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얼마 전 중학생 아들과 대화를 나눴다. 한창 사춘기에 접어들 나이인지라 가정 교육의 일환으로 대화를 나누면 중간에 말을 끊고 "알았어. 알았다고"라는 짜증과 귀찮다는 듯한 답변을 토해냈다. 순간 욱하는 감정이 솟구쳤지만, 금세 마음을 다잡고 차분하게 대화를 이어나갔다.
"아빠가 진지하게 말하는 순간에는 너도 진지하게 받아들였으면 좋겠어."
사춘기의 아이는 감정 기복이 심하다는 사실을 인식하지만 충동조절은 제대로 하기 어렵다. 대화를 나누다가도 중간에 나타나는 반응은 대화를 더 이상 이어나가기 어렵게 만든다. 하지만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아이를 교육하려면 인내하며 부모가 먼저 감정이 태도가 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말이 쉽지 평소에 자신의 방어기제와 어떤 인지 오류가 나타나는지 알지 못하면 감정은 그대로 태도가 되어버린다.
이처럼 어떤 자극과 그 자극에 반응하는 사이에는 빈 공간이 존재한다. 그 공간에서 멈춤, 호흡, 호기심이라는 선택이 우리 삶의 질을 결정짓는다. <나는 네 말이 왜 힘들까>에서는 빈 공간에서 적정한 선택을 하려면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떻게 훈련해야 하는지 알려준다.
이론을 빠삭하게 습득해도 결국 실천이 관건이다. 책에서 다양하게 소개하는 예시를 보며 '이 정도는 충분히 할 것 같은데.'라는 생각이 들어도 타인과 대화가 어렵고 힘들다면 직접 해봐야 한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나를 알게 되고, 그로 말미암아 타인과 관계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갈등 상황에 대처할 수 있다.
인간의 뇌는 효율을 중요시한다. <더 브레인>에서 하나의 재미난 실험을 소개한다. 뇌과학자인 저자와 컵 쌓기 청소년 세계 챔피언의 뇌 영상을 촬영했다. 뇌과학자인 저자는 수초 내에 컵 쌓기를 완성하는 챔피언의 뇌 활동이 자신보다 월등히 많을 것이라고 예측했다. 그러나 저자의 예측을 보기 좋게 빗나갔다. 컵 쌓기에 능숙한 세계 챔피언의 뇌는 매우 효율적으로 작동했고 오히려 저자의 뇌의 이곳저곳이 활성화되었다.
이러한 뇌의 관점에서 본다면 익숙한 행동은 의식하지 못하는 순간에 뇌가 처리해버린다는 뜻이다. 초보 운전자에게는 자동차의 조작이 서툴러 신경을 곤두세워야 하지만 오랜 기간 운전한 사람에게는 신경을 곤두세우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행동한다.
대화도 마찬가지다. 지금까지 내가 경험한 사건을 토대로 뇌는 다음 단계를 추론한다. 대화를 이어가려면 무슨 말을 꺼내야 할지 잠시 멈추지 않고 뇌는 가속 페달을 밟는다. 이와 같은 현상을 '자동적 생각'이라고 부른다. 자동적 생각의 패턴에는 대략 여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판단, 비난, 강요 협박, 비교, 당연시 의무화, 합리화가 그 여섯 가지다.
건강한 대화를 연습하려면 긍정적 생각이든 부정적 생각이든 그 생각을 '알아차리는 훈련'이 선행되어야 한다. 뇌는 효율을 따질 뿐 나타난 결과가 올바른지 그른지 알지 못한다. 그래서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생각이 무엇인지 알아가는 과정은 무조건 거쳐야 한다.
자동적 생각은 '진실'을 꼭 말하지 않는다. 지금까지 자신이 경험한 내용을 기반으로 추론하고 도출된 결과가 바로 자동적 생각이다. 같은 상황에서도 다른 생각을 하게 만드는 사람들의 판단 구조를 인지 오류라 부른다. 대표적인 인지 오류는 11가지가 있다.
이분법적 사고
과일반화
정신적 여과
비약적 결론
과대평가/과소평가
감정적 추론
당위적 진술
명명하기
개인화
재앙화
독심술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中
책에서 소개한 인지 오류 11가지를 보며 어떤 인지 오류가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지 잠시 생각하는 시간을 가졌다. 가장 먼저 떠오른 인지 오류는 이분법적 사고와 당위적 진술, 그리고 과일반화 오류였다. 어린 시절부터 들었던 "당연하지 않나?"라는 문장이 무의식에 깊게 박혀 있었다.
삶을 살아오며 경험했던 내용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대로 적용되어야 하는 당위적 사고는 이분법적 사고와 과일반화 오류로 연결된다. 다른 사람은 다르게 생각할 수도 있고, 환경이 달라지면 옳고 그름도 희석되는 마당에 당위적 사고로 타인을 압박하며 관계 맺었다. 자연스럽게 주변에 사람은 하나둘씩 사라지고, 무엇이 문제일까 고민하는 날이 하루 이틀 쌓여만 갔다.
인지 오류가 오래도록 내면에 자리 잡고 있었던 터라 개념을 머리로 이해해도 삶에서 다른 방향으로 나아지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다. 평소에 불쑥 나타나는 인지 오류를 인식한다는 의미는 습관과 연관되어 있다. 기존에 품고 있는 자동적 생각이 오류와 밀접한 연관성이 있다면 잘못된 습관을 올바른 습관으로 고쳐야 한다.
