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예민하다는 소리를 자주 듣고 자랐다. 발표하거나 사람이 많이 모이는 자리에서는 무슨 말을 할지 어려워했고, 꼭 무언가 말해야 하고 어울려야만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행동하려 애썼다. 하지만 집에서는 아무 말하지 않는 내성적인 사람으로 변했다. 어떤 이야기를 해도 부모님은 이해하지 못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서 외부 활동에서 에너지를 모두 고갈하고, 집에서는 다른 부딪힘 없이 침묵으로 에너지를 회복했다. 외부 활동에서만 활발하게 활동하는 내 모습을 부모님은 볼 수가 없기에 성격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하셨다.
부모님, 특히 아버지는 가부장제의 최대 피해자로 남자는 대담해야 하고, 남들과 거리낌 없이 지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그래야 세상을 잘 살아가는 멋진 남자라고 전형적인 외향 마인드를 가지신 분이셨다. 이러한 편견은 인간이 15만 년 동안 진화해오며 생겨난 한 가지 성격을 무시하는 행동이다. 외향형 성격이 우수하다는 편견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는지도 모른다.
외향적인 사람들의 행동을 살펴보면, 심사숙고보다는 실행을 먼저 하고, 의심하기보다 확신을 좋아하고, 돌다리도 두드려보고 건너는 속담을 돌다리도 빠르게 건너봐야 알 수 있다는 식으로 행동력을 선호한다. 내향적인 사람은 에너지가 안으로 모이는 사람을 뜻한다. 외향적인 사람은 사람과 활동이라는 외부 세계에서 에너지를 충전한다.
하지만 한 사람에게 한 가지 성향만 존재하는 건 아니다. 우리는 두 가지 성향이 적절히 혼합되어 있다. 그래서 특수한 환경에 대응하는 성향이 나타난다. 그것이 외향이든 내향이든 말이다. 두 가지 성향이 뒤섞여 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가끔 성격을 실제와 다른 어떤 고정된 특성이 있다고 잘못된 추측을 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언제 내향과 외향의 행동 방식을 설명할 수 있을까. 생물, 사회, 특수 발생적 근원으로 접근해 볼 수 있다.
생물 발생적 근원은 신생아실에서 아기 울음소리에 반응하는 아기들의 모습을 통해 알 수 있다. 울음소리 들리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는 신생아는 외향적인 성향이 있다고 본다.
사회 발생적 근원은 배움의 과정에서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준다. 다양한 상황에서 적절한 행동이라는 인식이 생애를 통틀어 굳어진 탓이다. 그래서 문화가 다르면 보는 시각도 달라진다. 대륙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건너온 외국인들이 기상 예보를 들으면 가끔 깜짝 놀라기도 한다. '전국적으로 비가 온다'라는 말을 그들은 평생토록 들어본 적이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문화 특성으로 한국인은 집단주의가 팽배하고 서로 다름을 기본적으로 인정하는 문화가 아니다. 하지만 대륙에서 자란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에서 자란다.
마지막으로 특수 발생적 동기는 우리가 일상에서 계획하고, 열망하고, 몰입하고, 개인 목표로 삼으며 발생하는 동기다. 사소한 일부터 삶의 최고 열망까지 다양하다. '매일 아침 화초에 물 주기'보다는 '우리 민족의 GDP를 5% 높이겠다'라는 목표가 행동이 바뀔만한 동기부여가 될 수 있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좀 더 느리고 신중하게 일한다. 한 번에 한 가지에만 집중하기를 좋아하고 집중력도 대단히 좋은 편이다. 부와 명예 같은 떡밥에는 잘 넘어가지 않는다.
<콰이어트> 32p
사회 발생적 근원을 살펴보고 외향 성격에 가깝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부터 업무 공간은 나에게 스트레스 발생지였다. 혼자만의 시간이 없이 육아와 직장 업무로 답답했고 미칠 지경이었다. 혼자 다양한 생각에 집중하고, 정리하는 나만의 루틴이 필요했다. 그렇지만 이어폰을 귀에 꼽고 게임 네트워크 세상으로 접속했다. 무언가 생각하는 것마저도 하기 싫었고, 점점 무기력해졌다. 가끔 만나는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했지만, 주변이 시끌벅적한 카페와 레스토랑, 음식점에서 상대방에 전혀 집중할 수 없어 오히려 스트레스가 더 쌓였다. 업무로 만나는 관계가 아니라면 친근하게 다가갈 수 있어서 외향이라고 생각했지만, 본격적으로 사회생활을 하면서 내향성이 강하다고 확신했다.
학창 시절부터 리더십은 공부 잘하고, 아이들과 관계가 좋은 학생을 뜻하는 줄 알았다. 자신감과 에너지가 넘쳐 학생들이 저절로 응집할 수 있게 만드는 힘을 리더십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무언가 리딩을 하는 깜냥은 안된다고 여겼다. 자신감이 늘 바닥이었고, 자존감은 말할 필요도 없었다. 하지만 최근 독서 모임에서 3번의 리딩을 맡으며 내향성의 리더십이 무엇인지 발견했다.
