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부터 학교에서 선생님은 가끔 독후감 숙제를 내주시곤 했다. 책을 읽어도 무슨 내용인지 파악해도 막상 글을 쓰려고 원고지를 펼치고 제목, 학년, 이름을 적으면 도저히 쓸 수가 없었다. 숙제는 어떻게든 해야 한다는 생각에 책의 내용을 몇 문장 필사하며 요약하곤 했다. 그런 글쓰기에 구성이 있을 리 만무하다. 그냥 숙제를 했다는데 만족했다.
책을 미친 듯이 읽기 시작하기 전이나 유년 시절이나 별반 차이가 없었다. 물론 강의를 듣고 정리하거나 회사 업무를 파악하는 일은 할 수 있었다. 학창 시절에 배운 경험과 유사해서 천만다행이었다. 보고서는 명확한 목표가 있고, 그 목표를 향해 어떤 방법을 동원해야 하는지 이해하기는 어렵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 글'을 쓴다는 건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가끔 회사 다이어리에 끄적이는 메모가 전부였다. 비단 나만의 이야기일까. 상당수 사람들이 글을 쓰기 어려워한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일까. <대통령의 글쓰기>, <강원국의 글쓰기>의 저자 강원국은 예화를 들어 6가지를 쉽게 설명한다.
학창 시절을 한 번 떠올려 보자. 선생님은 열심히 칠판에 무언가를 필기하면서 강의를 주도한다. 학생들은 노트에 따라 적으며 선생님의 가르침을 흡수한다. 시를 외우고, 문학 작품에 숨어있는 의도를 파악하기 위해 부단히 노력한다. 하지만 자신의 글을 쓴 기간은 과연 얼마나 될까.
학창시절에는 읽고 듣기가 거의 대부분이다. 쓰기와 말하기는 거의 하지 않는다. 특히 쓰기는 더욱 할 시간이 없다. 이렇게 학습하고 사회생활을 이어간다. 회사에서 상사의 지시를 이해하고 그에 대응하는 행동을 하는 건 어쩌면 자연스러운 광경이다. 보고서도 형식이 갖추어져 있어 그런대로 쓴다. 하지만 프로젝트의 결과 보고 발표는 어떨까. 보고서를 쓰는 상황처럼 긴장하거나 불안하지 않을 수 있을까.
100명 앞에서 발표한다고 상상해보자. 어떤 감정이 느껴지는가. 여러 번 해본 숙련된 강사라면 모를까 일반인은 상상만 해도 오금이 저릴지도 모른다. 우리는 누구나 많이 해본 일이 아니면 낯설고 두려워한다. 인류에게 단어와 책은 가장 최근에 만들어진 발명품이다. 우리는 타인의 말을 듣고 생각하며 오랜 세월을 보냈다. 그러니 당연히 글쓰기는 익숙하지 않은 일이다.
글쓰기의 해결책은 그냥 무턱대고 많이 쓰는 일이다. 너무 허무한 답변인가. 작가는 어떤 사람을 뜻할까. 바로 오늘 아침에 글을 쓴 사람이다. 글쓰기의 마음 근육을 늘리고, 만족 지연 능력을 키워야 한다. 그래야 쓰기 싫은 것을 쓰는 힘이 길러진다. 가끔씩 글이 써지는 순간을 경험하면 자아 효능감과 성취감을 느낄 수 있다. 생각은 표현해야 생각이지 표현하지 못하는 생각은 없는 것과 같다. 자신에 대한 확신과 신념이 없고, 생각을 들여다보지 않는 사람은 결국 자신의 글을 쓰지 못한다.
기본적으로 글을 쓴다고 말할 수 있으려면 할 말이 있고, 감정과 생각이 존재해야 한다. 한 번도 써본 적 없는 사람은 자아 자체가 있다고 말할 수 없다. 예전에는 누군가의 글에 댓글을 달고 싶어도 달수가 없었다. 나의 생각을 표현할 방법을 알지 못했다. 결국 표현하지 않은 생각은 사라진다. 그래서 우리는 글을 쓰는 시도를 하고 실패하고 다시 시도해야 한다.
그렇지만 여전히 두렵고 불안하고 어렵다. 극복하는 방법은 습관에 있다.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이다. 글을 잘 쓰려면 습관을 만들어야 하고, 습관을 만들려면 자주 써야 한다. 그러기 위해 자신의 루틴을 하나 만들어보자. 프로야구 선수들은 타석에 들어가기 전에 자신만의 루틴을 만든다. 방망이로 바닥에 이니셜을 쓰고 타석에 들어서거나 특정한 행동으로 뇌에 압박을 가한다. 글도 마찬가지다. 강원국 작가의 루틴은 7단계로 되어 있다.
1. 청하를 한 병 마신다.
2. 카페에 간다.
3. 에스프레소를 주문한다.
4. 안경을 닦는다. (핵심)
5. 노트북의 전원을 켠다.
6. 안경을 쓴다.
7. 글을 쓴다.
[강원국 작가의 글쓰기 준비 루틴]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이 생기는 순간까지 4번의 행동, 즉 안경을 계속 닦는다고 했다. 그런데 왜 청하를 마실까. 청하와 에스프레소는 의식의 보초를 조금 무디게 하는 역할을 한다. 자신의 글에 대한 검열을 줄이고 에너지를 적게 사용하여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쓸 수 있는 상태다. 이렇게 루틴으로 습관을 형성하면 에너지를 보다 적게 사용한다. 그러니 습관이 생기지 않으면 글쓰기는 당연하게도 어려울 수밖에 없다.
