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어디까지 안 믿어야 할까요

호메로스- 오뒷세이아 중에서

사람을 잘 믿는다면, 혹은 믿고 있는 그 사람을 여전히 믿어도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면 여기 오뒷세이아에 나오는 오뒷세우스를 한번 만나 볼 필요가 있다.


참을성 많은 오뒷세우스는 사람을 가장 믿지 않았던 인물 중 한 명일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10년 트로이 전쟁에서 수없이 목숨을 잃을 뻔하기도 했고 전쟁에서 이긴 후 고향 이타케로 돌아오는 귀향길 또한 만만치가 않았다. 수많은 모험과 고통으로 10년 이상을 다시 떠돌았으니 믿을 거라곤 자신밖에 없다고 여겼을 수 있다. 흔히 오뒷세우스를 칭하는 이름 앞에 참을성 많은, 지혜로운 이라는 수식어가 등장한다. 사람을 쉽게 믿지 않는 일은 지혜롭거나 참을성이 많아야 가능한 일이기에 그럴지도 모른다.


- 나그네여! 그대보다 못한 사람이 온다 해도 나그네를 업신여기는 것은 도리가 아니지요. 모든 나그네와 걸인은 제우스에게서 온다니까요. 우리 같은 사람들의 보시는 적지만 소중한 것이오. 신들께서 그분의 귀향을 막아버리신 것이 틀림없어요. 그분께서는 나를 알뜰하게 보살펴주시며 재산도 주셨소.


오뒷세우스가 고향에 도착해 가장 먼저 찾아간 곳은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였다. 에우마이오스는 고생에 찌든 노인의 모습을 하고 있는 오뒷세우스를 알아보지 못한 채 환대를 한다.


- 이 모든 일들이 내가 말하는 대로 이루어질 것인즉, 올해 안에 오뒷세우스가 이곳에 돌아올 것이오. 이 달이 이울고 새 달이 차기 시작하면 그분은 집에 돌아와 이곳에서 그분의 아내와 영광스런 아들을 업신여긴 모든 자들에게 복수할 것이오.


충실한 돼지치기 에우마이오스의 충심에 오뒷세우스의 첫 번째 의심은 사라졌다. 뒤이어 오뒷세우스는 눈에 달콤한 빛인 아들 텔레마코스를 만난다. 하지만 아들조차 처음에는 믿지 않았다. 참을성 많은 오뒷세우스는 아버지를 찾아 여러 곳을 헤매고 다닌 텔레마코스의 이야기를 듣고 그를 돌아보며 말했다.


- 나는 신이 아니다. 왜 너는 나를 불사신으로 여기느냐? 나는 네가 그를 위해 신음하고 많은 고통을 당하고 남자들의 행패를 감수했던 네 아버지니라!

이렇게 말하고 그가 다시 앉자 텔레마코스는 훌륭하신 아버지의 목을 끌어안고 슬피 울었다. 그러자 두 사람 모두에게 비탄하고 싶은 욕망이 일었다. 그래서 그들은 새들보다도, 이를테면 아직 깃털도 나기 전에 농부들이 그 새끼들을 보금자리에서 채 간 바다독수리들이나 발톱이 굽은 독수리들보다도 더 하염없이 울었다.


- 어느 누구도 오뒷세우스가 집에 와 있다는 말을 들어서는 안 된다. 나의 아버지인 라에르테스도, 돼지치기도, 하인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아니, 페넬로페 자신도 그것을 알아서는 안 된다. 오직 너와 나, 우리 둘만이 여인들의 의도를 알아내도록 하자꾸나. 우리는 또 그들 중 누가 우리 두 사람을 마음속으로 존중하고 두려워하는지, 누가 우리를 무시하고 너같이 고귀한 자를 업신여기는지 하인들도 시험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오뒷세우스와 텔레마코스는 걸인처럼 꾸민 채 자신의 성으로 향한다. 염소치기를 비롯해 수많은 하인들과 하녀들은 오뒷세우스의 의심대로 이미 주인을 업신여기고 있었다. 오뒷세우스의 오래된 개 아르고스는 주인을 알아보고 꼬리치며 두 귀를 내리더니 오뒷세우스의 품속에서 숨을 거두었다. 마치 주인이 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했다는 듯이.