처음 독서 모임에 참여하며 가장 두려운 시간은 자기소개 시간이었다. 타인의 시선과 조용한 분위기에 압도당해 준비한 내용의 반도 꺼내지 못하고 횡설수설했다. 아마도 듣는 그룹원들은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긴장하면 말도 못 하고 정리한 내용도 잊어버리는 내가 리딩을 맡는다는 건 너무나 두려운 일이었다.
그렇지만 블로그에 나를 드러내는 일은 보다 수월했다. '내 맘대로 서평'이라고 카테고리를 명명하고, 그 누구의 피드백에도 휘둘리지 않고 사색한 내용을 적는 연습을 오래도록 했다. 훈련 과정이 어느 정도 지나면서 다양한 의견도 듣고, 다른 모임에 참석하여 사람들과 관계를 맺기도 했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얻은 경험으로 리더라는 자리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일단 부딪혀 보기로 했고, 2번의 리딩 경험으로 내향 리더십은 소수의 인원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들과 함께 지내는 동안 이런저런 궁리를 참 많이 했다. 어떻게 하면 함께 한 그룹원들을 연결할지 고민했고, 그 고민의 결과로 연말 북 파티를 열어 함께 하는 즐거움을 얻었다. 그리고 현재는 자신의 역사를 쓰는 모임을 운영하고 있다. 내가 스스로 공부하고 내 안에서 오래도록 숙성되어 나타난 결과다. <1만 시간의 재발견>에서도 혼자 연습하기, 진지하게 혼자 연구하는 시간이 월등히 많은 사람들이 전문가가 될 확률이 높았다. 물론 강력한 내적 동기도 필요하고 잘못된 방향으로 나아갈 수도 있어서 멘토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한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외향성이 롤 모델인 세상에서 내향성 리더도 세상에서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우리는 성격을 개조할 수 있지만 그것도 어느 정도까지다. 타고난 기질은 우리가 어떻게 살았든 간에 우리에게 영향을 미친다.
<콰이어트> 186p
사람이 다수 모이는 곳에서 두리번거리며 낯익은 얼굴을 찾는다. 그런 친근한 사람이 존재하지 않는 공간은 경계심이 왕성하게 작동한다. 교감 신경이 활성화되어 내 안의 장점은 점차 작아지고, 말수도 적어진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자유의지가 있고, 경험을 통해 성향을 바꿀 수 있다. 50여 명, 100여 명의 대중 앞에서 스피치. 그리고 독서 모임에서 토론. 사내 독서모임. 동호회 활동. 여전히 어렵지만 조금씩 사회적 관계 능력을 키우고 있다.
외향적인 사람은 인지 능력의 대부분을 눈앞의 목표에 할당하지만, 내향적인 사람은 일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파악하는데 인지능력을 사용한다. 그래서 나는 철저하게 이성의 사고로 '보상 민감성'에 대응한다. 한탕주의는 인생철학과 어울리지 않다. 대신 그러한 결과를 낸 사람들을 부러워하거나 자괴감에 빠져 열등의식을 느끼지 않는다. 내향적인 사람들은 아무래도 욕망이나 흥분을 타인보다 잘 조절하는 경향이 있다. 그렇기에 내향성 사람은 만족 지연에 더 뛰어나다고 본다. 오랜 기다림 끝에 드러나는 성과에 자아효능감이 상승하고 더욱 내면에 집중한다. 하지만, 가끔은 너무 신중한 탓에 기회를 놓치기도 한다. 성격은 양면성이 무조건 존재한다. 좋고, 나쁨의 가치 판단을 하지 말고 적절한 기준을 찾을 수 있는 유연성을 길러야 한다.
내향적인 사람들도 자기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일, 자기가 아끼는 사람, 혹은 다른 귀중한 것을 위해 외향적인 사람처럼 행동할 수 있다.
<콰이어트> 319p
대중 앞에서 스피치를 하거나 강연하는 모습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고 두렵다. 하지만 같은 가치관으로 뭉친 사람들 혹은 교류가 어느 정도 있었던 사람들 앞에서는 여유롭게 강연을 할 수 있다. 그들을 위하는 일이라면 적극 나선다. 이러한 '자유 특성'을 활용하면 어떤 성향의 사람인지 그들은 헷갈려한다. 지금 리딩 하는 독서 모임에서도 사람들은 내향성이라고 이야기하면 적잖이 놀란다.
유년 시절의 기억을 떠올려보면 활발하게 활동한 행동들도 상당수 있다. 물론 지금은 혼자 책을 읽고 사색하며, 글을 쓰는 행위로 에너지를 회복하고 편안함을 얻지만, 혼자서 세상을 살 수 있다는 생각은 하지 않는다. 적어도 같은 가치관으로 함께 하는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기 위해 가끔은 외향적인 사람으로 돌변하곤 한다. 한 가지 성향으로 구성된 사람은 어디에도 없다. 각 상황에 맞게 적절히 행동하고 회복하는 방법을 습득하여 유연하게 대처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콰이어트>를 읽어보면 7년 동안 공들여 쓴 수잔 케인의 통찰로 삶의 지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참고 도서 : <콰이어트> by 수잔 케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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