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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곽준원 Nov 05. 2021

예비 신혼부부의 현실적인 고민

올해가 결혼한 지 어느덧 13년이 지나가는 해다. 지나온 삶을 되돌아보면 나름 가치관과 독립심으로 무장하고 있어도 현실은 만만하지 않다는 사실이 떠오른다. 누군가 처음 하는 일은 낯설고 서투르다. 결혼도 임신과 출산도 그리고 경제 활동도 모두 처음에는 낯설고 힘들고 어렵다. 그러나 그 어려움 속에서도 누군가는 다른 사람의 경험을 본받아 자신의 맥락에 맞게 적용하며 조금 더 나은 길을 선택하기도 한다.


'왜 나는 그 어려운 시기에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할 생각을 하지 못했을까?'라는 질문을 떠올려보며 힘든 일이 있다면 누군가에게 고민을 털어놓으려고 다양한 관계를 맺고 있다. 혹은 그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고 해결책이 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나의 경험담을 상대방의 입장을 배려하며 최대한 쉽게 설명하려고 노력하는 편이다. 누군가의 고민을 들어주는 경청만으로도 공감대가 형성될 수 있고, 그 공감대를 바탕으로 상호 간에 신뢰가 생긴다. 이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누군가의 고민은 삶의 현실을 나누는 귀한 시간을 만들기도 한다.


최근 결혼을 준비하는 예비 신랑의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결혼을 앞둔 MZ 세대에게 가장 큰 고민은 3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주거, 출산, 생활비. 결국 생존과 번식이라는 인간에게 주어진 욕구를 해결하는 일이다. 심리학자인 매슬로우는 이미 오래전에 인간의 욕구를 5단계로 나누며 이러한 고민이 누구에게나 있다는 이론을 내세웠다. 한국 사회에서 전쟁을 겪은 세대는 가장 기본적인 '생리적 욕구'를 해결하지 못했다. '가난'은 의식주에서 '주'를 뺀 나머지도 기능하지 못하도록 억제하는 숨 막히는 고통이다.


경제가 발전하고 한국 사회는 그나마 생리적 욕구는 어느 정도 해결했다. 다만 의식주에서 의와 식은 해결했지만 '주'가 해결되지 못하는 실정이다. 매슬로우의 두 번째 욕구인 '안전의 욕구'에 자신이 거처할 집이 포함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위험, 위협에서 자신을 보호하고 불안을 회피하는 안전의 욕구를 해결하려면 '주거 공간'이 확보되어야 한다. 그런데 이제 막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MZ 세대에게 '주거 공간'은 부모의 도움 없이는 이룰 수 없는 소망이 되어버렸다. 게다가 부모와 자식은 각자 열심히 일하며 국가라는 사회에 세금을 납부하지만, 부모의 노후는 그 사회가 책임지지 않고 자식 세대에게 우선 일임한다. 부모가 자식에게 도움을 요청하지 않을 정도로 노후를 착실히 준비해놨다면 자식은 엄청난 걱정을 덜은 사회가 되어버렸다.


고민을 나눈 예비 신랑도 다른 MZ 세대와 크게 다를 바 없었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경제 활동이다. 어떻게든 대출을 받아 수도권 지역에 전세를 구했지만, 아이를 낳아 키울 만큼의 재력까지 확보하려면 어느 정도의 비용이 필요한지 전혀 모르고 있었다. 13년 전 아내와 나는 뚜렷한 경제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어도, 막상 아이가 태어났을 때, 감당하지 못했던 비용에 참담했던 심정이 떠올랐다. 그래서 앞으로 어떤 준비를 해야 할지 조목조목 설명해주었다.


그런데 생각해보면 그들이 짊어진 짐이 너무나 많다. 사회생활 시작한 지 3년 정도 지난 초년생이 자신의 커리어를 쌓는데 전념해야 할 시기에 신경 써야 할 일들과 시대적 변화를 뒤쫓아가기 벅차 숨 쉴 곳을 찾아 헤맨다. 그들에게는 지금 당장 숨이 턱 막히는데 미래를 내다보며 차분히 계획을 세우라는 말 자체가 오히려 더 현실을 회피하게 만드는 고통이 아닐까라는 생각까지 들었다.


