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도르 도스토옙스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중에서
이 제목은 도스토옙스키가 1부 2장에서 사용한 소제목 중 하나이다. 유난히 이 제목 와닿았던 건 저 한마디가 바로 아버지 표도르를 표현하는 완벽한 문장이라고 느꼈기 때문이다. 전쟁과 평화에서 톨스토이는 이 세상을 구원할 수 있는 건 결국 사랑이라고 도닥였던 것과 달리 도스토옙스키는 대놓고 막 나가는 인간의 모습을 거리낌 없이 보여준다. 그것도 가족이라고 엮인 사람들을 통해. 그래서 단숨에 읽히는 재미 또한 맛깔나다. 넷플릭스 볼 거 있나? 도스토옙스키 소설 읽으면 되는데.
아버지인 표도르도 자신이 얼마나 답이 없는지 알고는 있다. 첫째 아들을 돌보지 않았고 맨몸으로 내쫓기까지 했으며 두 번째 부인과의 사이에서 난 둘째와 셋째 또한 제대로 양육하지 않았으며 세상 사람들이 다 아는, 본인만 인정하지 않는 넷째 아들을 하인으로 두고 있었다. 그는 정말 아버지로서 어떤 의무도 다하지 않은 일평생을 살아왔다. 그래 놓고도 노년의 행운과 사후의 영생을 바라고 있었다.
- 누가 언제든 나를 위해 기도해 줄 것인가? 나는 정말 파렴치한 놈이거든.
그런 아버지를 향해 적의를 스스럼없이 드러내고 있는 첫째 아들, 드미트리 표도르비치는 이렇게 외친다.
- 저런 인간은 왜 살까?
- 아니, 말씀해 주십시오. 아직도 저 사람이 대지를 더럽히게 내버려 둘 수 있단 말입니까?
이미 거의 미칠 듯이 화가 나서 밑도 끝도 없이 으르렁거렸다. 그런 드미트리 앞에 조시마 장로는 머리를 숙였다.
- 장로는 무릎을 꿇더니 드미트리 표도로비치의 발을 향해, 심지어 이마가 땅에 닿을 정도로 완전히, 또렷하고도 의식적으로 절을 한 것이었다.
- 내 생각으로 장로는 정말 형안이 있어. 범죄의 냄새를 맡았거든.
- 너도 카라마조프야. 그것도 완전히 카라마조프지.
- 이럴 때면 내 영혼이 목구멍에서 파르르 떠는 것만 같아.
- 알료사는 같이 살면서 모든 걸 다 보고서도 아무것도 비난하지 않음으로써 그의 폐부를 찔렀던 것이다.
- 이 모든 것이 늙은 바람둥이이자 독신이나 다름없는 자로서 지금까지 오로지 추악한 것만을 좋아해 온 그에게는 전혀 예기치 못한, 완전히 놀라운 선물이었다.
- 그러니까 그 양반에게 마지막으로 아버지 노릇을 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거다.
- 분명히 이런 관조자들 중 하나가 바로 스메르쟈코프이고 또 분명히 그 역시 거의 목적도 아직 모르면서 자신의 인상들을 탐욕스럽게 축척하고 있는 것이리라.
- 생각들을 축척하겠지요.
- 정말로 어떤 사람이 나머지 사람들을 보면서 누구누구는 살 가치가 있고 누구누구는 그럴 가치가 더 없다고 결정할 권리가 있는 걸까?
폭풍의 소용돌이 같은 가족의 이야기 속에서도 마음의 고요를 주는 부분이 있다. 그것은 바로 셋째 아들 알료샤의 정신적 스승인 조시마 장로이다.
- 얼굴은 극도의 피로에 절어 있긴 했지만 그래도 맑고 거의 기쁨에 차 있었으며 시선은 즐겁고 상냥하고 호의적이었다.
- 우리 모두 지상의 모든 사람들과 모든 것들에 대해 틀림없이 유죄이며 그것도 보편적이고 세계적인 차원의 죄에서뿐만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사람들, 각각의 사람에 대해 개별적으로도 유죄이기 때문입니다.
- 우리가 볼 것이 어디 이뿐이겠습니까? 이보다 더한 것을, 훨씬 더한 것을 보게 되겠지요.
- 나는 어제 그가 겪게 될 미래의 위대한 고통 앞에 절을 한 것이란다.
- 살다 보면 불행한 일을 많이 겪겠지만 그것으로 인해 너는 또 행복해지기도 할 것이니, 삶을 축복하고 다른 사람들도 그렇게 자신을 삶을 축복할 수 있도록 해 주어라.
- 삶은 천국이고 우리는 모두 천국에 있는 것인데 우리가 이걸 알려고 하지 않을 뿐이에요.
- 소중한 여러분, 내가 여러분에게 무엇을 했다고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 겁니까?
- 이는 무릇, 사람에겐 부모님의 집에서 보낸 아주 어린 시절보다 더 귀중한 추억은 없기 때문이요, 또 가정에 손톱만큼의 사랑과 화합이라도 있었다면 거의 언제나 그런 법이니까요.
- 젊음의 끓는 피 대신에 온순하고 해맑은 늙음이 찾아오지요.
조시마 장로의 마지막 모습은 내가 바라는 인간의 마지막 모습이기도 하다.
- 추악함 속에 허덕이는 것이 더 감미로운 법이거든. 다들 욕을 하면서도 그 속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다만 몰래 그 짓을 하지만 난 탁 터놓고 한다는 말이지.
- 용서는 나중에 하도록 하죠. 지금은 손을 내밀어 줄 필요도 없습니다.
