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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Oct 23. 2021

떠나간 사람들이 남겨 놓은 인생

인간은 언젠가 죽는다. 그렇지만 그 죽음에는 각자만의 고유한 의미를 남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고 하지만 그가 남긴 물건인 유품은 수많은 의미를 품는다. 주변에 외로움으로 인한 자살과 고독사, 범죄까지 안타까운 소식을 접하지 않았지만 언제 어디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직접 경험하지 못했어도 주변에서 들은 소식은 여럿 있다. 평소에 연락을 주고받는 친구가 한 명뿐이던 중학생은 자신의 친구가 어학연수를 떠나던 저녁 문자 한 통을 남겼다. 그렇지만 그 친구는 공항에서 스마트폰의 문자를 확인하지 못하고 그대로 비행기에 탑승했다. 그리고 날라온 비운의 소식이 죄책감을 만든다.


그 친구의 문자에 답변해 주었다면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일을 적어도 막지 않았을까라는 생각은 고통 그 자체다. 죄책감은 남은 사람들에게 커다란 짐이 되기도 한다. 그리고 이겨내야 할 하나의 트라우마로 자리 잡기도 한다. 우리는 타인의 작은 말 한마디를 듣기가 힘겹다고 할 만큼 대단한 일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에서 놓치기 십상이다.


누군가의 죽음은 그 사람이 사용하던 공간의 물품을 남긴다. 천국으로의 이사를 정리하는 사람들로 알려진 유품 정리사의 이야기를 담은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을 읽어보면서 삶의 의미를 다시 한번 생각해 보았다.



공감하는 척, 이기적인 마음


고독사는 고독한 죽음보다는 고독한 삶을 살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심심치 않게 고독사의 소식이 들려온다. 오히려 노인들의 고독사가 많았던 지난 세월보다 비교적 젊은 층의 고독사 비율이 높아졌다. 양로원과 요양 시설의 노인 복지가 예전보다 발전한 반면 홀로 사는 젊은 층은 복지에 취약하다. 가족의 품에서 안락사하는 경우는 천명 중에 한 명꼴이라는 유품 정리사의 글은 충격에 가까웠다.


남들이 하기 어려운 유품을 정리하는 그들은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받는다. 끔찍한 범죄 현장의 유품을 정리하는 그들은 식당에서도 제대로 식사하지 못하고 천대받는다. 죽은 사람보다 산 사람이 무섭다고 면접에서 당당하게 주장한 회사의 실장의 말이 하나도 틀리지 않았다. 사회적 기업으로 도움을 주려는 그들의 푸대접에 적잖이 화가 치밀었다.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면 사람은 이기적이다. 과연 내가 비슷한 상황에 처했어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잠시 생각해 보면 100% 아니라고 말하지 못하겠다. 주변의 인식으로 회사 사무실을 옮기고, 지금은 산을 배경으로 배수진을 친 위치에서 근무하는 유품 정리사의 말에 숙연해진다.


아직 한국 사회에는 지역 미신이 떠돌고 있다. 그래서 사람이 죽은 마지막을 청소하고 유품을 정리하는 직업이 못마땅한 사람이 종종 있다. 소금을 뿌리고, 물을 한 바가지 퍼붓는 행동에 귀신이 붙어 자신에게 해를 입힐지도 모른다는 불안함을 해소하려는가 보다.



떠나간 사람들이 남겨 놓은 인생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에서는 유품 정리사가 죽음을 맞이한 이들이 남겨놓은 삶을 이야기한다. 신체의 아픔을 호소하지 못하고 유학을 떠난 딸의 앞날을 막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하며 홀로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죽음을 맞이한 아버지는 자신의 아픔을 왜 딸에게 알리지 않았을까. 오히려 이러한 숨김이 딸의 앞날에 커다란 상처로 남을 것이다. 아프면 아프다고 도움을 요청하는 행동은 나약함이 아니다.


도움을 요청하지 못하는 삶은 억압 받은 인생이다. 자식의 인생은 꽃길이길 바라는 부모의 마음은 다른 행동으로도 나타난다. 학연, 지연으로 점철된 사회에서 앞으로 미래를 살아가야 할 아이들을 양육하는 부모의 압박이다.


지독한 공부만이 살길이라는 신념으로 아들을 압박하는 어머니는 과연 신사임당일까. 한국의 어머니는 소위 명문대를 보내야 신사임당 소리를 듣나 보다. 그래서 골프채를 휘두르며 전교 1등을 하지 못한 아들을 채벌하는 모습에서 어떤 배경에서 자랐길래 저리도 매정할까라는 생각도 해본다.


결국 억압과 통제 속에서 고통받던 아들은 자신을 낳아준 어머니를 살해한다. 그리고 경찰에 송치되는 과정에서 이혼한 아버지를 보며 무슨 일이 있어도 자신을 버리지 않고 곁에 있어 달라는 말을 남긴다.


한국 사회는 어디서부터 잘못된 걸까. 40-50대는 찢어지게 가난하여 그 가난을 물려주기 싫었던 6.25 전쟁 세대를 비난한다. 자신과 애착 육아를 못했던 지난날을 똑같이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싫은 40-50 세대는 조금 더 나은 세상을 만들려고 관계를 맺는다.