선택의 반대는 포기라는 말처럼 '주거, 출산, 여유로운 생활'을 모두 선택할 수 없다면 하나는 포기해야 마음이 편하다. 그중에서 점차 밀려나는 하나가 출산이 아닐까. 물론 '주거'를 해결하는 일도 굉장히 만만치 않다. 그래서 N포 세대라는 말이 공감대를 형성한다. 그리고 맞벌이 부부가 최선을 다해서 경제적 활동을 한다면 여유로운 생활까지는 아니더라도 주말에 글램핑장에서 장작이 타는 모습을 보며 멍 때리는 시간을 보내는 소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그 정도의 일탈도 사치라 말하며 아끼라는 건 더욱 숨통을 조이는 압박이다.


그래서 조심스럽게 "라떼는 말이야'라는 말이 아닌 "예전에 내 경험은 이랬어.."라며 예비 신랑에게 지나온 과거의 이야기를 꺼냈다. 나의 경험을 토대로 그 사람이 인생을 살아감에 있어서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었으면 했다. 지금까지 자신에게 이러한 인생 이야기를 해준 사람이 없어서인지 그 친구는 귀담아 이야기를 들어주었다.


그 이야기의 시작은 13년 전 과거의 어느 날이다. 가장 위기의 순간이 언제였는지 회고해보면 아이가 출산하고 다음 해 아내가 육아 휴직이 끝났을 무렵이다. 맞벌이 부부는 양가 부모의 도움이 없다면 아이를 양육하기가 너무나 힘들고 어렵다. 물론 지금은 어떻게 해서든 복직하는 방향을 추천하지만 그 당시만 해도 아이에게 친근한 주양육자가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아내도 그 뜻에 동의하고 전업 주부가 되었다. 맞벌이에서 외벌이가 된다는 건 오롯이 가정의 생계를 책임지는 묵직함을 뜻한다. 외벌이가 된 상태에서 월급은 금세 동이 났다. 매슬로우가 언급한 가장 하위 단계의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에 치명상을 입고 허우적거리는 시기였다.


통장 잔고에 '0원'이라는 수치가 주는 압박은 그 무엇으로도 표현이 되지 않는다. 그저 하늘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랄까. 그러한 상태에서 대출이라는 방법도 있지만, 갚아야 할 대출이 있는 상태에서는 그런 선택지도 제외된다. 제3의 금융권을 기웃거리는 일은 이성적으로 생각해보아도 올바른 선택은 아니었다. 커리어를 단숨에 키우기도 어려운 현실에 마주하여, 천직이라 생각하는 업을 포기하고 다른 업계를 찾아 방황했다.


미리 경제적인 준비를 어느 정도 했음에도 불구하고, 아이를 출산하고 키운다는 자체는 상상 이상으로 많은 비용이 필요하다. 전혀 모르고 출산으로 고통받는 것보다 생각해보고 어느 정도는 미래를 계획하고 차분히 준비하는 과정이 현명한 대처다. 예비 신랑(30대 초반)의 여자 친구, 즉 예비 신부(20대 후반)는 사회복지학과를 졸업하고 사회복지사 자격증을 취득한 상태라고 했다. 그런데 집안 형편이 어려워 사회복자사의 커리어를 포기하고 약국에서 사무직으로 일한 지 시간이 꽤 흘렀다고 한다. 사회복지사의 급여보다 약국 사무직의 급여가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앞으로 남은 인생을 생각해보면 사회복지사의 커리어로 전향하여 새롭게 시작하는 편이 경제적인 이익은 적을지라도 향후 5년 뒤에 여러 가지 혜택이 역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했다. 이미 일상으로 침투한 AI는 반복적인 일자리에 위협을 가하고 있다. 자주 다니던 약국에 비용을 처리하는 사무직 자리가 점차 줄어드는 모습을 직접 목격했다. 사람 대신 바코드로 결제를 진행하는 키오스크가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다. 이런 모습을 보면 이미 단순 노동은 대체되었다고 해도 무방하다. 그래서 지금이라도 사회복지사의 커리어를 차분히 알아보고 쌓아나간다면 5년 뒤에 출산이라는 계획의 가능성이 조금 더 높지 않을까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여러 고민을 서로 나누었지만 결국 나의 경험이 예비 신랑에게 전적으로 해결책이 될 수 없음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여러 삶의 각도를 알고 모르느냐의 차이는 꽤 크다. 선택지가 있는지도 모르고 미래를 맞이하기보다 다양한 선택을 알면 어떤 선택이 최선일지 확인하는 과정은 그나마 인생을 살며 덜 후회하게 만들지도 모른다. 그리고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설계할지 고민하고 학습하는 태도는 급변하는 세상에서 적응도를 높이는 중요한 요소라 생각한다.




#예비신혼부부 #주거 #출산 #여유로운생활 #매슬로우욕구 #생리적욕구 #안전의욕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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