커폰을 켜고 대화를 한다. 대화지만 시험공부다. 아이들도 밤을 새웠나 보다.

ㅇㅇ야 ㅇㅇ가 뭐지?ㅇㅇ말해봐.

친구가 질문을 하면 아들이 대답을 한다. 무얼 물어봤는지는 모두 영어로 된 어려운 전공 용어라서 알지 못한다. 아들을 너무 잘 아는 친구들. 누군가의 기분이 저조할 때 함께 할 줄 아는 예쁜 아이들이다. 아이들은 서로에게 공부하라는 잔소리도 하고 미처 못한 친구를 위해 정리노트도 공유한다.


누가 시험을 잘 보고 못 보고가 중요하지 않다. 이렇게 고맙고 좋은 아들의 친구들이 끝까지 서로를 격려하며 이겨내기를 진심으로 바랄 뿐이다. 아이들은 거의 1.5배속으로 암기한 것을 물어보고 대답한다. 오늘 시험을 보는 것도 천 페이지의 분량이라고 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보던 시험이 코로나 때문에 몰아서 보면서 양이 많아졌다. 한 달 전에 공부를 시작했어도 시험 전날 복습하기가 힘든 분량이다. 그래서 지필시험은 얼마나 오래 기억하느냐인데 쉽지가 않다.


또 다른 시험은 한 문제당 제한시간이 있는 시험이라 하루 종일 중얼중얼 암기를 한다. 몇 초 안에 눈앞의 문제가 무엇인지 쓰고 종이 치면 이동한다고 한다. 첫 시험공부를 할 때 아이는 실제 상황처럼 스톱워치를 켜고 일어서서 외워 적었다. 하지만 필기시험은 미리 해도 잊기 쉽고 벼락치기로도 할 수 없는 양이다. 밤샘이 많아서 컨디션을 유지하고 각자의 속도를 유지하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 잠은 쪼개서 자더라도 잘 먹어야 한다. 체력 싸움이다. 이제 내가 도와줄 수 있는 건 집에 있을 때 식사와 달달한 커피와 간식 정도다. 정신력과 체력을 다잡고 가기가 쉽지 않지만 스스로 강해지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서로를 이끌 줄 아는 착한 친구들이 아들 옆에 있어 너무 고맙다. 이제는 부모인 우리보다 친구가 힘이 되는 나이란 걸 안다. 사람 좋아하는 아들에게 친구들은 큰 위안이 된다. 화상수업 중 아들이 웃음을 참을 때 나오는 얼굴 근육의 미세한 변화까지 알아차리고 놀리지만 그 세세한 관심이 우정이란 것을 아이와 나는 안다. 나는 아들의 친구들을 공포의 외인구단 같은 아이들이라는 표현을 쓴다. 재수를 한 친구들도 있고 다른 대학을 다니다 들어온 친구들도 있다. 여러 가지 이유로 나이들이 다양하지만 힘들었던 시간을 보냈던 아이들이라 서로를 더 잘 이해해주는 것 같다. 첫째 아이도 모든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감사한 일이란 것을 마음속 깊이 새기며 살았으면 좋겠다.


인디언의 말로 친구란 '내 슬픔을 등에 업고 가는 자'라는 뜻이라고 한다. 한때는 슬픔을 함께하는 것보다 기쁨을 함께하는 것이 쉽지 않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러나 요즘 아들의 친구들을 보며 슬픔을 함께하는 것이 얼마나 큰 힘이 되는지를 알아가고 있다. 서로를 위로하고 함께할 줄 아는 아들의 대학 동기들이, 그리고 아들의 오랜 친구들이 엄마인 나는 너무 고맙다. 친구가 된다는 것은 당연한 것이 아니고 서로에게 고마운 일이다. 배려의 마음과 이해가 바탕이 된 애정이 있어야 비로소 친구가 된다. 애정 어린 우정이 친구라는 이름으로 행복하게 한다는 걸, 아이들이 알아가는 것 같다. 지방 친구들도 많아서 요즘 같은 시기만 아니라면 모두 불러다가 따뜻한 집밥 한 끼라도 해먹이고 싶다.



어렸을 때 나는 유안진 님의 '지란지교를 꿈꾸며'를 좋아했었다.

저녁을 먹고 나면 허물없이 찾아가
차 한 잔을 마시고 싶다고 말할 수 있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
....
비 오는 오후나 눈 내리는 밤에 고무신을 끌고 찾아가도 좋을 친구, 밤늦도록 공허한 마음도 마음 놓고 보일 수 있고, 악의 없이 남의 얘기를 주고받고 나서도 말이 날까 걱정되지 않는 친구가...
...
그는 여성이어도 좋고 남성이어도 좋다. 나보다 나이가 많아도 좋고 동갑이거나 적어도 좋다.
...
때로 약간의 변덕과 신경질을 부려도 그것이 애교로 통할 수 있을 정도면 괜찮고, 나의 변덕과 괜한 흥분에도 적절히 맞장구를 쳐주고 나서, 얼마의 시간이 흘러 내가 평온해지거든 부드럽고 세련된 표현으로 충고를 아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지란지교를 꿈꾸며 중에서


내게는 허물없이 찾아갈 수 있는 친구도 있고, 속상한 마음을 가감 없이 말할 수 있는 친구도 있다. 맞장구를 쳐주고 난 후 내 마음을 헤아려 지혜를 풀어내 주는 친구가 있고, 언제나 내 건강을 먼저 생각하는 친구가 있다. 그리고 맛있는 곳을 찾았을 때 나를 떠올리는 친구, 내 목소리톤만으로 나를 걱정하는 친구가 있으니 괜찮은 삶이다. 지친 하루가 버거울 때 어제 보았던 것처럼 스스럼없이 서로를 바라봐주는 우리가 길 바란다.

친구와 게임하면서 웃는 둘째 아이의 목소리가 들릴 때, 회사 절친들이 집 앞에 왔다고 나가는 남편의 즐거운 뒷모습을 보면서 생각을 한다. 친구란 참 좋구나. 스산한 겨울, 마음 한편에 따뜻한 바람 되어주는 나의 친구들은 잘 있겠지. 오늘도 모두가 평온한 하루가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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