그렇지만 21세기 한국 사회 발전은 한강의 기적을 이룬 시대보다 더디다. 10% 이상의 성장률을 보이던 그때와 지금은 매우 다르다. 40-50세대는 다음 세대에게 무엇을 물려주어야 올바른 사회에서 살아갈 수 있을까. 공부만이 답이라고 아직도 외치는 수많은 부모들이 자식을 고립과 외로움으로 몰아세우는 건 아닐까.


애정 결핍은 종종 다른 이상 현상으로 나타난다. 도벽은 정신병의 일종으로 애정 결핍에서 시작된다고 한다. 관심받고 사랑받고 싶은 욕구, 외로움은 종종 틱장애나 저장 강박증 같은 이상 행동으로 변형되어 나타나고, 도벽 역시 그 가운데 하나라고 했다.


유년 시절 부족함 없이 자랐지만 나에게도 도벽이 있었다. 한두 번 훔친 만화책은 어느덧 책상에 수북이 쌓였고, 어머니는 어디서 어떻게 얻었는지 물으셨다. 여러 번 혼쭐이 나서 도벽은 잘못된 행동이라는 초자아가 생겨 이상 행동은 사라졌다. 그 대신 저장 강박증이 생겨 손에 쥔 물건은 웬만하면 버리지 못했다. 지금은 아이에게 똑같은 환경의 대물림을 피하려고 필사적으로 마음 수련하고 있다. 다행히 어느 정도 성과가 나타나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자식은 소유물이 아니다


아이의 생명은 부모의 소관이 아니다. 부모가 없기 때문에 아이 불행하고 비참한 삶을 살게 될 거라는 생각은 터무니없는 오산이다. 자신만이 아이를 행복하게 해줄 수 있고, 부모 없는 아이는 모두 불행하다는 착각에서 비롯된 동반 자살. 그렇다면 고아의 삶은 죽은 이보다 못한 것인가. 생명은 독자적인 것이다. 낳고 길렀다 해서 그 생명의 주인은 아닌 것을, 부모들은 인정하려 들지 않는다.


자신이 아니면 해결하지 못하고 사회에서 살아가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이 든다면 부모인 자신이 살아야 한다. 자신의 핏줄은 자신이 통제할 수 있어야 하고 그래야만 하는가. 생명뿐만 아니라 삶 그 자체도 부모가 주인은 아니다. 오히려 아이를 보호해야 할 의무를 회피하는 격이다.



외로운 사람에게 필요한 말 한마디 안부


괴로움은 삶에 다달이 지불하는 월세 같은 것이다. 하지만 그보다 훨씬 많은 행복이 우리를 찾아온다. 당연하게 여겨서 모를 뿐이다. 살아 있다는 건 축복이고 기적이다. 내가 존재한다는 건 우주가 생긴 이래 가장 특별한 사건이다. 태어났으므로 이미 우리는 선택받은 존재다. 그런데 우리는 수많은 행복을 흘려보내고 고통을 없애려 부단히 노력한다. 행복과 괴로움이라는 두 가지 가운데 하나만 취하려 한다.


고독사가 의미하는 것은 죽음이 아니라 삶이다. 고독사는 그가 얼마나 고독하게 죽었는가가 아니라 얼마나 고독하게 살았는가를 말해준다.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中


생각해 보면 우리는 물건을 소유하려고 너무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쓴다. 물론 열심히 사는 것은 좋은 일이고 원하는 목적을 달성하려고 노력하는 것은 살아 있는 동안 우리가 해야 할 일 가운데 하나다. 그러나 죽음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가져갈 수 없다. 정말로 남는 것은 집이 아니고 학벌이 아니고 돈이 아니다. 우리가 사랑했던 기억이다.


인간다운 삶을 영위하기 위해 돈은 필수 불가결한 것이지만, 그 때문에 훼손당하기에는 사랑이란 너무나 소중하다. 제주도 푸른 바다를 바라보며 아무런 감정이 없었던 메마른 기억이 떠오른다. 바람이 부는 제주도의 바다를 보아도 행복한 감정은 전혀 없고 무기력했던 지난날이었다. 부를 쫓아 온몸을 희생하던 그 시기가 아픈 추억으로 남아 있다. 물질에 대한 숭배와 집착을 조금만 내려놓는다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기뻐할 수 있지 않을까. 유품정리사가 알려주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잘 기억하며 삶을 살아가면 좋겠다.



[유품정리사가 알려주는 아름다운 마무리를 위한 7계명]

1. 삶의 질서를 세우기 위해 정리를 습관화하기.

2. 직접 하기 힘든 말이 있다면 글로 적어보기.

3. 중요한 물건은 찾기 쉬운 곳에 보관하기.

4. 가족들에게 병을 숨기지 말기.

5. 가진 것들은 충분히 사용하기.

6. 누구 때문이 아닌 자신을 위한 삶을 살기.

7. 결국 마지막에 남는 것은 사랑했던 사람과의 추억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많이 남기기.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中



참고 도서 : 떠난 후에 남겨진 것들

저자 김새별, 전애원

출판 : 청림출판

발매 : 2020.0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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