생김새와 신장에서 그리고 안으로는 마음의 지혜에서 모든 여인을 능가하는 오뒷세우스의 아내 페넬로페에게 구혼하기 위해 와 있는 구혼자들은 모두 108명이었다. 이들은 오뒷세우스의 성에서 먹고 마시며 재산을 탕진하고 있던 터였다. 페넬로페가 말했다.

- 자, 사려 깊은 에우뤼클레이아여! 그대는 일어서서 그대의 주인과 동갑이신 이분의 발을 씻겨드리도록 해요. 어쩌면 오뒷세우스도 지금쯤은 손발이 이러하시겠지. 고생을 하게 되면 사람은 금세 늙어버리니까.

오뒷세우스를 젖 먹여 기른 유모는 그의 다리를 잡고 두 손으로 씻어 내리다가 바로 이 흉터를 감촉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노파가 갑자기 그의 발을 놓아버리자 그의 장딴지가 대야에 떨어지며 청동 그릇이 요란한 소리와 함께 한쪽으로 기울며 물이 바닥에 엎질러졌다. 그녀는 오뒷세우스의 턱을 잡으며 그에게 말했다.

- 그대가 바로 내 아들 오뒷세우스로군요! 다 만져보기 전에는 나는 주인인 그대를 알아보지 못했어요.


자신을 길러준, 그래서 세족하며 단박에 흉터를 알아본 유모는 페넬로페에게 알리고자 했으나 오뒷세우스는 또 이를 막는다. 남편을 기다리며 아들을 홀로 키우며 수실을 엮었다 풀었다를 반복하며 20년을 기다린 페넬로페 이건만 그에게는 아직도 믿지 못할 무언가가 있었던 것이다. 더 놀라운 것은 페넬로페 또한 오뒷세우스라 칭하는 자를 선뜻 믿지 못하고 오히려 마지막 시험을 했다.


- 그이가 손수 지으신 우리의 훌륭한 신방 밖으로 튼튼한 침상을 내다놓으시오. 그대들은 튼튼한 침상을 내다 놓고 그 위에다 모피와 외투와 번쩍이는 담요 같은 침구들을 펴드리세요.

페넬로페가 하인들에게 명하자 오뒷세우스가 말한다.

- 그러나 살아 있는 인간들 중에는 아무리 젊고 힘이 세다 해도 그 침상을 쉽게 들어 올릴 사람은 없을 것이오. 정교하게 만든 그 침상에는 한 가지 큰 특징이 있고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내가 그것을 애써 만들었으니 하는 말이오.

그래서 그녀는 울면서 오뒷세우스에게 곧장 달려가 두 팔로 그의 목을 끌어안고는 머리에 입 맞추며 말했다.

마지막으로 오뒷세우스는 자신의 아버지, 라에테에스조차 믿지 않으며 이러저러한 말들로 그를 시험한다. 하지만 두 손으로 시커먼 먼지를 움켜쥐더니 크게 신음하며 자신의 백발 위에 그것을 쏟아붓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더 이상 아버지를 의심하지 않고 아들이 살아 돌아왔음을 고하게 된다.



이러한 오뒷세우스의 모습을 지혜롭다고 해야 할지, 참을성 많다고 해야 할지는 의문이 든다. 20년 후에 나타나 모든 주변 사람이 20년 전과 같은 충성과 신의를 보이리라 기대한다는 것부터가 잘못된 건 아닐까?


한편으로 이렇게 지혜로운 오뒷세우스가 현재에 온다면 이 수많은 사기와 범죄에 당하지 않고 잘 살아나갈 수 있을지 궁금하기도 하다. 한 가지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세상, 나름 눈 똑바로 뜨고 귀 쫑긋 세우며 지혜롭게 하루를 살아내고자 애썼다면 나도 나만의 오뒷세이아를 살아낸 것일 수도 있으리라.


그래서

사람을 믿어, 말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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