- 그러는 와중에 은근히 그 사람, 그 불행한 사람을 경멸하고 있는 건 아닐지. 마치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는 양 지금 그렇게 그의 영혼을 해부하고 있으니 말이죠.
- 내 생각에는 서로 가까워지는 데는 이별을 앞에 둔 시점이 제일 좋은 것 같아.
가족 모두가 사랑했던 유일한 사람, 셋째 아들 알료샤를 통해 도스토옙스키는 사실 이런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 나는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무엇보다도 삶을 사랑해야 한다고 생각해.
알료샤의 형을 향한 가슴 아픈 절규는 가족이 가족으로 인해 상처받았을 때 얼마나 힘겨운 지을 알기에 나온 절규였다.
- 도대체 어떻게 살아갈 거야. 어떻게 이런 것들을 사랑할 거야? 가슴과 머릿속에 그런 지옥을 간직한 채 그게 가능하긴 한 거야?
- 나는, 동생아, 떠나면서, 전 세계를 통틀어 나한테는 그래도 네가 있다고 생각했어.
둘째 아들 이반은 가족의 소용돌이를 보면서도 혼자 모스크바로 떠날 결심을 한다.
- 철도까지는 80베르스타인데 모스크바행 기차는 역에서 저녁 7시에 떠나니까 기차 시간에 맞추기도 벅차요.
- 그들을 위한 시간은 또 있을 테니까.
- 지난 일은 전부 다 안녕이다. 지난 세계는 영원토록 작별이다. 그 세계로부터 어떤 소식도, 어떤 응답도 없길. 옆도 뒤도 안 돌아보고 새로운 세계, 새로운 장소로 가는 거다!
정말 그들을 위한 시간은 또 있을까? 다른 곳을 향해 갈 때는 이쪽 세계를 돌아보지 않는다. 다시 이쪽으로 오면 그쪽 세계가 또 그리워질 테니까.
- 평생 동안 기껏해야 무슨 양파 한 뿌리를 주었을 뿐이고 이게 내가 한 착한 일의 전부 다 하고. 그러니 나를 칭찬하지도 말고, 알료사, 나를 착한 여자라고 생각하지도 말아 줘.
- 지난 오 년간의 내 눈물을 무서울 정도로 사랑해 버린 거야. 어쩌면 내가 사랑한 건 오직 나의 모욕일 뿐. 그 사람은 전혀 사랑하지 않았는지도 몰라.
- 질투심이 많은 자는 일말의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으면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온갖 치욕과 도덕적 타락을 일삼는 법이다.
- 그가 온 마음으로 전율하며 이해한 것은 오직, 그녀가 자기에게 상냥하게 대해 주고 자기를 용서하여 그 곁에 앉혔다는 것뿐이었다.
- 그의 성격의 크나큰 비극은 그가 실제로 자신이 가진 장점들 이상으로, 스스로를 좀 더 높게 생각하고 데 있는 셈이었다.
- 이건 숫제 겁쟁이도 뭣도 아니고 이건 세상의 겁이란 겁을 죄다 한데 긁어다 모아 놓은 겁 덩어리, 두 발 달린 겁 덩어리에 불과합니다.
- 치욕은 이 1500 자체가 아니라 내가 이 1500을 그 3000에서 따로 떼 놓았다는 데 있는 겁니다.
- 솔직히 말해서, 드미트리 표도르비치, 나는 당신을 늘, 말하자면 죄인이라기보다는 차라리 불행한 사람으로 간주하는 편이었고 당신이 그 근본에 있어 고결한 젊은이라는 것을 누구나 인정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 정녕 사람들이란 이것밖에 안 된단 말인가, 이러고도 과연 진정한 사람이 존재할 수 있겠는가!
- 당신도 나이가 좀 더 들면 신념에 있어 나이가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직접 알게 될 것입니다. 내 생각에도, 당신이 자기 것이 아닌 말을 하는 것같이 여겨졌거든요.
- 어쩌면 나는 유죄일지도 모른다.
- 이토록 음울한 사건들이 우리에게 거이 더 이상 공포스러운 것이 되지 못한다는 데 바로 우리의 공포가 있는 겁니다. 우리가 정작 공포를 느껴야 하는 대상은 우리의 습관이지, 이런저런 개인의 개별적인 악행이 아닙니다.
- 이 노인의 정신적인 철학은 내가 죽은 뒤에 홍수가 나든 말든입니다.
- 그럼에도 이 불운한 피고는 오로지 이 사실들의 총합에 눌려서 파멸할 것이라는 생각이 든단 말입니다.
- 이것은 재앙입니다. 정말로 어떤 아버지는 재앙이나 다름없습니다.
- 아버지에 대한 사랑은 그것이 아버지에 의해 화답받지 못하는 한 터무니없는 것이요, 불가능한 것에 지나지 않습니다.
- 아버지들이여, 자신의 아이들을 슬프게 하지 마십시오!
아버지를 미워하긴 했지만, 다른 죄를 짓긴 했지만, 아버지에 대한 죄를 짓지는 않았다는 드미트리의 절규는 사실들의 총합에 눌려서 다른 이의 마음에 닿지 못한다.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을 읽다 보면 누구랄 것도 없이 본인들의 가족이 얼마나 형편없는지 술술 말하게 된다. 그러고 나면 사람 사는 거 다 비슷비슷하고 대문 열고 들어가면 다 거기서 거기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렇게 가족에 대한 애정과 애증을 번갈아 다독이며 내가 있던 가족이라는 자리로 돌아간다. 누군가 했던 한 마디를 작은 해답처럼 가슴에 들고서.
- 일부러 기억하진 않지만 잊지는 않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