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몰랐지
아지랑이 내 뒤에서 일렁이고 있는 것을
깜깜한 저녁이 짧아지고 있다는 것을
새벽 여명이 성큼성큼 다가오고 있다는 것을
나만 몰랐지
암막커튼을 뚫고 쏟아내는 햇살로
기어이 나를 깨우는 눈부심이 너란 걸
준비가 아직 안됐는데
갑자기 문 앞에서 초인종을 누르네
짐을 꾸릴 시간도 없이 허둥지둥 나갈 준비를 해
왜 나만 몰랐을까
사람들이 너를 만날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사람들이 나를 보낼 준비를 하고 있다는 걸
추웠던 마음이 싫은 게지
웅크리던 어깨가 힘든 게지
앞뜰 벚나무가 어렵사리 순을 내고
꽃송이를 기다리고 있다는 걸
왜 나만 몰랐을까
기다려주지 않는다는 걸
그런데 어쩌지 그만 짐을 못 챙겼어
내가 가져가 줘야 하는 데
두고 가서 미안해
부탁해도 된다면
미쳐 챙기지 못한 나의 하루들
복사꽃 발그스레 볕 좋은 날
베란다에 툴툴 털어
햇살에 널어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