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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Aug 28. 2020

EP1. 공부해야 하나요? 저 프로게이머 할 건데요.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는 뒷전이었다. 도대체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명쾌히 나를 설득하는 사람은 주변에 없었다. 그나마 역사 교사의 설득 있는 주장에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를 납득하여 한국사에는 매진했다. 물론 성적은 형편없었지만, 그래도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처음 설명을 들은 시간이었다.


과거를 알아야 선조들의 성공과 실패로 미래를 대비할 수 있다는 말이 나를 설득했다. 다른 과목은 왜 해야 하는지 도저히 알 수 없었다. 수업 시간을 알리는 종이 울리면 출석을 부르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자신의 수업에 할당량을 채우려고 혼자서 떠들며 문제를 칠판에 푸는 수학교사도 있었고, 전혀 알아듣지 못하는 말을 하며 학생이 주도적으로 참여하는 수업이 아닌 무조건 주입식 교육으로 시험에 자주 나오는 중요한 대목은 무조건 빨간 줄을 긋고 외우라는 교육 방식이었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지 않는 시절이었다. 그저 마음에 들지 않으면 발바닥과 허벅지를 체벌하기 일쑤였고, 그저 내신을 위한 공부를 지속해야 했다. 지겨움 그 자체였다. 더욱이 내가 다닌 고등학교는 방과 후 수업에서 우열반과 열등반을 나눠 각자의 수준에 맞는 수업을 진행했다. 뭐 그냥 자리만 옮기는 정도여서 여전히 시간 때우기 바쁜 일상이었다. 어떻게 하면 교사 몰래 만화책을 읽을 수 있을지, 아니면 손으로 이마를 가리며 안 자는 척 시간을 보내기 바빴다.


왜 우리는 이러한 교육 방침에 의문을 제기하지 않았을까. 이유는 간단하다. 일명 상위권 대학을 많이 보내면 그 누구도 의견을 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더 많은 아이들이 자율성을 갖고 자신의 전공 분야를 개척하는 교육이 아닌 대학을 어떻게 진학하는지에 초점이 맞춰져 있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공부를 지지리도 하기 싫어 중간 정도의 성적으로 늘 학교생활을 했다. 전혀 못하지도 그렇다고 상위권에 머물지도 않았다. 그저 어느 정도만 하면 부모님에게 혼나지 않을 정도만 외우고 시험을 치렀다. 벼락치기로 공부한 내용일 지금까지 남아 있을 리가 없다. 그리고 공부에는 전혀 흥미를 느끼지 못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3학년이 되는 순간에는 이상하게 남들도 모두 가는 대학을 꼭 가야만 한다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 그놈의 대학이 뭐라고. 언어영역, 수리영역, 외국어영역의 문제집을 숱하게 풀고 오답을 다시 풀며 머릿속에 주입하기 시작했다. 아무래도 문제집을 자주 풀다 보니까 어느 정도 패턴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지했고, 이런 경우에는 정답을 알아채는 능력을 키웠다.

사실 이러한 학습은 새로운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씩 해결하는 과정이 전혀 담겨 있지 않다. 대학교를 입학하고도 공부하는 자세는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 비싼 등록금을 지불하고도 수업 시간에는 맨 뒷자리에 앉아 피로를 풀곤 했다. 중간, 기말고사와 리포트는 어떻게든 대강 마무리하여 제출하면 B 학점 이상은 나오니까 걱정거리가 되지 않았다. 열심히 출석한다면 그로 인해 F라는 학점은 맞을 수 없었다. 이러한 대학의 맹점을 교묘히 이용했다. 그렇게 허송세월을 보내다 군대라는 생활의 제약을 받는 곳에서 지내게 되었다.


군대라는 곳을 나오기 몇 달 전부터 심한 불안감이 엄습했다. 문득 대학을 졸업하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막막했다. 지금까지 세상을 얕잡아 보고 흥청망청 놀았기에 생기는 불안이었다. 자격증을 이것저것 취득할까 생각도 해봤지만, 결국 다른 취미에 빠지게 되었다. 제대하고 온라인 게임이라는 e-스포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하지만 e-스포츠도 공부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공부를 도대체 왜 해야 하는지 알지 못했다. 그저 시간을 반복되는 게임 플레이로 보내기 바빴다. 그저 하루 종일 스타크래프트와 디아블로, 포트리스 온라인 게임에 푹 빠져 있었다. 테란의 황제 임요환을 보며 나도 저런 인기 있는 프로게이머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난생처음 하고 싶은 일이 생긴 시기였다. 그래서 스타크래프트의 명가 클랜인 애버 클랜에 입단 테스트를 보기 위해 배틀넷에 접속했다.

배틀넷에는 입단 테스트를 보려고 대기하는 수많은 스타크래프트 고수들이 모여있었다. 그래도 나름 학과에서는 게임을 잘하는 상위 유저로 자신감은 풍부했다. 그렇지만 우물의 개구리라는 사실을 깨닫기까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았다. 입단 테스트를 기다리는 여러 유저와 대결을 펼쳤지만, 승률은 30%도 나오지 않았다. 뒷골이 서늘할 정도로 쓰라린 실패였다. 세상을 제대로 맛본 순간이었다.


갑자기 TV에 나오는 프로게이머가 신처럼 느껴졌다. 입단 테스트에서 대부분 탈락의 고배를 마시고, 어려운 입단 테스트를 통과해도 애버 클랜에서 '스타크래프트 리그'에 예선을 참가하는 인원은 고작 3명. 내로라하는 고수인 그들도 예선을 통과하지 못해서 '스타크래프트 리그'의 TV에 얼굴을 내밀 지도 못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결승에서 우승컵을 든 프로게이머는 어떤 경지일까. 여러 가지 정보를 알고 현실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아.. 프로게이머의 길은 내 길이 아니구나.'


우리는 누구나 하고 싶은 일을 업으로 삼고 싶어 한다. 하지만 그 길도 결국 집요하게 시스템을 분석하고 반복되는 연습으로 내면에 축적되어야 프로가 된다는 사실이다. 게임을 통해 공부가 왜 필요한지 깨닫는 순간이었다. 프로게이머 준비를 위해 투자한 3개월이 아깝지 않았다. 그리고 부모님에게는 혼쭐이 날까 봐 아예 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렇지만 인생의 큰 교훈을 게임을 통해서 얻었다. 그저 남은 3-4학년 학과 공부를 열심히 해야겠다는 허탈하지만 인생의 다른 길을 찾으려고 애쓰는 시기였다.


#공부 #프로게이머 #반복학습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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