자동적 생각이 나타나는 근거를 찾다 보면 자신의 핵심신념을 발견하게 된다. 관계를 단절시키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핵심신념의 차이로 발생한다. 자신의 핵심신념이 무엇인지 들여다보고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
중요한 사람들과의 애착 욕구.
무엇을 원하는지 표현하고 감정을 드러내는 자기표현의 욕구.
재미의 욕구.
선택하고 참여하는 자발성과 정체성의 욕구.
자신을 절제하고 스스로 통제하는 욕구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中
책에서 언급한 핵심 신념을 살펴봤을 때 가장 먼저 눈에 띄는 항목은 결함의 신념과 처벌의 신념이었다. 결함의 신념은 '내 진짜 모습을 알면 사람들은 실망할 거야.'로 풀이된다. 주변 사람들에게 업무 능력도 출중하고 소통 능력은 더할 나위 없이 뛰어나다는 이야기를 들어도 부족한 면을 더욱 드러내는 경향이 있다.
아직 부족하고 더욱 성장하고픈 마음은 충분히 건설적이지만 전혀 만족하지 못하는 태도도 관계를 단절시키는 원인이 된다. 더욱 분발하고자 하는 욕구는 잘못했다면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처벌의 신념으로 이어진다. 반드시 벌을 받아야 한다는 신념은 제대로 처벌을 가하지 못하면 부당하고 억울한 감정을 이끌어낸다.
가장 눈에 띈 핵심 신념은 최근에는 다소 누그러진 상태다. 내 진짜 모습을 찾으려고 부단히 노력한 덕분이기도 하고, 이분법적인 사고방식을 벗어나려고 다양한 의견을 수용하려고 마음 근력 훈련을 했다. 쉽지는 않겠지만 누구나 가능한 마음 근력 훈련이 아닐까 싶다.
그렇다면 핵심 신념이나 자동적 사고는 어떻게 개선할 수 있을까. 일단 사실과 감정을 분리하는 작업이 우선이다.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에서는 관찰과 자동적 생각을 구별하라고 말해준다.
관찰에는 사물 관찰, 일상 관찰, 행동 관찰이 있다. '저는 오늘 바빴어요'가 아니라 '오늘 아침에 8시에 일어나서 8시 20분에 버스를 탔습니다."라는 식으로 사실만 나열해 보자. '그 사람은 말이 없다.'가 아니라 '그 사람은 오늘 회식 자리에서 3마디 말을 했다'처럼 생각이 아닌 사실을 묘사해 보자.
사실을 나열하다 보면 특별한 감정이 생기지 않을 것이다. 감정은 생각, 행동, 생리적 반응의 영향을 받기 때문이다. 이러한 대화를 연습하면 갈등 상황에서 자신의 욕구를 분리해 내기 쉽다. 갈등은 욕구가 충돌해서가 아니라 욕구를 충족하려는 수단 차원에서 발생한다. 때로 원하는 방식대로 핵심 욕구를 충족하지 못할 때는 특정 선호 수단에 고착된 사고에서 벗어나, 본질적인 욕구에 집중하게 되면 문제를 명확하고 합리적으로 해결할 힘을 발견할 수 있게 된다.
스스로에게 솔직하고, 건강한 자아를 가진 사람은 타인에게 요청과 도움을 구하는 것을 상대와 더 가까워지는 기회로 여긴다.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中
누군가에게 요청하는 그 자체가 부담이었고, 피해를 준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생각은 스스로에게 솔직하지 못한 모습이다. 앞서 살펴본 핵심 신념인 '결함의 신념'이 타인에게 요청하지 못하게 만든 주요 원인이었다.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에서는 건강한 관계를 위한 나눔 연습으로 세 가지 상황으로 이야기한다. 그중에서 거절 다루기를 소개하려고 한다.
거절은 상대에게 주는 소중한 선물이다. 상대방이 다치지 않게 조심스럽게 다가가서 건네주는 것이다. 우리 문화에서 거절을 말하기는 쉽지 않다. 그리고 거절하지 않고 받아 주는 사람은 '착한 사람'으로 여겨진다. 그러나 거절하지 못하고 'Yes'하는 '착한 사람'이 자신의 마음을 정직하게 돌아 보았을 때 늘 만족스럽고 기쁜 것은 아니다. 거절은 상대를 무시해서가 아니라 나에게 지금 더 중요한 가치나 필요사항이 있음을 표현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타인에게 부탁하면 거절당하지 않을까 걱정하는 한국인이 참 많다. 상대방이 나의 부탁을 거절하면 꼭 나의 존재가 무시당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러나 거절은 단지 행위일 뿐이다. 행위와 그 행위를 부탁한 자신을 일치시킬 필요가 없다. 상대는 내가 요청한 '행위'를 거절한 것이지 나라는 '존재'를 거절한 것은 아니다.
타인과 소통이 어려워 책을 펼쳤다면 단순히 읽는 행위로 끝나서는 안 된다.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는 자동적 생각을 먼저 파악하는 일환으로 사진을 핸드폰 바탕화면으로 지정하라고 한다. 핸드폰을 켤 때마다 자동적 생각을 고치려는 의지에 주의 환기를 해줘야 함을 뜻한다. 그만큼 책을 읽으면서 그 순간에 결심을 해도 습관으로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자동적 생각은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핵심 신념과 밀접한 연관성을 띤다. 그래서 자동적 생각을 인식하더라도 잘못된 오류를 개선하려면 상당한 시간이 필요하다. 한두 번의 실천으로 성과를 기대하지 말고 꾸준히 변화하겠다는 생각으로 접근해야 타인과 소통이 점차 원활해질 것이다.
참고 도서 : <나는 왜 네 말이 힘들까>
저자 : 박재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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