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드기번- 로마제국쇠망사 중에서
살다 보면 어쩌다 인정을 받을 때가 있다.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했을 뿐인데 자연스레 주변의 인정을 받게 되고 그 이상의 것이 오는 순간이 있다. 그 정도에서 머무르면 딱 좋겠는데 사람들이 이제 등을 떠밀기 시작한다. 더 높은 자리로 가 보라고. 그럴 확신도 없고 그럴 용기도 아직은 없는데 사람들은 이미 나에게 열광하기도 한다. 이 사람들은 대체 나의 무엇을 보고 이리 확신에 가까운 추대를 할까 되묻고 싶어진다.
로마제국쇠망사 2권의 22장에서 갈리아 군단에 의해 황제로 추대된 율리아누스를 떠올려 본다. 사람들의 인정을 넘어 콘스탄티노플의 황제에겐 곧 반역에 가까운 추대를 받은 율리아누스는 이 순간 어떤 선택을 했을까?
서로마 갈리아 지방의 부황제 율리아누스에 대한 찬사는 동로마제국의 황제 콘스탄티우스도 질투와 걱정을 할 정도였다. 야만족들은 여전히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고 속주민들은 그의 통치를 감사해했다. 콘스탄티노플의 대신들은 그의 장점을 깎아내리고자 애썼지만 마음 속 깊이 율리아누스의 덕성에 대한 은밀한 질투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파리에 머무르고 있던 율리아누스의 군대는 당장 콘스탄티노플로 소환하여 무장해제하고 황제에게 절대복종하라는 엄명을 받는다. 율리아누스는 순응할 수도, 명예롭게 유지할 수도 없는 부황제의 자리를 내놓으려고 했다. 하지만 수도로 회귀할 수 없었던 갈리아 군대는 그를 '율리아누스 황제 만세!'라고 부르며 서로마제국의 황제라는 새로운 국면으로 상황을 변화시켜 버린다.
이 외침에 놀란 부황제는 병사들이 밀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대문도 닫고 있는 힘을 다했지만 결국 군대에 의해 황제로 추대되게 된다. 이는 곧 콘스탄티우스 황제에 대한 반역이기도 했다. 율리아누스는 그들의 탄원과 질책, 협박에도 꿋꿋이 버티었으나 살아남고 싶다면 왕좌에 오르는 데 동의하는 길밖에 없다는 거듭된 주장에 결국 굽히고 만다.
일단 그들의 추대를 받아들인 율리아누스는 일단 며칠간 진심인지 가장인지 알 수 없는 슬픔에 휩싸여 자신의 거처 깊숙이 숨어버린다. 그리고 즉위 전날까지도 병사들의 계획에 대해서는 자신은 정말 아무것도 아는 것이 없었음을 여러 신들 앞에 맹세한다.
새로운 황제가 되었지만 내전도 원하지 않았고 황제 자리를 넘본다는 비난도 받길 원치 않았던 율리아누스가 한 첫 번째 행동은 진심이 담긴 서신을 콘스탄티노플로 보내는 일이었다. 겸손하게 자신을 낮추며 분노한 군대의 강권에 밀려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자신의 처지를 정당화했다. 그리고 단호한 태도로 이인자를 뜻하는 아우구스투스의 칭호를 인정해 달라고 청했다. 그러면 군대도 매년 모아 보낼 것이며 민정 총독을 보내준다면 받아들이겠다고 했다. 반역의 의지가 없음을 분명히 하고 황제의 너그러움을 추앙하는 서신이었다.
하지만 율리아누스의 고심에 찬 편지는 소용이 없었고 평화 조약은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결국 갈리아 군대는 콘스탄티노플을 향해 진군할 수밖에 없었다. 이에 율리아누스는 군대를 향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우리 군대는 적에게는 공포의 대상이고 동포 시민들에게는 온건하며 상관에게는 충성스럽다는 평판에 값해야 합니다."
진군하는 길에 어떠한 모습을 보여야 하는지를 자부심 강한 연설에 녹여내었다. 병사들에게서 우렁찬 박수가 터졌다. 그 환호는 자신들의 선택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신하는 환호이기도 했을 것이다. 진군하는 길에 여러 군단은 그에게 항복을 해 왔다. 트라키아를 세 방면으로 공격할 계획을 세워놓았던 율리아누스는 콘스탄티우스가 열병으로 자연사했다는 행운의 소식을 듣게 된다.
콘스탄티노플의 수많은 인파가 그의 개선 행렬을 보기 위해 나와 있었다. 유럽 전 대륙을 건너온 영웅치고 소박한 그의 모습에 사람들은 실망하기도 했다. 32세에 황제에 오른 율리아누스는 무거운 왕관의 무게를 철학으로 이겨내며 소박한 음식과 의복을 즐기는 황제로 남게 된다.
역경을 맞을 때는 굳은 의지로 견디어 내고 성공을 누릴 때는 중용의 태도를 견지한 율리아누스에게서 나아가기 싫은 자리에 추천을 받을 때 우리는 어떻게 하면 좋을지에 대한 답을 배워본다.
일단은 최대한 그러한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는 것이다. 몇 번 이상의 거절도 괜찮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원한다는 것이 확실하다면 그때는 확실히 행해야 한다.
다음으론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있다면 최대한 진심을 다해 이 상황에 대해 설명해야 한다. 이해 당사자의 마음이나 양해를 얻지 못한다 해도 나의 의도는 그게 아님을 분명히 해야 한다.
일단 받아들였다면 자신의 추대한 사람들에게 명분과 자격을 높여주어야 한다. 나를 추대한 사람들은 나와 같은 품격을 지닌 사람임을 강조해야 한다. 그리고 행운까지 따라준다면 그들의 추대가 옳았음을 인정해도 좋다.
로마제국 쇠락기에 마지막 성군이었던 율리아누스는 사람들의 추대와 인정이 틀리지 않았음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대중이 늘 옳다는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추대에 들떠 먼저 나서지 않고 적어도 내가 그런 자리에? 왜?라고 자문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우리는 그를 한 번 더 힘껏 밀어볼 만하지 않을까? 혹시 내가 그런 인물이라면 이제 그 결심을 굳혀 보시는 건 어떠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