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기 힘든 고통이 생겨났을 때

허먼 멜빌- 모비 딕 중에서

by 동화작가 몽글몽글

모비 딕은 눈처럼 새하얗고 주름이 잡혀있는 이마와 피라미드처럼 높이 솟은 하얀 혹을 가지고 있는 향유고래이다. 이 모비 딕에게 한쪽 다리를 잃은 피쿼드 호의 에이해브 선장은 자신의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지적, 정신적인 분노까지도 모두 흰 고래와 결부시키고 있었다. 흰 고래는 모든 사악한 존재의 편집광적인 화신으로서 에이해브의 눈앞에 떠다니고 있었다.


일등 항해서 스타벅은 단지 맹목적인 본능으로 공격하는 고래에게 복수는 미친 짓이라며, 우리는 고래를 잡으러 왔지, 선장님의 복수를 하러 온 것을 아니라며 목소리를 높여 보지만 에이해브 선장은 내 복수는 경제적인 가치뿐 아니라 막대한 프리미엄까지 가져다줄 만큼 가치로운 것이라며 모비 딕을 잡는 선원에게는 기니 금화를 주겠노라 선언한다.


살다 보면 내가 지금 직면한 고통이 어디에서 왔는지, 누구 때문인지 거듭 생각하게 된다. 그 원인이나 이유가 나의 내면이어서는 안 되고 바깥이어야만 내 속이 편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지금 받는 고통도 힘든데 이 고통의 원인까지도 나라고 하면 그건 버틸 수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다른 원인을 찾아 헤매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그 원인은 나에게도, 다른 곳에도 없는 경우가 많다. 실체가 없다는 사실도 고통스러우니 허상의 실체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에이해브 선장에게는 이 모든 고통의 원인은 모두 모비 딕이었다. 모비 딕 이어야만 했다. 그렇지 않고서는 자신의 우울과 분노, 패배감, 배를 타는 이유 등을 설명할 수가 없었다.


그에게 일어나는 모든 불편, 특히 그의 불운한 재난이 간접적으로 초래하는 불편은 아무리 사소한 것이라도 거의 예외 없이 짜증이나 분노를 불러일으켰다. 세상 가장 우울한 사람, 에이해브 선장은 어느 날 망망대해에서 영국의 고래잡이배, 엔더비호를 만난다. 포경선끼리의 사교모임은 종종 바다 위에서 이루어지는 데 서로의 배를 방문해 고래와 관련된 정보나 뭍에서 싣고 온 오래된 편지를 주고받기도 한다.


흰고래를 보았소?라는 에이해브의 질문에 이게 보입니까? 하며 향유고래의 뼈로 만든 하얀 팔을 보여준 엔더비호의 선장을 보는 순간 에이해브 선장은 흥분해서 바로 그 배에 오르려 했다. 하지만 역시 향유고래의 뼈로 만든 한쪽 다리는 특수한 걸고리가 있어야만 배에 오를 수 있다는 것을 깜박한 에이해브 선장은 자신의 장애에 분노하고 절망하며 영국 배를 바라보고 있었다.


잠시 후 그런 사실을 인지한 엔더비호의 선장은 도르래 등 기구를 이용해서 에이해브 선장을 배 위로 오르게 한다. 오른쪽 지느러미에 꽂힌 작살이며 모두 에이해브 선장이 공격했고 뒤이어 에이해브 선장이 탄 보트를 공격해서 다리를 잃게 만든 모비 딕이 분명했다.


그러니까 흰 고래는 두 분께서 생각하시듯 사람을 해치려는 게 아니라 단지 거북해서 날뛰는 겁니다. 그놈은 팔 하나도 다리 하나도 삼킬 생각이 없어요. 다만 공격하는 시늉을 하여 겁을 주려고 할 뿐이죠. 옆에 있던 선원의가 말했다.


다시 모비 딕을 찾아서 삼켜진 팔의 장례식이라도 치러주자는 선원의 말에 엔더비호의 선장은 말한다. 그놈이 삼켜버린 그 팔은 내가 알 바 아니야. 그건 그 녀석이 마음대로 해도 좋아. 이제는 어쩔 수도 없는 일이고, 그때는 그놈을 알지도 못했으니까. 하지만 나머지 팔은 절대로 주지 않겠어.


똑같이 한쪽 팔, 한쪽 다리를 잃고도 모비 딕에 대한 두 선장의 시각은 이렇게 달랐다. 일어난 일에 대해 인정하고 남은 팔을 소중히 여기는 엔더비호의 선장, 그 원인이 누구에게 있던 이미 일어난 일은 일어난 일, 지금부터의 일은 나의 일인 것이다.


모비 딕, 단지 본인이 살기 위해 몸부림쳤던 모비 딕을 향한 광기와 복수심이 에이해브 선장에게 명분을 주었다면 그 명분이 남은 한쪽 다리마저 앗아가는 것은 아닐지 더 나아가 주변 사람마저 같이 침몰시키는 것은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참기 힘든 장애나 고통이 내게 왔을 때 모비 딕에서 배운 삶의 자세를 생각해 본다.


첫 번째, 일이 일어난 원인은 중요하지 않다. 꼭 누구 때문이라고, 무엇 때문이라고 하고 싶다면 혼자서 조용히 되뇌어본다. 그러면 자신의 마음을 편하게 하는 데는 도움이 될 수도 있다.


두 번째, 일어난 상황을 인정하면 그다음 단계로 나갈 수 있다.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법이나 주변 사람을 덜 힘들게 할 수 있는 여유가 생각날 수 있다. 누군가에 대한 원망이나 원한은 고통 감소에는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다.


세 번째, 같은 상황에 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본다. 경우는 달라도 다른 삶의 자세를 가진 사람들을 보는 것만으로도 나의 분위기는 달라질 수 있다.


애써 바꾸라는 것은 아니다. 참기 힘든 고통은 정말 참기 힘들고 고통스럽다. 직접 당해보지 않은 고통을 짐작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인문학을 하는 이유도 이에 있다. 평상시에 하고 있는 것들을 힘든 시기에도 지속할 수 있기 위해서. 모비 딕을 찾아 헤맨 에이해브 선장의 이야기를 통해 인생의 질문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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