학창 시절을 보낸 우리는 읽고 이해하는 능력은 있지만 막상 자신의 글을 쓰지 못한다. 그렇다면 어떤 배움이 있어야 할까. 바로 어휘력, 문장력, 구성력, 퇴고력을 배워야 한다.
어휘력은 네이버 국어사전을 열어 놓고 유의어 중에 하나를 골라보는 연습을 하면 향상할 수 있다. 예를 들어 '발달'이라는 단어를 자주 사용한다고 가정해보자. 비슷한 유의어는 확산, 확대, 발전, 약진, 진보, 성장, 번성 등 여러 단어를 발견할 수 있다. 처음에 자신이 생각한 단어보다 더 명확한 단어를 선택하여 문장을 완성한다. 또한 단어의 예문에 수식어를 어떻게 쓰는지 살펴보고 서술어도 문맥상 일치한다면 가져다 써보면 문장은 더욱 깔끔해진다.
예전에는 글을 다들 잘 쓰고 싶어 했다. 잘 쓰고 싶다는 말은 문장력을 높이고 싶다와 동의어다. 그렇다면 문장력을 높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3가지 방법을 소개해본다.
1. 한 작가의 작품을 모두 읽는다. 또는 한 작가의 장편을 읽는다.
2. 한 권의 좋은 책을 10번 이상 읽어본다.
3. 좋아하는 칼럼니스트, 시인의 시를 10편 암송해본다. (하나의 문장을 여러 번 읽든지 쓰든지 해본다.)
이국종 아주대 교수의 <골든아워 1, 2>의 서문을 읽어보면 흡사 김훈 작가의 글처럼 느껴진다. 이국종 교수는 김훈 작가의 작품을 없는 시간을 쪼개서 모조리 읽고 또 읽었다고 한다. 그렇게 읽다 보니 김훈 작가의 문장력, 즉 문체를 나도 모르게 습득한 게 아닐까.
구성력을 기르기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따라 쓰기다. 여기서 따라 쓰기는 그냥 필사를 의미하지 않는다. 칼럼에도 다양한 쓰기 방법이 존재한다. 고사 성어를 쓰며 시작하면 내 주제와 맥락이 맞는 고사 성어를 찾아서 첫 문장을 만들어본다. 그 후에 자신의 글의 요지인 주장을 내세우고, 그 주장을 하는 이유를 서술한다. 그리고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를 쓴다. 그와 관련된 사례를 추가적으로 작성하고 다시 주장한다. 또 다른 구성은 현상을 말하고 진단을 해보며, 마지막으로 해법을 제시하는 방식이다.
네이버 포털에서 '첫 문장'이라고 검색을 해보면 글의 시작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예시를 볼 수 있다. 첫 문장을 검색할 수 있다면 마지막 문장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구성은 이런 다양한 방법으로 공부할 수 있다.
글을 다 쓰고 난 후에는 고쳐 쓸 줄 알아야 한다. 자신의 글을 읽다가 잘못 쓴 글은 오답 노트를 만들어서 보관한다. 자신의 오답 노트를 확보해 놓으면 퇴고하는데 굉장한 도움이 된다. 예를 들면 문장에서 '을, 를, 이, 가'를 최대한 줄이는 방향으로 퇴고를 한다. '생각을 한다(X), 생각한다(O)', '생각하였다(X), 생각했다(O)', '고장이 났다(X), 고장 났다(O)' 이처럼 짧은 글을 쓸 수 있으면 그렇게 써보는 게 현명하다고 조지 오웰은 말했다. 글을 잘 고치려면 오답 노트를 많이 소유해야 효율이 높다.
아무리 어려운 글쓰기라도 한 번 습관이 생기면 곧잘 쓰게 되어 있다. 어휘력은 책을 많이 읽으면 늘기도 하지만 한계가 있다. 그래서 자신이 모르는 단어는 그냥 넘어가지 말자. 노벨 문학상을 받은 오에 겐자부로는 책을 읽으면서 항상 사전을 곁에 두었다고 한다. 그런 모습을 친구들은 사전을 읽는 건지 책을 읽는 건지 모를 정도였다고 묘사한다.
글의 모든 출발은 어휘력부터다. 일단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고 익숙한 단어를 다량 확보해보면 똑같은 단어를 연달아 사용하는 일은 드물게 된다. 그때부터 글쓰기의 속도는 붙을 것이다. <대통령의 글쓰기>를 집필하는 시기에 네이버 국어사전을 항시 곁에 두었고, 책의 30%는 네이버 사전이 써주었다고 말하는 강원국 작가의 이야기는 신선했다. 도대체 사전보다 많은 어휘를 어디서 찾아볼 수 있을까. 지금까지 책을 읽는 행위만으로 어휘력과 문장력은 늘어날 거라고 착각했다.
그리고 기승전결, 서론, 본론, 결론의 구성만 튼튼하다면 글쓰기가 나쁘지 않다고 자신만만했다. 하지만 대중에게 사랑받는 사람의 구성력은 그런 기승전결은 기본이다. 어떻게 이야기를 전개하는가는 또 다른 문제였다. 이제 철저히 작가의 글을 분석해보고 글이 잘 읽히는 사람들의 구성이 어떤지 철저히 파악해보아야겠다.
참고 영상 : <강원국의 글쓰기 특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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